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진실의 붉은 눈

by 새나

"띠리 리리 띠리 리리"

녹색불로 바뀌자마자 몇 안 되는 사람들이 길을 건넜어. 그러고는 빨간불로 바뀐다는 경고음이 들렸어. 사람들이 건너던 길은 또다시 쌩쌩 달리는 차들로 가득했어.


나는 행복동 사람들이 안전하게 길을 건널 수 있도록 신호를 알려주는 신호등이야. 이곳 횡단보도에서 나의 임무는 아주 중요하지. 내가 이곳 행복동 미소 사거리에 처음 설치되었을 때 사람들의 기대가 얼마나 크던지 어깨가 아주 무거웠어.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신호등 없이 길을 건너던 사람들이 미처 멈추지 못한 차에 부딪치는 사고가 종종 일어났거든. 오가는 사람이 적은 이 길에 신호등 설치를 하지 않았지 뭐야. 우리 신호등 사이에는 오래전부터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오는'사람 잃고 신호등 설치한다'라는 말이 있지. 사람들은 일이 일어나고 난 뒤에야 부랴부랴 뚝딱뚝딱 나를 이곳에 설치했어.


노을이 산 중턱에 걸터앉은 오후 5시.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여자아이가 검은 봉지를 들고 횡단보도 앞에 서 있었어. 아직 차들이 지나가야 하는 빨간 신호야. 아이는 내 눈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어. 아이의 눈에 방울방울 이슬이 가득했어. 금방이라도 이슬이 밖으로 쏟아질 것 만 같아 보였어.


"보행자 신호입니다. 띠리리 띠리 띠리리.."

사람이 건너야 하는 신호 녹색불이야. 그런데 그 아이는 내 눈만 빤히 쳐다보고만 있었어. 왜? 횡단보도를 건너지 않는 걸까? 누구를 기다리고 있는 걸까? 숨 가쁘게 반짝이던 녹색불이 꺼지고 빨간불로 바뀌었어. 아이는 여전히 내 눈만 보고 또 보고 있을 뿐 서두르지도 당황하지도 않았어.


다음날도 그다음 날도 아이는 횡단보도 앞에 서있었어. 검정 봉지를 들고서 말이야. 검정 봉지를 든 아이 손등에 붉은 흉터가 보였어. 그때였어. 내 머리 위로 회색앵무 한 마리가 날아왔어. 날카로운 발톱으로 내 머리를 콕콕 찔려 댔어. 내가 있는 행복동 미소 사거리에는 하천이 있어. 그곳에는 왜가리, 흰 뺨 검둥오리, 물닭들이 모여 살고 있지. 회색앵무가 이곳으로 온건 한 달 전이야.


보슬보슬 보슬비가 내리는 밤이었어. 검은색 모자를 푹 눌려 쓰고 흰색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한 남자가 새장을 들고 두 리번 두리번거리다가 횡단보도를 건넜어. '빨간불이야. 건너지 마'라는 나의 경고도 무시한 체 말이야. 사람들은 참 이상해. 내 말을 듣지도 않을 거면서 나를 왜 이곳에 만들어 놓은지 모르겠어.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말이야. 속상한 마음이 부글부글 끓어올랐어. 남자는 새장 문을 열고 회색앵무를 하천 풀숲에 놓아주었어. 그리고는 또다시 두 리번 두리번거리다가 빨간불에 횡단보도를 건넜어. 풀숲에 버려진 회색앵무는 남자의 모습을 그냥 바라보고만 있을 뿐이었어. 사람들은 아무도 없는 늦은 밤 이곳 하천에 자신들이 키우던 애완동물들을 놓아두고 가곤 해. 고향으로 돌아온 것 같다고 행복하다는 동물들이 있는 반면에 행복했던 시절을 그리워하며 시름시름 아파했던 동물들도 있었어. 회색앵무는 좋아하지도 그렇다고 그리워하지도 않았던 것 같아. 속을 도통 모르겠어.


"보행자 신호입니다..."

