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진짜 내 마음은

by 새나

수요일 저녁 퇴근한 아빠가 은구를 보며 말했다.

"아파트 단지에 집 없는 떠돌이 개들이 나타난다고 하니 조심해"

"집 없는 개들이?"

"그래. 떠돌이 개들이 아이들 놀이터에도 나타났다고 하는구나"

은구는 멀뚱히 아빠를 바라보았다. 몇 주 전부터 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 안내방송을 했었다.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지만 은구는 처음 듣는 이야기인척 했다.

"물거나 사람을 공격한데?"

아빠는 은구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은구가 집 없는 개들을 무서워하는 것 같아 보였다.

"은구야, 내일부터 아빠랑 학교에 같이 가자."

엄마가 아무 말도 없이 집을 나간 뒤에 집에는 은구와 아빠 둘 뿐이다. 아빠는 회사일 때문에 바쁘셔서 은구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지 않다. 아빠는 매일 바쁘고, 주말조차 회사에 나가야 할 때도 있다. 집에 있을 때조차도 아빠는 서재방에서 일을 해야 하니까. 은구는 다 괜찮았다. 아빠가 일을 해야 학교도 가고 학원도 갈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

아빠가 학교에 데려다준다는 말에 슬며시 웃음이 나오는 걸 막을 수 없었다. 학교 가는 길은 아빠랑 오롯이 함께하는 시간일 것이다. 은구는 기분이 좋아 잠들기 전까지 입가에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다음날 오전, 은구는 아빠 손을 잡고 학교에 갔다.

"아빠는 떠돌이 개들 봤어?"

"아니."

"그럼 떠돌이 개들이 우리 아파트에 나타난다는 걸 어떻게 알았어?"

"경비아저씨가 가르쳐 주셨어. 그 개들이 아이들을 공격할 수도 있으니 조심하라고."

"아! 아빠 그럼 우리..."

'띠리 리리 띠리 리리' 아빠 바지주머니 속에서 전화벨이 울렸다.

"잠깐만. 은구야."

아빠는 꼭 잡고 있던 은구 손을 놓고 전화를 받았다. 회사에서 온 전화인 것 같다. 멈춘 아빠의 걸음은 앞으로 나아가지 않았다. 은구는 멍하니 아빠의 뒷모습을 지켜보고 서있었다. 떠돌이 개들 때문인지 대부분의 아이들이 엄마, 아빠 손을 잡고 학교에 가고 있었다. 은구는 아빠 등을 톡톡 치며 말했다.

"아빠 나 먼저 갈게."

아빠는 은구에게 살짝 손을 들어 인사했고 걷다가 뛰다가를 반복하며 집으로 향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은구의 얼굴은 구겨진 종잇장 같았다.

교실에 들어서자 아파트 놀이터에 나타난 떠돌이 개들 이야기로 교실 안은 떠들썩했다.

"은구야 너 봤어?"

"지금 말하고 싶지 않아. 저리 가"

"뭐야. 짜증 나게."

"좋은 말로 할 때 저리 가."

은구는 찬영이한테 사납게 소리쳤다. 은구는 늘 그랬듯이 속상한 마음을 아이들에게 화풀이했다.

'학교에 같이 간다고 했으면서. 지키지도 못할 약속은 왜 한 거야. 다른 애들은 다 엄마, 아빠랑 손잡고 등교하는데. 왜 나만. 왜 맨날 나만 혼자야.'

"야! 박찬영 너 이리 와"

자리로 돌아가던 찬영이가 걸음을 멈추고 돌아보았다.

"왜? 저리 가라고 할 때는 언제고?"

"오라면 와."

찬영이는 은구를 말없이 바라보았다. 그리고 한숨을 쉬었다.

"기분 상했다면 미안해. 난 그냥..."

은구가 씩씩대며 찬영이 쪽으로 다가왔다. 은구는 찬영이 얼굴을 툭툭 쳤다

"야. 오라고 할 때 왔으면 되잖아. 한 대 맞을 거 두대 세대 맞는 거야."

찬영이 눈에 눈물이 찔끔 났다. 그때 반장 나애리가 소리쳤다.

"선생님 오신다. 자리로 돌아가."

