박사학위를 따고 도시를 떠나기 전 사람들과 식사하며 대화하는 일로 대부분의 시간을 채우고 있다. 그 사이사이 논문 마무리 작업을 하지만, 게으르게, 몸의 요구를 받아들이며 적당히 일하고 있다. 술을 안 마신 지 일주일이 다 돼간다. 사람들을 만나고 오면 술 마실 에너지가 남아있지 않은 것인지, 아니면 술로 해결해 왔던 어떤 갈증이 이미 다 풀려 버린 것인지, 술을 못 마시게 되었다. 거기에 쿠베라 같은 장편 웹툰을 정주행 하고 있다면 술 마실 틈과 이유는 더욱 사라진다. 이런 일상을 살면서 비로소 인생을 항해하는 요령을 알게 된 것 같다.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피하기보다, 다른 좋은 일들로 채우는 것. 다이어트를 한다면 과식/폭식하지 않는데 신경을 쓰기보다 오늘 하루 먹어야 할 좋은 음식들을 먹는 데 집중하자. 일을 한다면 다른데 집중력을 뺏기지 않는데 신경 쓰기보다 내가 하는 작업이 완성되어 가고 예뻐져가는데 집중하자. 방해물이 아니라 길을 보는 것이다.
이제 새로운 삶의 챕터를 시작하면서 나는 어려움보단 희망, 가능성, 반짝거림 같은 것들에 주목하여 내게 주어진 날을 온 힘을 다해 감사하려고 한다. 과거에 대한 후회는 해결될 수 있는 것이 아니므로 최대한 신경을 끄려고 한다. 바로 어제까지만 해도 놓쳐버린 삶 때문에 다 포기하고 싶었지만, 오늘 문득, 그 감정을 다 해결해야만 올라올 수 있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미련은 그냥 놓아버리면 된다. 한순간이다. 내 앞에 펼쳐지는 삶을 향해 눈을 돌리는 것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