녹색불로 바뀌었어. 이번에는 아이가 횡단보도를 건너오고 있어. 검정 봉지에서 무언가를 꺼내더니 손바닥을 쭉 폈어. 그때였어. 내 머리 위에 있던 회색앵무가 아이 손 위로 날아가더니 무언가를 먹고 있어.

"고마워 사랑아."

"많이 먹어. 앵두야"

아이 이름이 사랑인가 봐. 앵두? 회색앵무 이름이 앵두였어? 둘이 언제부터 인사하며 지냈던 거야. 요 며칠 신호를 지키지 않는 사람들 때문에 머리가 지끈지끈하고 몸이 부들부들 떨렸어. 결국에는 몸살이 와서 며칠 쉬었더니 그때 친해진 건가.

"할머니요. 잠깐만요. 빨간불 빨간불이요. 휴..."

"아저씨... 어어어... 거기 아줌마... 휴...."

"저저저... 거거거 자전거는 횡단보도에서는 내려서... 타야죠... 할아버지... 제발...."


언제부터인가 사람들이 나를 무시하기 시작했어. 처음 내가 여기 설치되었을 때는 나를 믿고 잘 따라 주었어. 빨간불에는 차가 천천히 지나가고, 녹색불에는 사람들이 천천히 지나갔지. 차도 사람들도 나를 의지하며 잘 지냈어. 차와 사람이 부딪치는 일이 일어나지 않았지. 하지만 어느 순간 하나둘 사람들이 변하기 시작했어. 빨간불에 횡단보도를 건너는 아줌마를 따라 학생들이 따라 건너기도 했고, 녹색불에 차가 멈추지 않고 횡단보도를 그냥 지나가기도 했어. 이러다가 정말 큰일이 날 것 만 같았어.


"그날 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해 줄래?"

사랑이는 앵두를 보며 말했어.

".........."

앵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

이상한 일이야. 쉬지 않고 조잘조잘 말을 많이 해서 사람들과 같이 살 수 없다고 했어. 매일 밤 인터폰이 불이 나도록 울려 대는 바람에 아예 코드를 뽑아 버렸다고도 했어. 그다음은 초인종 소리. 매일 밤이 전쟁이었대.

"시끄러워서 살 수 가없네."

"앵무새를 키우고 싶으면 산속으로 들어가 살든가."

더 이상 이렇게 살 수 없다는 황금아파트 주민들은 당장 앵무새와 함께 이사를 가던지, 앵무새 입을 꿰매 버리던지 하라고 했어. 그렇지 않으면 경찰에 신고 한다는 거야. 일주일 시간을 주겠다고. 그렇다고 당장 이사를 갈 수는 없었어. 자신을 보며 눈물을 뚝뚝 흘리는 주인 눈을 바라보고 있자니 마음이 갈기갈기 찢어지는 것 같았대. 차라리 자신의 입을 실로 꽁꽁 꿰매 버렸으면 했대. 몇 날 며칠 서로를 바라보며 울고 또 울고를 반복하다 결국 앵두는 이곳 하천으로 오게 된 거지. 버려진 거야. 대부분 여기 버려진 반려동물들에게는 눈물 한 바가지 사연들 한 가지씩은 가지고 있어.


"사랑아! 김사랑!"

횡단보도 건너편에서 사랑이를 부르는 여자 목소리가 들려왔어.

사랑이 손위에 앉았던 앵두는 다시 날갯짓을 푸드덕푸드덕 하더니 내 머리 위로 날아와 앉았어. 사랑이는 자신을 부르는 여자에게 손을 흔들었어.

"엄마!.."

"거기에 그대로 있어. 엄마가 건너갈게."

녹색 신호로 바뀌고 사랑이 엄마가 사랑이가 있는 쪽으로 걸어왔어.

"쉬지 않고 왜 또 나온 거야.."

"앵두 먹이 좀 챙겨 주려고 나왔어..."

"이제 그만.. 사랑아... 그만하자..."

