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도로시 Dec 06. 2024

고요한 배려

라쿠스이엔

라쿠스이엔은 스미요시 신사 북쪽에 위치한 일본 정원이다. 메이지 시대에 지어진 하가타 상가의 별장을 다실동으로 개축하고, 그 안에 당시의 다실을 '라쿠스이엔'으로 복원했다. 눈이 즐거워지는 아름다운 일본정원이다. 정원 가운데 위치한 연못을 따라 걸어 본다. 100그루의 단풍은 아직 초록이다. 고즈넉한 분위기에 느림의 시간을 느껴본다. 


촘촘한 시간을 오가던 나를 잠시 내려놓는 시간을 가져본다. 여행이니깐. 조금은 느리게 걸어보기도 한다. 여행마저 정신없이 보내고 싶지는 않았다. 아이들에게 물고기밥 한 봉지씩을 건넸다. 물고기밥은 매표소에서 구매할 수 있다. 아이는 아이대로 이곳의 시간을 보내고, 나는 나대로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함께 떠나온 여행이지만 우리는 가끔 따로 여행을 즐겼다. 


물고기밥을 든 아이들 앞으로 물고기 떼들이 헤엄쳐 온다. 하늘을 날던 비둘기도 아이들 앞에서 날개를 접는다. 비둘기와 물고기에 둘러싸인 아이들 얼굴이 정원의 청량함을 닮았다. 잠시 우리는 따로의 여행을 즐기기로 했다. 정원을 산책하다 쉼을 내어주는 벤치가 곳곳에 있었다. 누군가의 쉼을 허락했던 빈 의자에 앉았다. 정원을 관리하는 일본 할아버지의 모습을 조심스럽게 바라보았다. 시선이 부담스럽지 않게 곳곳에 핀 꽃들에게도 잠시 눈을 돌렸다. 

정원을 관리하는 할아버지의 수고스러움으로 누군가는 휴식을 만날 수 있다. 관리하지 않는 곳은 풀들이 금세 자란다. 우리 집 앞마당 작은 텃밭만 보아도 그렇다. 손길이 가지 않던 구석 진 텃밭에는 풀들이 가득했다. 누군가 먹다 버린 과자봉지 쓰레기도 보였다. 자주 돌보지 못한 텃밭은 질서 없이 방치되어 있었다. 풀을 뽑고, 쓰레기가 사라진 자리에 고추모종을 심었다. 여름 내내 잘 견디어 가을에 매콤한 고추들이 열렸다. 반찬도 해 먹고, 찌개에도 넣어도 먹었다. 입동이 지나도 여전히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고 있다. 마냥 좋아할 만한 일도 아니다. 이상기후에 정신 못 차리는 식물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고즈넉한 일본 정원에 앉아 우리 집 텃밭에서 철 모르고 크고 있는 고추모종을 생각했다. 


무엇을 하지 않아도 되는 이 공간이 좋았다. 그저 가만히 앉아 자유롭게 생각나는 것들에 대해 생각하고 또 다른 생각을 하고를 반복했다. 일부러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애쓰지 않았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에 대해 그저 알아채리고 인정하며 생각을 흘려보냈다. 억지로 무엇인가를 하려고 애쓰지 않았다. 물소리와 새소리 그리고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리는 일본정원에서 그저 의자에 앉아 바라보고 생각했다. 가끔 사진을 찍었다. 아이들 모습을 담기도 하고, 일본 정원의 흐르는 시간을 찍기도 했다. 이곳에 오래 머무를 수는 없다. 우리만의 정원이 아니었다. 이곳 정원을 보러 사람들이 오면 우리는 자리를 떠나 몇 걸음 앞으로 걸었다. 고요한 정원에 사람들의 말소리로 가득 차면 우리는 따스한 차 한잔을 하러 갔다. 


 

일본 전통 다다미방에서 즐기는 차 한잔의 여유를 느끼기 위해 정원 안쪽 카페 안으로 들어왔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정원의 모습은 또 다른 모습이다. 소박하지만 깊어 보이는 정원의 풍경을 바라보고 있다 보면 차와 다과가 나온다. 자연스럽게 고요해지는 공기에 우리는 잠깐 침묵했다. 서로 마주 보며 빙그레 미소 짓는 것 말고는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다. 가끔 말차가 담긴 찻잔을 들고 차를 마시는 소리와 새로운 손님이 들어오는 소리만이 있었다. 고요해도 너무 고요한 공기가 답답해질 때쯤 굳게 닫힌 문이 열렸다. 문을 열고 정원을 구경할 수도 있다며 친절하게 문을 열어주는 점원에게 고개를 숙여 감사를 전했다. 


오랜 시간 머물 수 있는 공간이 아니라 눈치껏 자리를 비워야 한다. 들어오는 사람과 나가는 사람이 교차할 때마다 빈자리를 바라보던 우리다. 더 이상 빈자리가 없음을 알고 우리는 남은 말차를 마시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랜 시간 머물고 싶은 곳이지만 오랜 시간 머물 수 없는 곳이었다. 작은 공간에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기에 배려가 필요한 공간이기도 하다. 


잠깐의 쉼을 허락했던 라쿠스이엔을 나왔다. 우리가 떠나간 자리에 새로운 사람들이 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