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 마녀 빗자루

by 새나

겨울방학이 시작되었는데도 전혀 즐겁지 않다. 수정이 말이 계속 머릿속에 빙글빙글 돌고 있다.

‘너랑 이제 친구 안 해! 실망이야’

오해다. 수정이는 나를 오해하고 있다. 이 모든 게 새로 전학 온 전해수 때문이다.

전해수는 방학 일주일 전 4학년 2반 우리 반에 전학 온 아이다. 곱슬한 단발머리에 위로 치켜 올라간 눈, 뽀죡한 코에 두툼한 입술이 나를 보며 피식 웃는데 등골이 오싹했다.

"왜 웃고 난리야. 기분 나빠."

옆자리에 앉아 있는 수정이 옆구리를 콕콕 찌르며 말했다.

"너무 예민한 거 아니야? 그냥 웃는 건데 괜히 그러지 마."

수정이는 전해수가 마음에 든 게 틀림없다. '치' 친구는 나 밖에 없다고 해놓고는. 괜히 서운해 지려고 했다.

전학 온 날부터 수정이는 전해수랑 붙어 다녔다. 학교 도서관도 함께 가고, 급식실도 같이 갔다. 나는 수정이랑 전해수 뒤를 졸졸 따라다녔다. 속상한 마음이 밖으로 튀어나오려고 하는 걸 꾹꾹 눌렸다.

"은지야! 먼저가 해수가 학교 구경하고 싶다네."

"아니야. 나도 같이 가지 뭐"

"방과 후는 안 가?"

"아 맞다. 수정이 너도 가야 하잖아?"

"오늘 하루 쉰다고 방과 후 선생님한테 말했어"

"그래? 나한테 왜 말 안 했어?"

"갑자기 정해진 거라. 그런데 꼭 말해야 되는 거야?"

"아... 니... 그런 건 아니지만... 알았어... 나 먼저 갈게"

속상했다. 방과 후도 같이. 학원도 같이. 모두 같이였는데. 혼자가 되어버린 것 같았다. 다음날도 그다음 날도 수정이랑 해수는 함께였고 나는 혼자였다.

금요일 저녁 퇴근한 엄마가 나를 보며 말했다.

"오늘 방학했지?"

"응"

"내일 시골 할머니집에 갈 거야. 오늘밤에 짐 챙겨둬"

"학원이랑 방과 후 수업은?"

"엄마가 낮에 학원 원장님이랑 통화했고, 방과 후 선생님한테 문자 보냈어."

"근데 갑자기 할머니 집은 왜?"

"할머니가 몸이 많이 안 좋아지셨다네..."

"그래? 어디? 어디가 아프신데?"

"복순이 할머니도 못 알아보시고, 계속 이상한 말만 한다고 하시네."

"병원에 입원하셔야 하는 거야?"

"일단 내일 가보고 결정해야지."

아빠는 베트남으로 출장을 가서 집에는 엄마랑 나랑 둘 뿐이다. 베트남으로 출장 간 아빠는 1년에 한 번 집에 오신다. 그리고 다시 2주 뒤에 베트남으로 떠나신다. 아빠가 집에 있다고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다고는 할 수 없다. 아빠는 친구들 만나러 밖으로 나가 밤늦게 술에 취해 집으로 들어오신다. 나는 상관없다. 아빠가 친구들을 만나고, 베트남에 가서 일을 해야 내가 학교도 다니고, 학원도 가고, 방과 후도 할 수 있다는 얘기를 아빠 입을 통해 여러 번 들었다.

할머니가 아프신 건 걱정이지만 할머니집에 가는 것은 좋았다. 할머니는 나만 보면 '우리 강아지, 우리 강아지'하시면서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다 하게 해 주신다. 스마트폰 게임도 마음껏 할 수 있고, 아이스크림도 먹고 싶은 만큼 먹을 수 있다. 할머니를 빨리 보고 싶었다.

다음날, 아침 일찍 나는 엄마와 함께 할머니집으로 갔다.

"아이고, 우리 강아지 왔나"

"할머니~~~"

나는 할머니 품에 폭 안겼다.

