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 수영선수가 된 인어공주

by 새나

이야기 하나 들어 볼래? 아주 깊고 깊은 먼바다에서 살았던 물거품이 되어 사라질 뻔했던 인어공주 이야기야. 다들 인어공주가 왕자와 결혼하지 못해 물거품이 되어 사라졌다고 알고 있지. 아니야. 인어공주는 살아있어. 지금 우리 곁에서 말이야.


왕자의 결혼식이 있었던 날이었어. 인어공주는 왕자를 처음 만났던 바다에서 울고 있었지. 눈물이 거품이 되고, 거품이 눈물이 되며 인어공주의 몸은 점점 사라지고 있었어. 그때였어. 물개 한 마리가 인어공주를 등 뒤에 태우고 해변가 모래 위로 올라갔어.


"너 자신을 믿어. 할 수 있다고 믿어야 해. 마녀의 속임수일 뿐이야."

물개가 말했어.

‘왕자랑 결혼하지 못했어. 나는 곧 물거품이 되어 사라져 버릴 거야.’

"정신 차려. 마녀와의 계약은 너의 목소리지. 너의 마음이 아니야."

‘하지만.....‘

"세상 속으로 나가.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 내 친구들이 너를 도와줄 거야."


물개가 '엉엉'소리를 내자 바닷속에서 물질을 하던 해녀들이 물개와 인어공주가 있는 해변가로 성큼성큼 걸어왔어. 사람이 된 물개들이었어. 인어공주는 해녀들과 함께 사람들이 사는 마을로 갔어.


"정희망! 얼른 일어나! 학교에 늦겠어!"

"..........."

인어공주는 초등학생이 되었어. 왕자와 결혼까지 하려고 했던 인어공주의 나이가 10살이라니.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어. 바닷속 세계와 사람들이 사는 세계의 시간은 서로 다르게 흘려가고 있었던 거야.


인어공주의 새 이름은 정희망. 인간 물개 중 하나가 인어공주 이름을 지어줬어. 인어공주 스스로 인간들과 어우렁 더우렁 재미있게 잘 살아갈 수 있을 때까지 함께 살며 도와주기로 했어. 고향 사람들끼리 함께 도와주고 사는 건 인간들이나 물고기들이나 다르지 않은 가 봐. 희망이는 말을 못 해. 이유는 알고 있지. 나쁜 마녀와 사람이 되는 대가로 목소리를 줬잖아. 인어공주 시절 이야기를 혹시 모른다면 인어공주 책을 한번 읽어 보는 것을 추천해.


희망이는 손으로 사람들과 대화하는 방법을 배웠어. 사람들 중에도 희망이처럼 말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었거든. 인어공주의 목소리를 가지고 싶어 했던 마녀처럼 그들의 목소리도 누군가 가져가 버렸지. 하지만 그 대가로 다른 사람들에게 없는 특별한 재능을 주었지. 바다 풍경을 작은 스케치북안에 그대로 옮겨놓은 것같이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들, 세상의 모든 소리를 피아노로 아름답게 만들어내는 사람들, 세상 사는 이야기를 감동적인 글로 만들어내는 사람들. 그들의 재능으로 세상은 더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지.


“4번 레인 정희망 선수”

선수들이 출발선 앞에 섰어.

“차렷”

‘삐익’ 출발을 알리는 신호음이 들렸어.

“정희망 파이팅!”

“고래 초등학교 인어공주 정. 희. 망! 정. 희. 망!”

동구가 목이 터져라 희망 이를 응원하고 있었어. 동구는 희망이 단짝친구이자 흑기사야. 평생 희망 이를 위해 살겠다나. 뭐라나.


희망이는 고래초등학교 수영 대표선수야. 옛날 버릇 게 못준다고 했던가. 희망이의 수영실력은 6학년 언니 오빠들보다도 뛰어났어. 그도 그럴 것이 평생 바닷속에서 수영만 하고 지냈으니 그 재능이 어디 가겠어.


“우와~ 대박~ 자유형 100m도 희망이가 1등이야.”

동구가 펄쩍펄쩍 뛰며 말했어.