사랑이 엄마는 사랑이를 꼭 안으며 말했어.


어? 잠깐만 저 얼굴 낯이 익어. 어디서 봤더라? 나는 흐릿한 기억을 되짚어 봤어.

내가 사랑이 엄마를 처음 본 날 사랑이 엄마는 울고 있었어. 그때도 사랑이를 꼭 안고 말이야. 그날 사고가 있었어. 보행자 신호 녹색불이 켜지고 사랑이랑 할머니가 검정 봉지를 들고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었어. 아직 녹색불이 꺼지지도 않았는데 차들은 길을 건너는 사람들을 무시한 체 그냥 지나가고 있었지.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부하가 치밀어 올랐어. 당장이라도 달려가 발로 뻥 차주고 싶은걸 간신히 참았어. 사랑이랑 사랑이 할머니는 검은 봉지에서 꺼낸 무언가를 풀숲으로 휘이익 휘이익 뿌리고 있었어. 그 모습을 보고 하천에 있던 비둘기, 참새, 까치들이 날아왔지. 하천에 사는 새들한테 먹이를 주고 있었던 거야. 그때 할머니 어깨 위로 앵두가 날아와 앉았어. 앵두라는 이름도 사랑이 할머니가 지어준 이름이었어.

"앵두야 이리 오렴. 얼른 밥 먹자."

"할머니 할머니 고마워"

"녀석 여전히 말은 잘해."

"맛있어. 맛있어."

"그려 그려. 얼른 먹어..."

사랑이 할머니는 황금아파트에 살고 있어. 그때 앵두를 처음 만났고. 가끔 앵두가 주인이랑 산책할 때면 할머니가 머리를 쓰다듬어 주기도 하고, 간식을 나눠주기도 했대. 황금 아파트에서 주인 말고 자신을 좋아해 주었던 유일한 사람이었대. 다시 할머니를 만난 건 이곳 하천으로 오게 된 다음날이었어. 주인이 자신을 버리고 간 그 자리에 꼼짝도 하지 않고 있는 거야. 저라다가 큰일 치러야 하는 거 아닌가 걱정도 했지. 그때 휘파람 소리가 휘이익 휘이익 들렸어. 사랑이 할머니였어. 앵두를 보며 내는 소리였어. 앵두는 큰 날개를 푸드덕푸드덕 거리며 날아올라 할머니 어깨 위로 툭 하고 앉았어.

"아이고 불쌍한 녀석. 결국에는 여기로 왔구나..."

"슬퍼. 슬퍼. 마음이 아파"

"걱정하지 마. 내가 매일 여기로 와서 말동무도 하고, 밥도 주고, 네가 좋아는 간식 줄게"

"좋아. 좋아. 할머니 좋아"


어둠이 깊게 깔린 하늘 위에 초승달 하나가 외롭게 떠있었어.

"사랑아 얼른 집에 가자. 엄마 기다리겠다."

"앵두랑 더 놀고 싶은데..."

할머니는 사랑이 손을 잡고 횡단보도 앞에 섰어. 앵두는 내 머리 위에서 사랑이랑 할머니를 바라보고 있었지. 녹색불이 켜졌어. 사랑이가 먼저 앞서 갔어. 그 뒤를 할머니가 따라 걸었지. 그때였어. 노란불 빛이 멈추지 않고 달려오고 있었어. 할머니는 사랑이 손을 잡고 자신의 몸으로 감싸 안았어. 쿵 하는 소리와 함께 할머니와 사랑이는 바닥으로 쓰려졌고, 노란불 빛은 잠깐 멈칫하더니 그대로 줄행랑을 쳤어. 나는 그때 너무나 놀라고 무서웠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었어.

웅성웅성 되는 사람들 틈에서 울고 있는 사랑이 엄마가 보였어. 사랑이 엄마는 울고 또 울었어. 그날 이후 며칠 동안 사랑이도 사랑이 할머니도 보이지 않았지. 그런데 사랑이가 검은 봉지를 들고 나타난 거야. 할머니는 아직 병원에 계신 것 같아. 그때 사랑이를 안고 넘어지시면서 허리를 많이 다치신 것 같아. 아직 사고를 낸 뺑소니 차량은 찾지 못했어.


