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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문 Jul 10. 2020

06. 달려라 달려라

점심시간 풍경

오후 1시 05분. 노동자들은 더러운 장갑을 벗고 물티슈로 손을 닦거나, 옆에 있는 노동자와 잡담을 나눈다. 여유로워 보이는 모양새다. 하지만 물류창고는 지금 극한의 긴장감으로 가득 차 있다. 사람들은 모두 귀를 바짝 세운다. 관리자 쪽에서 무어라고 큰 소리가 들린다. 작업장 입구 쪽에 가까이 서 있던 노동자들이 달리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누군가 또 소리친다.


“아직 지시 없어요, 저거 다른 거 이야기한 겁니다.”


그럼 그들 일부는 멈추면서 아쉽다는 표정을 짓거나, ‘이제 내 알바 아니다’하면서 달려가고는 한다. 나는 그 모습을 불안하게 쳐다본다. 발은 달려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고민된다. 그러던 순간 관리자는


“점심 식사하러 가실게요!”라고 외친다.


그제야 나는 안심하고 달리기 시작한다.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달린다. 관리자가 “뛰지 마세요!”라고 경고하지만, 노동자들은 모두 그것을 무시하고 그저 속도에 몸을 맡긴다. 가끔 관리자가 보다 못해 사람들이 입구로 빠져나가는 길목에 서서 직접 감독하기는 하지만, 사람들은 그때만 잠시 속도를 멈추며 멋쩍게 웃을 뿐이다.


점심을 위해 뛰어가고 있는 사이 나는 잠시 고등학교 때를 떠올린다. 나는 어느 사립 고등학교를 다녔었는데, 재단에서 운영하는 중학교와 다른 고등학교가 서로 붙어 있었다. 그래서 학교 부지가 꽤나 컸다. 이 3개의 학교는 거대한 운동장 하나를 둘러싸고 있었는데, 남은 한 편에 식당이 있었다. 내가 있던 고등학교가 가장 그곳과 멀어서 점심시간만 되면 아주 빠른 속도로 뛰어가야 했다.


점심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리면 학생들은 총알같이 뛰어갔다. 나 또한 배고팠기 때문에 그랬다. 하지만, 매번 갈 때마다 줄은 길게 형성되어 있었다. 간혹 운이 좋으면 선두에서 기다려 밥을 먹을 수도 있었지만, 언제까지나 ‘운이 좋으면’이었다. 더욱이 학생회 임원이라는 애들이 지도를 이유로 수시로 새치기를 해서 조금 일찍 도착했다 하더라도 밀리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그래도 빨리 오는 사람이 빨리 먹었다. 그래서 나는 점심시간 때마다 달렸다. 군대에 와서도 바뀌지 않았다. 자대에 배치되고 나자 사람들이 너나 할 것 없이 밥을 빨리 먹으려고 뛰어다녔다. 이등병부터 중령까지 달리고 달렸다. 나는 이때가지만 하더라도 점심 먹기 위해서 달리는 것은 군대가 마지막일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고, 지금 물류창고에서도 달렸다. 그야말로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을 나는 계속 겪어왔다.


물류창고에서 노동자들이 빨리 달리는 이유가 있다. 점심시간이 50분 정도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다. 더 많이 쉬기 위해서는 더 빨리 달려서 어떻게든 밥 먹는 시간을 줄여야 한다. 그런 목적으로 사람들은 달린다. 


빨리 달려서 도착한 식당. 몇 명의 사람들이 벌써 줄을 서 있다. ‘어떻게 저 사람들은 매번 일찍 도착할까’ 잠시 감탄한다. 그러다 내가 식당에 들어갈 차례가 될 때까지 잠시 멍을 때린다. 


“사원님 좀 떨어져서 서실게요.”


안전 관리를 하는 와쳐(Watcher) 담당 노동자가 나에게 말한다. 나는 아차 하면서 일정한 간격마다 붙여진 노란색 테이프를 밟으며 선다. 그러자 내 뒤에 있는 사람들도 조금씩 밀려간다. 앞의 사람들이 배식을 받기 위해 들어가고다보니 벌써 내 차례다. 나는 배식을 받았다는 기록지에 내 이름을 적고 비치된 비닐장갑을 낀다. 


“왼쪽으로 들어가세요.”


와쳐가 말한다. 나는 왼쪽에 들어가서 밥과 반찬을 푼다. 일회용 플라스틱 도시락통을 비닐장갑으로 만지려니 많이 미끄럽다. 용케도 도시락통을 놓치지 않고 자리를 잡는다. 원래는 반찬을 담아서 바로 도시락통만 가져가면 되었지만, 그렇게 하다 보니 배탈이 난 사람들이 많아서 이렇게 바뀌었다. 


