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모치해변
이정명 소설가의 별을 스치는 바람의 배경은 후쿠오카다. 정확히 말하면 후쿠오카 형무소다. 지금은 옛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지만 새로 지어진 후쿠오카 구치소가 형무소의 모습을 대신해주고 있다. 모모치해변에서 멀지 않은 곳에 소설의 이야기가 있다. 소설에 진실이 있다.
윤동주 시인과 사촌 송몽규가 옥사한 후쿠오카 형무소. 일제의 모진 고문에 해방을 고작 몇 달 앞두고 이곳에서 숨을 거두었다. 1945년 2월. 윤동주의 고향집에 한 통의 편지가 배달된다. '16일 동주 사망. 시신 가지고 오라' 푸르고 푸른 그의 나이 28세였다.
소설은 윤동주 시인이 옥사에 갇혀 지냈던 진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인위적으로 가리려고 했던 진실에 대한 이야기였다. 책에서 찾은 윤동주 시인을 기억하고 기록했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 그가 머물렀던 좁은 철장 속 좁은 감방이 있다.
"찾아도 없으면 우리가 만들어야 하겠지. 희망, 행복, 꿈같은 것들과 멋진 시를 말이야. 우리가 바라는 시는 종이 위가 아니라 모든 곳에 있어. 좁은 감방 안에, 굵은 철창 속에 말이야. 나를 가둔 철장 덕분에 난 더 절실한 시를 쓸 수 있게 된 거야. "
<별을 스치는 바람 중에서>
모모치 해변은 하와이산 모래를 공수해 조성한 인공 해변 공원이다. 이국적인 휴양지 풍경을 가지고 있어 관광객들의 포토 스폿으로 인기가 좋다. 레스토랑과 상점이 모여 있어 입과 눈의 즐거움을 더해 준다. 해가 지는 풍경이 멋져 일몰 명소로도 유명하다. 해가 지는 모모치 해변을 구경하고 모모치 해변 입구에 위치한 후쿠오카 타워 전망대에 올라 야경을 보거나, 후쿠오카 타워 외벽에 불빛을 감상하는 것도 좋다. 우리는 멋진 야경과 외벽 불빛을 보지 못했다. 해가 지기 전에 후쿠오카 형무소로 향했다. 구글지도가 알려주는 대로 걷다가 서다가를 반복했다. 구글의 길잡이가 제 할 일을 해내지 못할 때면 우리는 시간과 체력을 소비해야 했다. 해는 곧 질 것 같고, 좋았던 날씨에 먹구름이 드리운다. 날씨까지 도와주지 않는구나.
우리는 걸어왔던 길로 다시 되돌아갔다. 결국 후쿠오카 형무소를 찾지 못했다. 여행객들이 자주 찾는 곳이 아니라 구글지도가 몰랐던 걸까. 처음부터 택시를 타고 움직여야 했을까. 시간이 지나고 나면 후회 투성이다. 조금만 더 가면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한 번만 더를 외치기에는 모두가 많이 지쳐 있었다.
함께 하는 여행은 혼자만의 생각으로 움직일 수는 없다. 서로의 배려가 필요한 순간이 여행의 순간마다 찾아왔다. 그 순간은 나만 포기하면 되는 일이었다. 소설 속에서 만났던 윤동주 시인의 흔적을 만나고 싶은 건 온전히 나의 마음이었기에. 그 마음을 접어두기로 했다. 훗날 다시 후쿠오카를 찾는 다면 그때는 많은 사람들이 윤동주 시인을 만난 흔적들이 쌓여 구글지도가 헤매지 않기를.
여행에 의미를 담는 것은 아니다. 익숙했던 곳에서 떠나 온 순간부터 새로운 것들 투성인 일상을 마주 한다. 목적을 두는 것도 아니다. 이번 여행에서 어떤 일이 있어도 달성해야 하는 목적 있는 여행도 아니다. 우리의 여행이 그렇다. 누군가가 지나간 여행지를 찾고, 한 번은 가보고 싶었던 곳으로 발길을 옮긴다. 갑작스러운 사건들을 만나면 일정은 새로운 곳을 향했다. 속상함이 없는 건 아니었다. 유일하게 한 번은 가보고 싶은 곳이었다. 이정명 소설가의 별을 스치는 바람을 읽고 후쿠오카 여행을 떠나 왔다. 그래서 그 마음이 더 컸는지도 모르겠다. 우리 모두가 이 소설을 읽었다면 해가 지는 것은 중요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다리가 아픈 것은 아무것도 아닌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아쉽지 않다고 말하지만 아쉽다. 아쉬운 게 사실이다.
여행의 순간을 남기는 사람들로 가득한 이곳 모모치해변을 떠났다. 더 있어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한 우리는 돌아왔던 길로 되돌아갔다. 하루의 고단함을 내려놓기 위해 숙소로 향했다. 잠깐의 휴식을 즐기고 하카타의 밤거리를 걷기로 했다. 여행의 낮과 밤은 달랐다. 아이와 함께 즐길 수 있는 밤은 아니었다. 불안과 흔들림을 자주 마주 했던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