"앵두야 너는 알고 있잖아. 그날 그 뺑소니 차량을..."

사랑이가 엄마손을 뿌리치고 내 머리 위에 앉은 앵두를 보며 큰 소리로 말했어.


맞아 그러고 보니 그날 앵두는 내 머리 위에서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었어. 아마도 차에 탄 사람의 얼굴까지도 기억하고 있을 거야. 똑똑한 새 거든. 앵무새 중에도 제일 똑똑하다는 회색앵무가 모를 리가 없잖아. 그런데 왜 사랑이 한테 그날 있었던 일을 얘기해주지 않는 걸까. 분명 내 눈으로도 똑똑히 봤는데. 앵두가 못 볼 리가 없잖아. 그때였어. 번개가 번쩍 치듯 스쳐 지나가는 검은색 모자. 흰색 마스크. 맞아 차 안에 탄 사람은 그 사람이었어. 앵두를 하천에 버리고 갔던 그 사람. 앵두의 전주인.


나는 사랑이를 도와주고 싶었어. 하지만 나는 그저 녹색불 빨간불을 깜빡이는 신호등일 뿐이야.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나는 계속 생각했어. 또 생각하고 또또또 생각했지. 머리가 지끈지끈했어.

"어.. 카메라 맞아 카메라가 있었지."

내 이마에는 횡단보도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찍는 카메라가 있어. 아무도 카메라 존재를 모르고 있었던 거야. 나조차도 말이야. 개미새끼 한 마리도 나한테 신경 쓰지 않으니 내가 어떤 신호등인지 까마득하게 잊고 지냈지 뭐야.

"어이 앵두~ 내 말 들려?"

"....."

"사랑이 할머니가 너한테 얼마나 잘해 주셨는데... 동물이 그러면 안돼. 은혜를 모르는 동물은 동물도 아닌 거야. 이쁜 사랑이 손에 저 붉은 흉터 좀 봐. 죄를 지은 사람은 벌을 받아야 해. 당장 내려가 사랑이 한테 말해. 범인이 누군지. 너는 알고 있잖아. 숨긴다고 숨겨지는 게 아니야. 발톱으로 하늘을 가리는 꼴이라니깐...."

"........."

회색앵무는 대답은 하지 않고 날카로운 발톱으로 내 머리만 톡톡톡 두드리고만 있었어. 배은망덕한 녀석이야.


사랑이가 나의 눈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어. 아니 정확히 말하면 나의 이마의 눈을 쳐다보고 있는 거야. 켜졌다 꺼졌다 하는 아주 작은 빨간 불빛이 사랑이 눈에도 보였던 거야.

"엄마 저기 봐봐"

"어? 저건? 카메라?"

"엄마! 그날 우리 할머니를 다치게 만든 사람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몰라"

“그래 사랑아, 아주 작은 진실이라도. 그날 밤의 진실을 알 수 있겠구나.”


회색앵무 앵두는 사랑이 한테 나의 붉은 눈을 볼 수 있게 해 주려고 내 머리 위에 앉아 발톱을 꾹꾹 눌려 대고 있었던 거야. 앵두의 말보다 그날의 진실을 정확히 알고 있던 내 붉은 눈을 사랑이한테 알려주고 싶었던 거지. 녀석 나한테 귀띔이라도 해주지. 경찰이 내 붉은 눈을 꺼내어 봉투안에 넣으며 말했어.

“아저씨가 꼭 나쁜 사람 잡아줄께!”

“할머니를 아프게 만든 사람을 찾을 수 있는 거지요?”경찰은 고개를 끄덕였고, 사랑이는 빙그레 웃었어. 나도 덩달아 기뻤어. 회색앵무는 눈물을 흘리는 것 같았어. 내 머리 위로 촉촉한 느낌이 났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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