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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문 Aug 27. 2019

0. 프롤로그

프롤로그

우리 시대의 진정한 평화가 왔다. 2020년대는 많은 이들의 우려와 달리 초반부터 좋은 모습만 보여주었다. 한국전쟁 당사국들이 평화협정을 맺었고, 중동에서도 총성이 멎었다. 극단주의 종교 세력들은 위세가 급격히 줄어들었다. 테러로 인한 사망자 수는 역대 최저였으며, 구호 활동이 활발히 진행되어 난민 문제 해결의 길이 보이기 시작했다. UN의 발표에 따르면 아프리카에서의 기아 아동이 25% 감소했다고 나왔다.


“우리는 함께 평화를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도널드 트럼프가 노벨평화상 시상식장에서 이렇게 말했을 때, 반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기술의 발전, 작아지는 총성, 경제 호황.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사람들은 혼란의 2010년대를 넘어, 행복의 시대가 도래했음에 즐거워했다.


“북쪽…. 운석….”


때문에 한밤중에 트럼프가 다음과 같은 트윗을 올렸을 때 아무도 그 의미에 대해서 신경 쓰지 않았다. 1시간도 지나지 않아 삭제되었기 때문에 그저 사소한 실수라고 넘어갔다. 세계의 이목은 내일 뉴욕에서 진행될 세계평화 정상회담에만 쏠려 있었다. 이번에는 무슨 건설적인 합의로 이 지구에 번영을 가져다줄지 기대했다.


“저희는 인류 사회에 대하여 깊게 생각했습니다.”


유엔 사무총장이 다음과 발언하자 잔치가 끝이 났다. 정확하게는 끝이 날 상황이었다. 사람들은 그제야 트럼프의 삭제된 트윗에 대해서 떠올렸다. 유엔 사무총장은 담담한 어조로 지구의 마지막이 다가오고 있음을 밝혔다. 그는 30여 분 동안 지구에 충돌하는 운석과 이로 인한 생존 가능성, 그리고 이를 준비하는 국제사회의 입장과 질서 있는 마무리 등에 관해서 이야기했다. 그러나 핵심은 단 하나였다.


‘6개월 뒤 지구가 멸망한다.’


유엔 사무총장의 연설이 끝난 다음 세계 각국 정상들은 본국으로 서둘러 돌아갔다. 몇몇은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고, 어떤 국가에서는 벌써 계엄령이 선포되었다. 평화의 노래로 가득 차던 거리는 혼란에 가득 찼다. 처음에는 무슨 소리인지 알지 못했던 사람들로 인해 거리는 조용했다. 그러나 곧 사람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거리는 혼란으로 가득 찼다. 차에 짐을 실어 급히 어디론가 떠나는 사람, 편의점을 약탈하는 사람, 거리의 기물을 파괴하고 다니는 사람. 사방에서 불이 타오르고, 깨진 유리 조각이 나뒹굴었다. 어제까지만 하더라도 영광의 시대에 건배하던 거리의 모습은 금방 사라졌다.


“저희는 지구가 멸망하기 전에 민족의 과제를 마무리하려고 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대국민담화에서 말했다.


“비록 통일은 하지 못했지만, 찰나의 평화라도 이룩하려고 했습니다. 세계 모든 정상이 이에 동의했습니다. 잠시나마 우리가 꿈꾸던 완벽한 평화가 정착된 세상을 만들자고 했습니다. 저희는 그것을 위해서 치열하게 노력했습니다.”


그럼 진작에 만들었어야지. 사람들은 이렇게 비아냥거렸으나, 이제 그럴 여유도 별로 없었다. 대통령은 최대한 질서 있는 마무리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발표했다.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미 지구대에 순경들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고, 사방팔방 위험만이 가득했다.


지구 멸망 발표 이후 4일차. 결국 정부는 계엄을 선포했다. 군인들이 각지에 배치되기 시작했다. 사회는 일시적으로 안정을 되찾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수 시간 만에 다시 혼란한 상황으로 복귀했다. 또한 이번에는 그 정도가 더 심했다. 군인들이 탈영을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배치 직후 바로 도망친 병사도 있었고, 집단으로 집으로 돌려보내 달라고 항의하여 해산한 경우도 있었다. 지휘관들은 명령에 거부하면 즉각 총살에 처할 수 있다고 위협했지만, 숫자에 밀려 결국 모든 요구를 수용해야 했다. 그 결과 계엄 선포 1주일도 지나지 않아 대한민국 국군은 껍질만 남은 사실상 해체 상태에 들어갔다.


지구 멸망 발표 31일째. 국가의 기능은 정지되었다. 청와대는 대부분의 통제권을 상실했다. 거리의 불안은 일상이 되었다. 더욱이 문재인 대통령이 인류보완계획을 위해 미국의 어느 기지로 가버렸다는 소문도 돌았다.


“아무래도 상관없어.”


