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할 기회를 보장하라

2017.9월

by 새나

9월에는 추석이 있다.

9월은 며느에게는 오지 않았으면 하는 달이기도 하다

요즘은 시대가 바꿔서 차례음식을 집에서 하지 않고 전문 전집에 주문을 해서 하는 집들도 많다고 하는데 아직 여기는 옛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며느리, 아내, 엄마 파업 선언을 외치라는 민법 교수님의 말이 생각이 난다.

할 거 다 하면서 공인중개사 시험에 합격하길 바라는 것은 욕심쟁이라는 학개론 교수님 말 역시 머릿속을 맴돌았다.

추석에 전을 굽는 것이 힘든 게 아니었고, 친척들 밥상 차리는 것이 싫은 게 아니라 공인중개사 시험에 합격하길 위해 공부가 하고 싶었을 뿐이었다.


"어머님 이번에는 음식을 적게 하는 게 어때요?"

"하던 게 있는데 적게 할 수 있겠나? 음식은 넉넉해야지"

"요즘은 전문 전집에서 많이들 주문해서 한다고 하던데요?"

"사는 음식을 어떻게 믿고 차례상에 올린다는 거야?............ 중략"

시어머니의 뜨거운 눈빛을 받으면서 차례를 왜 지내야 하는지 정성이 필요한 이유를 한 시간가량 들어야 했다.

며느리 파업? 보통 강심장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냥 운만 띄웠을 뿐인데 시어머니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었고 그 대가로 나는 한 시간가량 시어머니의 이야기를 들어야 했고 그 해 추석 음식은 다른 해 보다 굽는 전의 개수도 늘어났고 양 또한 두배로 늘었다.

물론 전을 굽는 시간 또한 두배로 늘어났고 며느리 파업을 꿈꾸었던 나는 하루 반나절이 넘게 전을 굽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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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나의 앞치마를 댕기며 이것 해달라 저것 해달라 조르고 있고 프라이팬의 전들은 잽싸게 뒤집어야 하는 상황에 누구 하나 나를 봐주는 사람이 없었다.

남편은 추석 연휴 전날 초등 동창들을 만나 새벽까지 있다가 늦게 들어와 대낮까지 침대에서 일어나지 않고 있었다.

"아빠한테 가서 놀아!"

"아빠는 무슨 아빠 피곤하니깐 그냥 자게 내버려두고 조용히 놀아라!"

시어머니가 잽싸게 나의 말을 가로채 아이들이 남편이 자고 있는 방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했다.



인덕션 불을 끄고 프라이팬에 놓여 있던 전들을 소쿠리에 담아 놓고 나는 아이들과 거실로 갔다.

나를 바라보는 시어머니의 따가운 눈빛을 무시 한채 아이들에게 놀거리를 마련해 주고 있었다.

소심한 무언의 시위를 하고 있었다.

시험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을 분명히 알고 계셨던 시어머니의 행동에 서운함이 커져 갔고, 아이들이 뜨거운 기름이 튀는 부엌에서 놀아 달라고 보채는 모습을 보시고도 남편을 깨우지 못하게 한 시어머니의 말에 나도 모르게 욱 하는 감정이 올라왔다.

나로서는 최대한 나의 감정을 조절하면서 아이들과 놀이 속에서 그 감정들을 누르고 있었다.

1~2시간이면 끝날 전을 굽는 시간이 5시간이 넘는 시간이 지난 뒤에야 전 굽는 시간이 마무리되었다.


전을 마무리하고 남은 나물들을 손질하고 씻고, 삶고를 반복한 다음 개수대에 쌓여 있는 설거지들을 정리하고 주방 바닥에 튀어있는 기름들을 깨끗이 닦아내고는 차례음식 준비가 끝났다.

잠시 한숨 돌리고 의자에 앉아 있으니 저녁식사 시간이 되고 다시 저녁을 준비한다.

친정으로 가기 전까지 나의 추석명절 연휴 동안의 일과이다.


그날 밤 남편에게 일찍 일어나서 아이들도 좀 봐주고 청소도 같이 해주면 안 되냐고 낮동안 불편하고 불만스러웠던 감정들을 마구 쏟아 냈다.

남편은 "그래 미안하다 힘들었지?"라고 말해 주기는 커녕 하루 낮잠 자는 걸 가지고 이해를 못해주냐 너 혼자 전 굽은 것도 아니고 그 정도는 할 수 있지 않느냐는 식의 말들을 나를 향해 쏟아 냈다.

결국은 서로의 감정만 상하게 하고 아무런 소득 없이 불편한 감정만 더 쌓이고 대화는 종료되었다.

아이들을 재우고 잠든 아이들 얼굴을 보니 갑자기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친정엄마가 많이 보고 싶은 밤이었다.




[실행, 실행, 또 실행하라 누구에게나 성장할 기회를 보장하라

무언가를 시작하는 좋은 방법은 말은 그만하고 행동에 옮기는 것이다

꿈꾸고, 믿고, 도전하고, 실행하라]

- 디즈니 웨이 책 내용 중에서 -


실행... 실행... 실행... 실행해야 엄마의 공부로 성장할 기회를 얻을 수 있다는 디즈니 웨이 책 속의 내용처럼 오늘 하루 전을 굽는 시간으로 모두 활용해 버린 나의 시간을 잠자는 시간을 줄이고 하지 못했던 시험공부를 하기로 했다.

오늘 하루 분량 모의고사 문제지를 타이머를 맞추어 풀었고, 모의고사 풀이 동영상까지 시청했다.

눈물 젖은 빵이 아니라 눈물 젖은 시험지가 되어 버렸던 그날 밤은 며느리로서 엄마로서 파업을 선언하고 싶을 만큼 힘든 밤이었다.


[꿈꾸고, 믿고, 도전하고, 실행하라] 월트 디즈니의 경영철학처럼 공인중개사가 되겠다고 꿈을 꾸었고 나는 시험에 당당히 합격할 수 있을 거라고 믿었고, 엄마로서 아내로서 살아가면서 엄마의 돈 되는 공부를 도전하고, 매달 예기치 못한 일들이 생기고, 엄마의 공부를 방해해도 꿋꿋이 실행하기로 결심했다.


나의 공부를 지지해 주는 사람이 없다고 서운해하지 않기로 했다.

나의 공부를 응원해 주는 사람이 없다고 공부를 포기하지 않기로 했다.

묵묵히 나의 방식대로 공부를 이어나가기로 또 한 번 다짐을 했다.

매달 나의 공부를 방해하는 새로운 문제들이 나의 앞에 떡하니 나타나지만 [나의 공부]만 생각하기로 했다.


명절 연휴 때는 모든 일이 끝난 밤 모든 사람이 잠든 시간에 나의 공부가 시작되었다.

공인중개사 모의고사를 치고, 채점하고, 문제풀이 동영상까지 보고 틀린 문제는 다시 한번 체크해서 틀린 부분은 기본서를 다시 한번 정독하고 반복해서 틀리는 문제는 따로 오답노트를 만들어 적어 두었다.

명절 연휴 친척들이 있는 낮 시간 동안은 스마트폰에 다운로드해둔 공인중개사 기출문제 앱을 반복해서 풀면서 시험문제를 자연스럽게 읽는 연습으로 문제에 익숙해지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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