“야 김동구 그만 좀 해라”

동구 옆에 앉아 있던 차두영이 동구 팔을 잡아끌며 말했어.

“야 차두영. 이런 역사적인 순간에 어떻게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있냐! 6관왕이라고. 6관왕. 대회 최우수선수상까지. 대회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라잖아.”

동구는 물속에서 나온 희망 이를 보며 양손을 흔들며 말했어.


그날 희망이 수상소감은 신문에도 대문짝만 하게 실렸어. 이제는 손으로 말하는 건 식은 죽 먹기처럼 쉬워 보였어.


"6관왕이라니. 얼떨떨해요. 운이 좋았던 것 같아요. 많은 분들이 도와줘 좋은 성적을 올릴 수 있었어요. 그리고 이 자리에 나를 있게 해 준 물개 선생님한테 감사해요."

희망이는 허리를 구십 도로 숙였어. 어디선가 자신을 보고 있을 물개 선생님한테 하는 인사 같았어. 그리고 다시 수상소감을 이어 말했지.

"상상을 했어요. 대회가 열리기 전 6관왕을 차지하는 상상을 계속했는데 정말 이뤄졌어요. 안 된다고 생각하지 말고, 계속 도전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희망이는 싱긋 미소를 지었어.


한평생 인어공주로 살다가 하루아침에 사람으로 사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어. 처음에는 집 밖으로 나오는 것조차 무섭고. 두려웠어. 말을 하지 못하는 아이라고 수군대는 사람들의 목소리도 듣기 싫었어.

"어디서 저런 아이를 데리고 온 거예요?"

"얼른 시설에 데려다줘요."

사람들은 말을 못 하는 희망 이를 좋아하지 않았어. 답답했거든. 손으로 말하는 법이 아직 서툰 희망 이를 기다려주지 않았어. 희망이가 무슨 말이라도 하려고 하면 "됐어""아휴 답답해""숨 넘어가겠네" 라며 희망 이를 슬슬 피했지. 그런 사람들의 모습에 희망이도 숨기 바빴던 거야. 자연스레 사람들도 피하게 되었고.


‘차라리 그때 물거품이 되어 사라져 버었다면…’

바닷속 세상에서도 인간세상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자신의 모습을 보고 있으니 너무 슬퍼지는 거야. 눈물이 났어. 무작정 뛰었지. 얼마나 뛰었는지 몰라. 숨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어. 헥헥 숨을 몰아 쉬며 멈춰 선 곳은 파도가 넘실 대는 푸른 바다 앞이었어. 가만히 바다를 바라보고 있으니 쿵쾅대던 마음이 고요해졌어. 그때였어. 어디선가 다급한 사람목소리가 들렸어.


"사람 살려! 살려주세요. 꾹... 컥컥... 사... 람..."


바다에 빠져 누군가 허우적 대고 있었어. 희망이는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바닷속으로 뛰어 들어갔어. 바닷속은 여전히 아름 다웠어. 해초가 넘실대고, 알록달록 열대어들이 줄지어 헤엄치고, 바위에서 쉬고 있는 전복들도 보았어.

'다들 잘 있었지?'

희망이는 오랜만에 만난 바다 친구들한테 인사했어. 바닷속 세상으로 돌아오고 싶은 마음이 몽글몽글 물거품처럼 피어올라 오던 그때, 바다 위에서 구슬프게 울고 있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렸어.


“어쩐다. 누가 좀 우리 애 좀 구해줘 봐요… 흑흑흑”

“파도가 사나워서 물속으로 들어가는 게 쉽지는 않겠는데…”

“일단 119가 올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요…”


희망이는 깊은 바닷속으로 가라앉는 사람의 손을 꽉 움켜쥐고 바다 위로 올라왔어. 발을 동동 구르며 웅성대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렸어. 희망이는 젖 먹던 힘까지 더해서 바다에 빠진 사람을 해변가로 옮겼어. 사람들이 몰려들었어.