"어머니 몸은 괜찮으세요?"

"응? 왜? 누가 아파?"

"아니... 어머니께서 복순이 할머니도 못 알아보시고... 이상한 이야기를 하신다고 해서요."

"아니. 복순이 자는 왜 그런다나. 사람 참 귀찮게 한다야. "

"두 분 친하지 않으셨어요?"

"우리가 언제. 나는 그런 사람 모른다. 말도 하지 말아"

할머니는 내 손을 잡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 할머니는 전혀 아파 보이지 않으셨다. 목소리도 쩌렁쩌렁하고 얼굴 표정도 좋아 보이셨다. 다행이다. 할머니가 아프지 않으셔서.

"할머니 아프시면 안 돼요."

"그랴. 우리 강아지 시집가는 거 보려면 건강해야지."

엄마는 마당에서 아빠한테 전화를 하고 있었다. 아마도 할머니 몸이 아프다는 소식을 듣고 걱정하고 있을 아빠가 신경 쓰여서 일거다. 엄마랑 아빠는 자주 싸운다. 그래서 그런지 아빠랑 통화할 때면 내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통화를 하신다. 나는 소파에 앉아 거실 창 너머의 엄마를 바라보았다. 엄마의 표정이 어둡다. 또 아빠랑 싸우는 게 분명하다.

"빗자루"

마당에 못 보던 빗자루가 서 있었다. 동화 속에서나 나올 법한 빗자루가 할머니집 마당에 우두커니 서있다니. 금방이라도 하늘로 날아갈 것 만 같은 자세를 하고 있었다. 빗자루 주인이 누굴까. 저 빗자루를 타고 아빠가 있는 베트남도 가고, 수정이... 아니다. 수정이 생각을 하니 갑자기 화가 났다. 내 이야기를 들어보지도 않고 전학 온 지 일주일 밖에 안된 전해수 말만 믿고 나를 오해한 수정이가 미워지려고 했다. 빗자루로 머릿속 나쁜 기억들을 다 쓸어버리고 싶었다.

"은지야. 엄마 회사에 급한 일이 생겨서 먼저 가봐야겠다. 은지 너는 며칠 더 있다가 올래?"

"응. 알았어. 할머니집에서 놀다가 갈게."

"그래. 할머니 말 잘 듣고, 얌전히 지내고 있어."

"응. 엄마. 운전조심해."

"어미야. 조심히 가거라."

엄마가 갔다. 이제 내 세상이다. 스마트폰 게임에 접속했다. 정신없이 게임을 하고 있는데 거실 창가에서 누군가 나를 쳐다보고 있는 듯 한 느낌이 들었다. 눈만 도르르 굴러 창가를 바라보니 아무도 없었다. 빗자루만 덩그러니 서 있을 뿐이었다.

"쓸어 버리고 싶은 생각 없어?"

이게 무슨 소리지? 이 기분 나쁜 목소리는 뭐야. 하던 게임을 멈추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소파에 누워 텔레비전을 보고 계신 할머니의 목소리는 아니었다.

"할머니 무슨 소리 못 들었어?"

"무슨 소리?"

"아니. 뭐를 쓸어 버린다나 하는 소리 말이야"

"은지야. 게임 너무 많이 하지 말어. 게임하고 그러니 이상한 헛소리도 듣는 거야"

아닌데 분명 무슨 소리가 난 게 확실한데. 다시 한번 창가에 서 있는 빗자루가 눈으로 들어왔다. 설마. 빗자루는 아니겠지. 뭐 말하는 빗자루 그런 건 아니겠지.

"할머니 저기 마당에 있는 빗자루 뭐야? 할머니 꺼야?"

"아니여. 얼마 전에 마을회관에 놀러왔던 할망구 꺼여."

"근데 왜 안 찾아가?"

"사정이 있어서 우리 집에 잠깐 맡겨두고 갔어. 미국에서 한국으로 여행 온 할망구인데 한국사람처럼 생기지 않았는데 한국말은 잘하더라. 그런데 한국 여행하면서 저 큰 빗자루는 왜 가지고 온 거야. 생각해 보니 이상하네."