은구는 화가 나면 아이들을 괴롭힌다. 은구도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엄마가 집을 나가고 아빠는 회사일로 바빠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다. 아빠랑 게임도 하고 싶고, 축구도 하고 싶은데 은구는 매번 입속에 맴도는 말을 삼켜 버렸다. 그렇게 삼켜 버린 말 때문인지 은구 마음에 병이 났다. 한 달에 한번 의사 선생님을 만나 치료도 받고 있다. 약을 먹으면 화나는 마음이 사라졌다가 오늘처럼 약을 깜빡하고 먹지 않은 날은 친구들에게 소리 지르며 폭력적인 행동이 불쑥 나타난다.

은구는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왔다. 오늘은 방과 후 수업도. 학원에도 가지 않았다. 식탁 위에 놓인 약봉지에서 약을 꺼내 먹었다. 소파에 앉아 거실창 너머의 놀이터를 바라보았다. 며칠 전만 해도 떠들썩하던 놀이터가 고요했다.

"떠돌이 개..."

떠돌이 개들 때문에 시끄러운 놀이터가 조용했다. 그때였다. 놀이터 풀숲 틈으로 흰색 개 한 마리가 보였다. 깜짝 놀라 가슴이 쿵쿵 뛰었다. 하늘이 갑자기 어둑어둑 해졌다. 번개가 번쩍 치더니 뒤이어 쏴아아 빗소리가 들렸다. 놀이터에 있던 개는 재빨리 미끄럼틀 밑에 몸을 숨겼다. 배를 바닥에 대고 비가 그치기를 바라는 개의 눈과 은구의 눈이 마주쳤다. 어른들이 말하는 사나운 떠돌이 개의 눈이 아니었다. 은구는 어제 먹다 남은 치킨 몇 조각을 봉지에 담아 놀이터로 향했다.

"안녕. 배고프지 이거 먹어"

은구는 미끄럼틀 앞에 봉지를 휙 던져주었다. 개는 킁킁 냄새를 맡더니 허겁지겁 치킨을 먹기 시작했다. 치킨을 먹는 개의 배는 홀쭉했다. 며칠을 굶은 거야. 은구는 떠돌이 개가 안쓰러웠다.

"너도 가족이 버렸구나. 나도 그래. 엄마는 나를 버렸고, 아빠는 나보다 일이 더 중요한 것 같아. 휴..."

"사정이 있었을 거야."

"뭐야. 네가 말한 거야?"

"응. 주인이 나와 대화하고 싶다고 인간말 번역기칩을 내 몸에 심어 두었거든."

"정말? 그런 것도 있어. 너 대단한 개였구나."

"대단하기는. 버려진 개일뿐인데."

"넌. 그런데. 어쩌다가 떠돌이 개가 된 거야?"

"이유는 모르겠어. 그냥 어느 날 보니 버려져 있었어."

"널 버린 주인이 미워서 사람들을 공격하는 거야?"

"아니야. 난 사람들을 공격하지 않아. 위협을 느껴 송곳니를 드러냈을 뿐이라고."

"너 때문에 우리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공포에 떨고 있는 줄 알아?"

"난 한 번도 먼저 공격한 적이 없어. 아이들이 던진 돌에 내 왼쪽눈을 다쳤지만, 아이들이 놀라까 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도망쳤어. 막대기를 들고 달려오는 아저씨에게 위협을 느껴 사납게 짖다가 온몸에 멍이 들도록 맞은 적도 있었지. 난 절대 사람들을 먼저 공격하지 않았어. 그런데 사람들의 괴롭힘이 날이 갈수록 심해지는 거야. 가만히 있다가는 죽을 것만 같았어. 그래서 그때부터 송곳니를 드러내고 사나운 표정을 짓고 무섭게 짖어댔더니 사람들이 슬슬 나를 피하더라고. “

"나도 그랬어. 관심받고 싶어서 아이들을 괴롭히기 시작했어. 처음에는 장난이었는데 계속하다 보니까 점점 심해졌어. 지금은 약을 먹지 않으면 공격성을 스스로 막지 못해."

"너의 진짜 마음은 어때?"

"진짜 마음?"

"그래. 관심받고 싶은 거지. 친구들한테도. 아빠한테도 말이야."

"응... 모두들 나는 안중에도 없으니깐..."

"쉿! 저기 사람들이 오고 있어."

"얼른 숨어. 너를 잡으러 온 거 같아."