'콜록콜록 켁..' 물에 빠졌던 사람이 배속에 가득 담겼던 물을 뱉어 내고 있어. 깨어난 거야. 다행이야. 정말 다행이야. 희망이는 깍지 낀 양손을 더 꽉 움켜쥐었어.


"희망이가 물에 빠진 동구를 구했어요."

사람들은 희망 이를 가리키며 말했어.

"고마워... 정말 고마워... 콜록.. 큼.. 음… 너는 나의 생명의 은인이야.."

동구가 간신히 몸을 일으키며 말했어.

“.........."

"내 이름은 동구, 너 이름은 희망이지?"

희망이는 고개를 끄덕였어. 희망 이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눈빛도 따뜻해졌지.


"희망아 우리 같이 재미나게 잘 살아보자."

감나무집 홍 씨 아주머니가 서툰 손을 꼼 찌락 거리며 말했어.

"........"

희망이는 아무 말하지 않고 고개만 끄덕였어.

"천천히 말해도 괜찮아. 기다려줄게."

철물점 최 씨 아저씨가 손가락을 오므렸다 폈다 거리며 말했어.

‘고... 마... 워.. 요..’

희망이는 천천히 손으로 대화를 했어. 그리고 느껴졌어. 사람들과 재미나게 잘 살 수 있을 것 같은 작은 희망이 몽글몽글 마음속에 피어나고 있다는 걸.


그날 이후부터 동구는 희망 이를 지켜주는 흑기사가 되기로 마음먹었어. 친구들이 희망 이를 놀리거나 괴롭히면 언제 어디서나 희망이 앞에 짜잔~ 하고 나타나 희망 이를 지켜 주고 싶었는데. 그럴 필요가 없었어. 희망이는 아주 씩씩하고 용감했거든. 스스로 세상을 살아가는 법도 조금씩 알아가고 있었어.


‘선생님 저 수영부에 들어가고 싶어요.’

희망이가 수영부 최배영 코치 선생님 앞에서 당당히 말을 하고 있는 거야. 최배영 수영코치 선생님 별명이 뭔지 알아? 지옥에서 온 샤크거든. 얼마나 무서운지 다들 슬슬 피해 다니기 바쁜데 말이지.

“이름이 뭐지?”

‘정. 희. 망입니다’

“수영은 좀 할 줄 아나?”

‘지금 바로 보여 드릴 수 있어요’

희망이는 최배영 수영코치 선생님과 함께 고래 초등학교 별관에 있는 수영장으로 향했어.


“우와~ 저렇게 부드러운 접영은 처음 봐.!”

“와~~ 대박 백 미터를 57초에? 실화야? 내 볼좀 꼬집어봐!”

수영부 아이들은 희망이의 수영실력에 입을 다물지 못했어. 레인을 따라 물살을 가로지르며 나아가는 희망이 모습이 마치 한 마리의 인어가 헤엄치는 것 같았거든. 우아하고, 아름답고, 거기에 스피드까지. 이때부터였을 거야. 사람들이 희망 이를 수영천재 정희망. 인어공주 정희망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던 게 말이지.


매년 하위권에 머물던 고래초등학교 수영부는 전국 1등이라는 타이틀을 놓치지 않았지. 수영부 아이들 실력도 쑥쑥 올라갔어. 희망 이만 알고 있는 전설의 돌핀킥을 아이들에게도 가르쳐줬거든. 수영하랴 아이들 가르치랴 몸이 열 개라도 부족해 보였어. 지치지도 않은가 봐. 희망이 얼굴에 웃음꽃이 매일 피어나는 것을 보면 말이야.

“주장! 정희망 릴레이 경기 한번 어때?”

“좋아요! 선배!”

“차렷”

“삐익” 출발을 알리는 호루라기 소리가 들렸어

고래 초등학교 수영부 주장 정희망이 물살을 가르며 앞으로 쭉쭉 나아가고 있어.


인어공주가 지금 어디에 살고 있는지는 아무도 몰라. 알 수 있는 건 수영선수라는 거 정도야. 하지만 아쉬워할 필요 없어. 올림픽 최초 여자 수영 금메달 소식이 들리는 날 수영선수가 된 인어공주를 만날 수 있을 테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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