"할머니. 그 할머니 지금 어디 있어?"

"나도 몰려. 우리 동네 구경 조금 하고 저기 옆 동네도 구경하고 온다 하고 갔어. 곧 올 때가 됐는데..."

"할머니 잠깐 마당에 좀 나갔다 올게"

밤하늘에 별들이 총총총 빛나고 있었다. 방학식날 수정이가 했던 말이 머릿속을 비집고 들어왔다. 수정이는 우리 반 반장 현수를 좋아한다. 나만 아는 비밀이다. 수정이가 나한테만 얘기하는 거라고. 비밀이라고 새끼손가락 걸며 약속까지 했었다. 그런데 방학식날 4학년 2반 우리 반 아이들 모두가 수정이가 현수를 좋아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나는 아니다. 절대 아니다. 하지만 수정이는 나를 의심했다. 수정이 입장에서는 나를 소문의 범인으로 지목할 수밖에 없었다. 왜냐면 그 비밀은 나만 아는 거니까. 하지만 난 범인이 아니다. 난 절대 말하지 않았다. 친구의 비밀을 함부로 말하는 아이가 아니다. 오수정 나를 그렇게 몰라. 실망이야. 치! 나도 너랑 친구 안 해. 그까짓 친구 안 하면 그만이야.

'쓱싹쓱싹 모두 쓸어버려. 걱정 근심 모두 쓸어버려~'

뭐지. 이노랫소리는. 갑작스러운 노랫소리에 나는 가슴이 확 오그라들었다. 잠시 뒤 고개를 돌려 보니 빗자루가 움직이고 있었다.

"악!"

나는 소리를 질렀다.

"걱정이 있으면 뭐든 말해! 내가 깨끗이 쓸어줄게"

양손으로 입을 막았다.

"할머니처럼 너도 걱정, 근심 모두 쓸어버려~"

빗자루가 말을 하고 있다. 설마 했는데 정말 말하는 빗자루가 존재하다니. 쿵쿵 가슴이 마구 뛰었다.

"할머니? 우리 할머니 말하는 거야?"

"그래 너희 할머니도 꼭 너처럼 그랬어!"

"응?"

"마을회관에 다녀와서는 나를 들고 마당을 쓸면서 계속 같은 말을 반복하는 거야. '복순이 배신자. 망할 것. 어떻게 나한테 그럴 수 있지. 내가 지 한테 어떻게 했는데. 뭐 나보고 앞뒤 꽉 막힌 할망구라고. 말이 안 통한다고. 참말로 나를 그리 생각하고 있을지 몰랐네. 몰랐어. 차라리 친구 안 하는 게 속편 하겠어. 마당에 쓰레기만도 못한 사이였어. 다 쓸어 버려. 그까짓 우정 차라리 사라지는 게 낫지. 암 그렇고 말고.' 할머니가 다 쓸어 버리라고 해서 복순이 할머니랑 함께 했던 기억들을 모두 쓸어버렸지."

"뭐야? 네가 쓸어버린다고 기억이 사라진다고? 그게 가능해?"

"할머니를 보면 알잖아. 할머니는 복순이 할머니를 친구가 되기 전 그냥 동네 할머니라고 기억하고 있어."

이제야 복순이 할머니 말이 이해가 갔다. 올해 봄 제주도로 꽃구경 갔던 기억, 여름에는 더위를 피해 마을회관에서 같이 자고, 밥도 같이 먹었던 기억, 가을에는 복순이 할머니집 과수원에서 사과를 따준 기억, 모든 기억들이 할머니 머릿속에서 사라져 버렸다.

"너도 걱정, 근심 모두 쓸어 저기 보이는 자루 속에 버려 줄게. 얼마든지 말만 해."

"그렇게 쓸어버린 걱정 근심들로 뭐 하는 거야?"

"그건 내 주인만 알지. 나는 기억들을 쓸어 담아 저기 자루 속에 넣기만 하면 돼. 거기까지가 내 임무라고."

"혹시 미국에서 여행온 그 할머니가 너 주인이니?"