철민이 중얼거렸다. 정말이었다. 이제 대통령이, 아니 그 양반이 뭘 하든 신경 쓸 일이 아니었다. 대한민국이라는 국가는 이제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 상태였다. 대통령이 도망갔든 그렇지 않던 철민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당장 오늘 먹을 저녁 거리가 떨어진 것이 가장 큰 걱정이었다.


“예수 믿고 천국 갑시다.”


그가 식량을 구하러 간만에 집에서 나왔을 때 가장 마주친 사람은 전도사 박 씨였다. 그는 확성기와 십자가를 들고 자신만의 구원론에 대해서 설파했다. 평소라면 사람들이 시끄럽다며 무시했겠지만,지금 그의 주변에는 꽤 많은 사람이 몰려 있었다. 그들은 한목소리로 박 전도사의 말에 끊임없이 ‘아멘’을 외쳤다.


“학생, 예수 믿어요!”


조용히 지나가던 철민을 전도사 박 씨가 붙잡았다. 그는 괜찮다고 하면서 지나가려 했다. 그러자 박 씨가 외쳤다.


“저기 구원을 거부하는 어린 양이 있습니다!”


그 말이 끝나자마자 사람들은 철민 쪽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저 예수 안 믿는다고요!”

“한 사람이라도 더 살려야 해!”


철민이 완강하게 거절했으나, 광신도들은 그를 붙잡으려고 혈안이 되어 있었다. 그러나 추격전은 오래 지나지 않아 끝났다. 광신도 무리는 철민을 한 번 놓치자,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가 ‘아멘’을 외쳤다. 타인의 구원도 중요하지만, 역시 그들은 자신의 구원이 중요했다.


그는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어느 좁은 골목으로 들어갔다. 골목에는 물건이 타다 만 재들이 가득했다. 철민의 검은 발자국이 거리에 새겨졌다. 발자국들은00 슈퍼를 향해 나 있었다. 진작에 털렸을지도 모르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이었다.


‘다음에 올 사람을 배려합시다. - 주인 백’


00 슈퍼 앞에 철민이 이르렀을 때 그를 맞아준 문구였다. 슈퍼에는 물건이 가득 쌓여 있었다.의외의 일이었다. 분명 약탈이나 사재기 때문에 남는 물건이 없다고 모두 알고 있는 상황. 그러나 지금 철민 앞에 보이는 것은 확실히 그 부족하다는 물건들이었다.


‘어찌 된 것일까?’


곰곰이 생각해 보았으나 답은 나오지 않았다. 어찌되었든 물건은 있으니 철민은 가방에 필요한 몇 가지를 담고 곧 가게를 떠났다. 광신도 무리를 피해 다시 집으로 향하는 길에 철민은 이번에 XX 슈퍼에 붙여진 문구를 보았다.


‘마음대로 가져가시오. 그러나 다음 사람도 생각해줍시다.’


그 다음에 도착한 슈퍼에서도 유사한 문구가 붙어 있었다. 철민은 그제야 사람들이 스스로 질서를 되찾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국가는 사라졌지만, 평안하게 살고 싶은 사람들의 마음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들은 자발적으로 자신들의 질서를 회복시켰다. 지구 멸망까지 2개월이 남은 시점이었다.


기적 같은 일이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시작되었을까. 사람들은 죽음을 이제 기정사실로 받아들였다. 처음에는 그러니까 마음대로 해도 된다고 생각하며 날뛰었다.그러나 점차 시간이 지날수록 그것에 대한 흥미를 잃었다. 더욱이 서로를 갉아 먹으며 행복을 즐기려고 하니, 남아도는 것이 없었다. 지구가 멸망하기 전에 인류가 소멸할 판이었다. 그제서야 사람들은 정신을 차렸다. 소수는 여전히 난동을 부렸지만, 다수는 평안한 죽음을 소망하며 자리를 되찾기 시작했다.


누가 말하지 않아도 거리를 정리하고,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은 체포해 감금 시켰다. 덕분에 비명은 줄었고, 슈퍼에는 지구 멸망 때까지 버틸 수 있는 식량이 다시 쌓이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에서 유일하게 시끄러운 사람들은 광신도 무리였는데, 사람들은 그것 이외에는 큰 피해를 주지 않아 그대로 두기로 했다.


간단한 소식을 전하는 방송도 시작되었다. 방송국을 떠난 일부 인력들이 돌아와 라디오 방송을 송출하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철민은 그 방송이 시작된 날부터 종일 라디오만 듣기 시작했다. 가장 미안했던 사람, 고마웠던 사람, 화해하고 싶은 사람. 여러 사연이 아나운서의 입을 통해서 오르내렸다. 철민은 그 이야기를 들으며 웃다가 울다가 반복했다. 덕분에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어느 정도 멈출 수 있었다.


“우리 모두 기도합시다”


신부가 말했다. 철민은 마지막 미사를 드리기 위해 근처 성당을 찾았다. 성당의 많은 시설이 훼손되어 있었다. 그러나 다행히도 중요한 것들은 파괴되지 않았다고 신부는 하느님의 은총이 있었다고 담담히 말했다.