모든 자리에는 칸막이가 쳐져 있다. 또한 착석은 한 자리씩 띄어서만 하게 되어 있다. 나는 도시락통을 내려놓고 장갑을 벗는다. 그리고 칸막이에 설치된 명부에 또 이름을 적는다. 몇 시 몇 분부터 몇 시 몇 분까지 밥을 먹었는지 기록하게 되어 있다. 이후 일회용 젓가락과 숟가락의 포장을 벗기면 그제야 식사를 할 수 있다.


코로나 19가 확산되자 물류창고의 식사 풍경은 이렇게 바뀌었다. 원래는 그저 빨리 달려와서 식판에 밥과 반찬을 푸고 자리에 앉아서 먹기만 하면 되었다. 그러나 지금은 이렇게 번거로운 과정을 거쳐서 밥을 먹어야 한다. 맨 처음 이런 조치가 시작되었을 때는 종이 파일을 이어 붙인 듯한 칸막이가 설치되어 있다가, 다음 주에 다시 가보니 그럴듯한 플라스틱 판으로 칸막이가 바뀌어 있고는 했다.


이렇게 번거롭더라도 사람들은 참는다. 해당 회사에서 확진자가 많이 나왔으니 어쩔 수 없다고 받아들인다. 이렇게라도 코로나 19가 예방된다면 그것이야 말로 좋은 일이라고 생각해보기도 한다. 그런데 그건 참더라도, 오늘 반찬이 별로인 것은 많은 노동자들이 참을 수 없나 보다. 어떤 이는 아예 점심을 굶기도 하고, 다른 이는 컵라면을 가져와서 전자레인지에 돌리고 있다.


내가 다니는 물류창고에서는 흔한 일이다. 점심시간 초반에 잘 관찰하면 사물함 앞에서 무언가를 꺼내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대부분은 스마트폰을 꺼내는 것이지만, 컵라면을 꺼내는 사람도 상당하다. 자신이 가진 여분의 컵라면을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사람도 있는데, 그럴 때마다 훈훈함을 느끼기도 한다. 


나는 아직까지 컵라면을 가져와서 물류창고에서 먹어본 적은 없다. 돈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 ‘이 정도면 그럭저럭 괜찮지 않나’라는 생각도 있었고, 무엇보다 아침 출근할 때 너무 졸려서 가끔 컵라면을 가져가야겠다고 생각해도 빼먹는 게 일상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항상 컵라면을 가져오는 노동자들을 지켜볼 뿐이었다.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벌써 밥을 다 먹었다. 나는 도시락통에 쓰레기들을 올려놓고 물티슈로 내가 있었던 책상을 한 번 닦는다. 식사 종료 시간을 명부에 마저 적고 일어선다. 곧 쓰레기를 쓰레기통에 넣고, 잔반은 잔반통에 버린다. 이제 식사는 다 끝났고 쉴 일만 남았다. 아직 배식 줄은 길다. 나는 그들을 지나쳐가며 지하 1층에 있는 내 사물함으로 향한다.


사물함에서 스마트폰을 꺼내고, 자판기에서 300원짜리 음료수를 뽑는다. 그리고 앉을자리를 찾아본다. 그러나 대부분의 자리가 점령당해서 빈자리 찾는 것이 쉽지 않다. 점심시간대가 2개로 나누어지다 보니 두 시간대가 겹칠 때는 이런 일이 종종 있다. 한쪽은 12시 40분부터 13시 30분까지, 다른 한쪽은 13시 10분부터 14시까지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한 번에 몰리다 보니 밥을 지나치게 늦게 먹게 되는 사람들을 위한 조치이기도 하다. 해당 시간대에 속하는 두 개의 그룹들은 한 달이 지나면 서로의 시간대를 바꾸는 식으로 점심시간을 보내게 된다.


나는 다행히도 앉을자리를 찾았다. 자리에 앉는다. 캔을 까서 한 손으로 들고, 한 손으로는 스마트폰을 하면서 세상 돌아가는 소식들을 살펴본다. 음료수 한 모금과 휴게실에 있는 에어컨 바람에 천국을 느낀다. 하지만 시간은 너무나 빨리 지나간다. 벌써 시계는 13시 50분을 향하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벌써 올라갈 준비를 하고 있다. 14시까지 올라가면 되는 것이지만, 오후 작업을 제시간에 시작하기 위해서는 5분 정도 일찍 올라가야 한다는 암묵적인 규칙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눈치를 보며 더 앉아 있다가 13시 52분에 자리에서 일어선다. 미처 마시지 못한 음료수를 후딱 마시고 쓰레기통에 버린다. 서둘러 스마트폰을 사물함에 넣고 작업장이 있는 3층으로 다시 올라간다. 


점심시간이 끝났다. 이제 퇴근까지는 약 4시간 정도 남았다. 힘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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