"어깨까지 내려온 곱슬머리에 유난히 크고 긴 코, 눈꼬리가 살짝 올라간 진한 쌍꺼풀 눈에 두툼한 입술이 매력적인 할머니라면 내 주인이 맞아."

"혹시 하늘도 날 수 있는 거야?"

"그럼 물론이지. 미국에서 여기까지 날아왔는데 뭘."

"나 한 번만 태워주라"

"그건 안돼. 아무나 빗자루를 타고 날 수 있는 건 아니야. 마녀학교를 졸업한 자만이 빗자루를 탈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지."

"마녀? 혹시 너 마녀의 빗자루?"

"앗! 실수. 못 들은 걸로 해줘."

"들었는데 어떻게 못 들은 걸로 해!"

"쓸어 버릴 거야. 말 거야. 빨리 선택해!"

방학식 그날 기억을 깨끗이 쓸어 버리고 싶었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하루였다. 수정이가 나한테 얼음장같이 차가운 표정을 하고 뾰족한 말투로 말하는 건 처음 겪어 본 일이었다. 송곳으로 내 마음을 콕콕 찌르는 것만 같았다. 수정이랑 다시는 친구 하지 못할 것 같은 생각에 두려웠다.

"지우고 싶은 기억 하나만 쓸어 버릴 수 있어?"

"아니 그건 불가능해. 쓸어버리고 싶은 기억과 연관된 기억은 모두 함께 사라져."

"선택할 수 있는 게 아니네"

"좋은 기억, 나쁜 기억이 따로 있는 게 아니니깐. 누군가에게는 좋은 기억일 수 있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나쁜 기억일 수도 있거든."

수정이랑 함께 했던 기억들이 모두 사라지는 건 바라지 않는다. 작은 오해들로 다투기는 했어도 다음날이면 수정이랑 나랑은 언제 그랬냐는 듯 하하 호호 웃으며 놀았다. 이런 일로 우리 우정에 금이 가는 건 자존심이 용서하지 않는다. 맞아. 오해는 풀면 되는 거잖아. 오해니깐. 사실이 아니니깐. 그날 수정이 한테 말했어야 했는데. 나를 오해하는 수정이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더 늦기 전에 수정이 한테 말해야겠다. 엉켜버린 실타래를 풀지 않으면 쓸모없는 실이 되어 버린다. 우리의 우정이 그렇게 되는 건 바라지 않는다.

빗자루 옆에 커다란 자루가 보였다. 저기 안에 할머니랑 복순이 할머니 기억도 들어 있다는 거지. 자루를 거꾸로 들고 흔들었다. 자루 속에서 반짝이는 별들이 한가득 쏟아져 내렸다. 자루 속에 밤하늘의 별을 가득 담아 놓은 듯했다. 우리의 기억들은 저기 우주에 빛나는 별들과도 같아 보였다. 수많은 별들이 모여 우주의 하늘을 수놓듯 수많은 기억들이 모여 내가 있고, 엄마가 있고, 아빠가 있고, 할머니가 있고, 수정이가 있는 것이었다. 우리에게는 쓸데없는 기억은 존재하지 않는다. 쓸어버리고 싶어 했던 기억조차 소중한 나의 것이었다.

"야! 뭐 하는 거야? 당장 그만두지 못해!"

빗자루가 무서운 표정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이미 늦어버렸다. 자루 속은 이미 텅텅 비었다.

"늦었어! 이제 그만해! 너희들이 뭔데 사람들 기억을 쓸어가는 거야?"

"우리는 나쁜 기억을 깨끗이 쓸어 주었다고. 고맙다고 해야 하는 거 아니야?"

"네가 말했잖아. 세상에는 나쁜 기억, 좋은 기억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고. 그 기준을 네가 왜 마음대로 정해?"

"아니... 그러니깐...."

"할 말 없음 말하지 마. 그리고 할머니 집에서 당장 나가."

빗자루를 들고 대문 밖으로 휙 던져 버렸다. 빗자루는 힘없이 픽 쓰려지더니 이윽고 다시 일어나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