경비아저씨와 유기견구조대 사람들이 놀이터 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아마도 누군가 신고를 한 게 틀림없었다. 떠돌이 개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위협적이지 않았다. 사람들이 오해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은구는 어른들한테 떠돌이 개는 위험하지 않다고 착한 개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그때였다. 경비아저씨와 눈이 딱 마주쳤다.

"너 703호 은구 아니니?"

"네. 아저씨."

"얼른 이리 와. 위험해. "

"아저씨. 이 개는 위험하지 않아요. 착한 개예요. 봐봐요. 저 하나도 안 다쳤잖아요."

"아니다. 언제 공격성을 들어낼지 몰라. 동물이라는 게 사람 같지 않아서."

은구는 개 발을 툭툭 치며 도망치라는 신호를 보냈다. 개는 동구의 눈을 바라보며 찡긋 윙크를 하고 풀숲으로 내달렸다. 사람들은 개 뒤를 따라갔다. 눈 깜짝할사이 사람들 눈앞에서 사라졌고 개를 쫒던 사람들은 빈손으로 돌아가야 했다.

며칠뒤 놀이터 바닥에서 전단지 한 장을 발견했다. 전단지에는 그날 놀이터에서 만난 개 사진이 있었다.

[이름은 솜이. 특징은 사람말을 할 수 있음]이라고 적혀있었다. 솜이는 버려진 개가 아니었다. 주인이 애타게 찾는 개였다.

은구는 솜이한테 이 소식을 알려주고 싶었다. 은구는 전단지를 들고 솜이가 있을 만한 곳을 샅샅이 찾아다녔다. 그때였다. 아파트 화단 구석에 솜이가 몸을 움츠리고 가뿐 숨을 내쉬고 있었다. 사람들에게 도망쳐 이곳에 몸을 숨긴 듯했다.

“솜이야!”

“내 이름을 어떻게…”

“이거 봐! 주인이 널 찾고 있었어! 널 버린 게 아니었어!”

“정말이네… 날 버린 게 아니었어…”

“잠깐 기다려봐. 내가 너 주인한테 전화해 줄게.”

“여보세요. 솜이 찾는 전단지 보고 연락드렸어요. 여기 한빛아파트 107동 6호 라인 화단이요. 여기로 오시면 되세요.”

솜이는 주인이랑 산책 중 주인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떠돌이 개를 따라가다 길을 잃어버렸다. 한참을 헤매다 주인과 있던 자리로 돌아갔지만 이미 주인은 다른 곳으로 떠난 뒤였다. 솜이는 매일 같은 자리에서 주인을 기다렸지만 주인은 나타나지 않았다. 솜이를 기다리는 것은 솜이를 괴롭히는 사람들뿐이었다. 그렇게 솜이는 도망쳐야 하는 떠돌이 개 신세가 되어 버렸다.

“은구야 고마워!”

“고맙긴. 주인을 찾아서 다행이야!”

“넌 참 따뜻한 아이구나. 너의 진짜 마음을 보여줘!”

“응? 나의 진짜마음?”

“그래. 화가 나면 화가 난다고 말하고. 함께 놀고 싶음 함께 놀고 싶다고 말할 수 있는 진짜 네 마음을 보여줘. 꿀꺽 삼켜 버리지 말고. 이제 하고 싶은 말들을 밖으로 뱉어 내 봐. 응?”

“이런 날… 아이들이 좋아해 줄까. 아빠는 어떻고. 일하는데 귀찮게 한다고 화내지는 않을까.”

“아니야. 은구야. 내가 만난 사람 중에 넌 아주 착하고 따뜻한 사람이었어. 너 자신을 믿어봐.”

그때였다. 솜이와 은구가 있는 곳으로 긴 머리를 찰랑이며 상기된 표정으로 한 여자가 달려오고 있었다. 솜이 주인임에 틀림없었다. 솜이를 보자마자 왈칵 솜이를 껴안았다. 솜이도 주인 품에 폭 안겼다. 솜이 눈에 송골송골 이슬이 맺혔다. 은구는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은구 마음에 몽글몽글 솜털 풍선이 날아올랐다.

‘카톡’은 구 폰에서 나는 소리였다.

아빠한테 톡이 왔다.

'약속 못 지켜서 미안해. 이번 주말에 아빠랑 축구하러 가자. 아들 아빠가 사랑한다.'

은구는 아빠한테 답톡을 보냈다. ‘응 알았어. 그리고 나도 아빠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