“우리는 이제 마지막을 맞이합니다. 곧 그분 앞에 서게 됩니다.”


신부가 차분히 강론을 시작했다.


“그분 앞에서 우리는 무엇을 이야기 할 수 있을까요? 어떤 삶을 살았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그분이 다 아실지도 모르겠지만, 이렇게 한꺼번에 많이 올라가면 혼동하실지도 모르겠죠.”


신부가 다소 농담을 섞어가며 말하자, 굳어 있던 사람들의 표정에서 간만에 미소가 보였다.


“저도 그렇고, 여러분도 그렇고 부디 좋은 삶을 살았다고 하느님께 이야기 하실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미사는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신부는 신도들에게 강복을 하고 파견을 선언했다.


“미사가 끝났으니, 그분을 맞을 준비를 하십시오.”

“하느님 감사합니다.”


평소라면 ‘평화로이 가십시오.’라거나 ‘복음을 전파하십시오.’라고 했겠지만 그 날은 ‘그 분을 맞을 준비를 하십시오.’라는 말로 끝을 맺었다. 성체 성사로 그분을 몸 안에 모셨지만, 이제는 그분을 직접 위에서 볼 차례였다.


철민은 집에 도착해서 라디오를 틀었다. 방송은 다행히도 아직 진행 중이었다. 잡음이 심하게 들리기는 했으나, 못 알아 들을 정도는 아니었다.


“오늘도 많은 사연이 있습니다. 이 모든 사연을 읽을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희는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아나운서는 곧 다시 사연을 읽기 시작했다. 철민은 누워서 그 목소리를 조용히 들었다. 이야기가 그의 좁은 방을 가득 채웠다. 철민은 그것들로 호흡 하면서 자신의 이야기는 무엇이 있을지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는 자신의 짧은 인생에 대해 회상했다. 행복했던 유년 시절, 공부에 스트레스만 받던 학창 시절, 그리고 취업에 고통받으며 고생했던 최근까지의 일들을 기억했다. 아주 행복한 인생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무난하게 그리고 평범하다고 할 정도는 되었다. 해볼 것은 다 해보았다. 조금 일찍 삶이 마무리되는 것 같아 안타까웠지만, 깊이 후회할 정도는 아니었다.


철민은 의자에 앉았다. 며칠 동안 생각했던 짧은 인생 회상을 종이에 간단히 옮겨 적었다. 그러고서는 세상에 남기고 싶은 말을 몇 마디 적었다. 마지막 글은 금방 완성되었다. 그는 몇 차례 다시 읽어본 다음 자잘한 표현들을 고치고서 만족의 미소를 지었다.


방 안에서는 여전히 아나운서가 차분한 목소리로 사연을 읽고 있었다.


“이제 지구 멸망까지 3달 남았습니다.”


준비한 사연이 모두 다 읽히자, 아나운서가 간단한 소식을 알리기 시작했다. 항상 첫 멘트는 지구 멸망까지 남은 시간이었다. 이외의 소식들은 어디의 누군가가 어디의 누구를 찾는다는 광고였다. 철민은 그것까지 집중해서 들었다.


“오늘의 방송을 마칩니다. 감사합니다.”


아나운서의 마무리 멘트가 끝나자마자 철민은 라디오를 끄고 침대에 누웠다. 그러고서는 종이 한 장을 꺼내 들었다. ‘해야 할 일’이라고 적힌 종이에 빽뺵한 목록이 나열되어 있었다. 철민은 연필로 ‘미사 가기’, ‘유서 쓰기’를 체크했다.


“이제 하나 남았네.”


그가 중얼거렸다. 철민은 상체를 일으켰다. 그러고서는 약통에서 흰 알약 수십 알을 꺼내 조금씩 나누어 물과 삼켰다. 약 섭취가 끝나자 그는 다시 누웠다.곧 목록에 유일하게 수행되지 않았던 항목에 체크를 하고 눈을 감았다.


‘평안한 마무리’


철민은 금방 잠에 빠져들었다. 아무런 미동도 없이 조용히 잠자리에 들었다. 흔한 일이었다. 질서가 사람들에 의해 다시 잡히자, 그들은 평안한 마무리를 위해 나름의 계획을 세우고 실행했다. 어떤 이는 뛰어 내렸고,어떤 이는 목을 걸었다. 운석과 함께 죽겠다는 사람들도 있었다. 철민은 그중에서 하나를 선택했고, 이행했을 뿐이었다.


지구 멸망까지 남은 시간은 이제 3달이었다. 사람들은 자신들만의 마무리를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서로의 도움을 받으며 마지막 이상을 실현해 나가기 시작했다.어렵지 않았지만, 평소에는 할 수 없었던 특이한 일이었다.인류는 그렇게 점점 자신들의 유일한 터전이었던 지구와 그리고 그 위에 세워진 세계와 작별할 준비를 시작했다.


-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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