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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로시 Dec 16. 2024

복고풍으로 채우는 시선

모지코 레트로

비어 있는 것들을 생각한다. 비어진 관계와 비어진 통장과 비어진 하루에 대해. 비워야 할 것들을 비우지 못한 텅 빈 허무는 공간을 잃었다. 채워질 것들을 기다린다. 채워질 관계, 채워질 통장, 채워질 하루를 기다린다. 낯선 의자에 앉아 낯선 공기 속에서 낯선 생각들을 만났다. 


모지코는 일본 후쿠오카현 기타큐슈시 모지구에 있다. 간몬해협에 닿아 있는 기타큐슈항을 구성하는 지역을 중심으로 한다. 120년 전 문을 연 모지코 항구는 지금도 메이지 시대부터 쇼와 초기에 걸쳐 만들어진 운치 있는 건물이 남아 있다. 모지코 레트로라는 이름으로 규슈의 인기 관광지 중 하나다. 1927년 입출항 여객선의 수속을 밟는 사무소로 이용한 모지우선 빌딩, 팔각형의 옥탑과 오렌지색의 외벽이 특징적인 구 오사카상선등이 유명하다. 그 외에도 오르골 박물관, 기념품을 사기 좋은 해협 플라자, 블루윙모지, 구 모지세관등이 있다. 


교통의 발달로 모지항은 더 이상 교통의 요지 기능을 하지 못했다. 사람들의 발길이 비어지며 모지항은 쇠퇴되어 갔다. 낡고 오래된 것들에 레트로라는 이름이 새겨지며 사람들의 발길이 채워지기 시작했다. 고풍스러운 옛 모지항의 풍경이 사람들의 눈길을 발길을 멈추게 했다. 

오래된 것에 새로운 것을 채우는 일은 일본만의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 곳곳에도 복고풍을 열광하는 시선들이 채워지고 있다. 동네 상점가를 걸었다. 사람들로 채워져야 할 상점들이 텅 비었다. 임대문의라는 네 글자만이 덩그러니 붙어 있다. 


비어진 낡고 허물어져 가는 상점에 고기 굽는 냄새가 채워졌다. 비워졌던 길가에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오래된 것에 사람들이 몰렸다. 낡고 허름한 건물에 추억을 찾는 사람들로 붐볐다. 나도 그곳에 있었다. 오래전 보았던 식기류와 그림과 사진들이 가게 안을 채웠다. 우리는 가게 안에서 낯섦과 익숙함을 오갔다. 닮아 있지만 다름이 있었다. 




비워진 것은 곧 새로운 것으로 채워진다. 그렇다고 모든 것이 채워지는 건 아니다. 채워질 만한 이유가 있어야 채워진다. 관계도 그렇다. 비워진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지 않을까. 생일 축하 메시지가 사라지고, 명절 안부 연락이 줄어드며 관계도 비워진다. 나도 누군가에게 묻지 않는 안부를  기다렸다. 관계도 영업이다라는 말을 들었을 때는 어떻게 그럴 수 있어 생각했다. 관계는 진심이어 했다. 어떤 이해관계가 없는 순수한 마음으로 이어져야 했다. 사람들은 가끔 나보고 세상물정 모른다고 말한다. 세상이 그리 순수한 것은 아니라고. 비어진 관계가 아직은 어색하다. 그렇다고 채울 만한 이유도 찾지 못했다. 나 역시 이해관계를 저울질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비워진 관계는 채워질 이유가 있다면 채워질 거다. 구운 카레를 먹기 위해 빈 의자가 채워지는 것처럼.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면 채워질 것이며, 그 이유를 찾지 못한다면 비워질 거다. 난 아직 그만한 이유를 찾지 못했다.

 인생은 망망대해를 홀로 항해하는 것과도 같다고 말한다. 지금의 내가 그렇다. 홀로 어딘가를 향하는 것 같지만 그 길을 알지 못했다. 함께 하면 그 길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함께 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싶어 기웃거렸다. 함께를 권했지만 자연스러운 거절을 받았다. 자연스러운 거절이라. 애매모호한 거절이었다. 적당한 거리를 두고 적당한 함께를 이어오던 관계는 비워졌다. 적극적이지 못한 나의 태도에도 문제가 있었다. 너무 빨리 다가가려고 했던 나의 조급함이 부담감으로 닿았을지도. 함께 할 이유를 찾지 못했을지도. 여러 이유들이 있었을 거다. 함께 하지 못할 이유를 그들은 찾았고, 나는 그들보다 조금 늦게 그것을 찾았을 뿐이다. 


홀로 낚시를 즐기는 사람의 뒷모습이 평온해 보였다. 혼자라 외로운 것만은 아니었다. 모지코항은 홀로 낚시를 즐기는 사람들이 있다. 단체 여행객들 사이에서, 삼삼오오 모여 걷는 사람들 사이에서, 홀로 낚시를 한다. 고요한 그들의 등에 낭만이 있었다. 나도 그들처럼 낭만을 느껴보고 싶었다. 홀로 낚시를 즐기는 기분이 궁금했다. 내 눈에 비친 그들의 낭만은 혼자여야 했다. 혼자라서 가능한 일이었다. 


함께 만을 고집할 필요가 있을까. 혼자도 나름 낭만이 있다. 


블루윙 모지는 전체 길이 108m에 이르는 보행자 전용의 푸는 색 도개교이다. 배가 지나가는 시간에 맞춰 하루에 6회 음악과 함께 다리가 수면에서 60도 각도까지 천천히 올라간다. 다리가 다시 내려와 닫힌 후에 처음 건너는 커플은 사랑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데이트 코스로 유명하다. 


우리의 사랑은 이미 이루어졌으니 그냥 걸었다. 연인의 풋풋한 감정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인 우리다. 다리가 두 개로 갈라져 위로 올라가는 장면까지는 보기로 했다. 곧 다리가 서로 헤어졌다가 다시 만난다고 단체 여행객들의 말소리가 들렸다. 아마 함께 한 가이드가 알려 준 정보라 믿을 만하다고 생각했다. 우리도 단체 여행객들 틈에서 다리가 헤어지기를 기다렸다. 시간은 흘렸고 다리는 헤어지지 않았다. 기다림에 지친 우리는 다리 위를 가로질러 걸었다. 그리 바쁜 일정이 없었던 우리지만 그 순간을 기다리는 수고스러움은 허락하지 않았다. 


오르골 가게를 지나 기념품가게들을 구경했다. 바나나가 유명한 모지코에는 바나나로 만든 아이스크림과 과자들이 많았다. 모지코에서만 먹을 수 있는 것들을 손에 쥐고 비어진 의자에 앉았다. 고풍스러운 풍경을 눈에 담으며 모지코의 맛을 느꼈다. 별다른 맛은 아니었다. 모지코에서 먹는 바나나로 만든 과자와 아이스크림이라는 거.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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