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십 살 생일이 지나고 나서야 나는 밥상을 엎었다.
‘밥상을 엎었다’라는 문장은 은유이다.
나는 평화주의자이며 비폭력주의자이다.
폭력적인 말과 행동을 혐오한다. 그러니 실제로 밥상을 엎은 것은 아니다.
2019년 나는 신춘문예에 단편소설이 당선되어 작가가 되었다.
살림과 독박 육아를 하던 중년의 전업주부가 어떤 계기로 글을 쓰게 되었는가. 그 질문을 거슬러 올라가면
그곳에 밥상을 엎는 내가 있다.
말했듯이 당연히 은유이다.
20여 년 동안, 가장 많은 시간을 쏟은,
그럼에도 징글징글하게 싫었던,
그 밥상과 이별했다.
밥상과의 이별은 내게 유의미하다. 밥상을 차리는 나와 밥상을 엎은 나는 완전히 다른 캐릭터이다. 밥상을 차리던 시절의 말수가 적고 순종적인 캐릭터는 밥상을 엎은 후, 목소리가 큰 전사가 되었다. 밥상을 차리던 시절, 전 배우자는 늘 같은 불만을 토로했다. 말이 없다고. 그런데 사실 그때의 내 속에는 분출하지 못한(안 한) 말들이 밀도 높게 들어차 아우성치고 있었다.
매 끼니 새로운 국과 반찬이 있어야 하고, 매 끼니 새로 지은 밥을 먹어야 하는 사람의 밥을 차리는 일은 그야말로 징역형을 살고 있는 기분이다. 맛이 있다거나 없다거나 정성이 부족하다거나, 안 먹는 음식이라거나 차다거나 싱겁다거나.
최악은 비교였다. 청국장을 끓이면 강남의 모처에 있는 식당에서 먹은 청국장이 그렇게 맛있다거나, 고인이 된 지 오래인 누군가의 동그랑땡이, 누군가의 멸치볶음이 모친이 끓인 된장국이 항상 비교 대상이었다. 그는 내가 (본인 입에) 완벽한 멸치볶음과 완벽한 동그랑땡과 완벽한 된장국, 그리고 갓 지은
밥으로 차린 밥상을 치리기를 요구했다. 가족들을 위해 힘든 바깥일을 하는 본인은 그런 밥상을 받는 것이 당연한 권리라고 생각했다.
고역 같은 그 밥상을 차리는데 과연 얼마나 시간을 들여야 할까.
아침 밥상이야 간단하게 끝나지만, 저녁 밥상은 다르다. 밥상에 올릴 국과 반찬을 고민하는 것부터가 커다란 숙제다. 같은 음식이 반복해서 밥상에 올라도 안 되고, 직원식당 식단표와 겹쳐도 안 된다. 내가 좋아하는 것은 제외시키고도 네 명의 입에 맞는 음식을 고르는 것은 쉽지 않다. 가족이라고 해도 어쩌면 그렇게 식성이 제각각일까. 일단 메뉴가 결정되면 마음에 여유가 생기지만, 어떤 날은 오후 내내 결정을 하지 못한다. 그럴 때마다 한숨이 푹푹 나온다.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어, 너는 저녁에 뭐 해 먹니 묻기도 하지만 속 시원한 해결책은 없다. 김치찌개와 된장찌개와 뭇국과 배춧국과 그리고.... 끝도 없는 되돌이표.
마침내 메뉴를 결정하고 나면 재래시장이나 마트에 가서 이런저런 재료를 사 온다. 그 재료들을 손질한 후, 끓이고 볶고 데친다. 어느 때는 튀긴다. 고구마와 당근과 양파를 최대한 가늘게 썰어 튀김옷을 최대한 얇게 묻혀 튀긴다.
드디어 밥상 완성. 그렇다고 이게 끝은 아니지. 밥을 다 먹은 후, 뒤처리가 남았다. 당연히 내가 해야 할 일들이다. 튀김을 한 날엔 기름이 튄 가스레인지를 북북 닦아야 하고, 꽃게탕을 끓인 날은, 밥상에 남은 비린내를 없애기 위해 행주질을 반복한다. 찌고 삶고 부치고 튀긴 그릇과 냄비가 한가득이다. 그때 하도 질려서 지금은 절대로 튀김이나 꽃게는 집에서 요리하지 않는다.
하루 24시간 중, 전쟁 같은 그 저녁 밥상을 위해 쓰는 시간은 적어도 세 시간에서 네 시간쯤. 거의 매일 오후 4시에서 5시 사이에 도보로 10분 걸리는 재래시장으로 장을 보러 다녔다. 아무리 천천히 먹어도 30분쯤이나 걸릴까. 밥상을 치우고 설거지를 마치면 오후 8시쯤 된다.
배우자의 원가족 십여 명을 초대해서 밥을 먹는 일도 종종 있었는데, 그때도 밥을 먹는 시간은 한 시간이 채 걸리지 않는다. 그 한 시간을 위해 며칠 전부터 식단을 계획하고 장보기를 여러 차례하고 밑반찬을 미리 하고, 황태와 고기를 양념에 재우고 튀김과 전을 위해 식재료를 전처리했다. 당일은 아침부터 종일 음식을 해댔다. 기계처럼 그 일을 하며 살았다.
전업주부인 나의 저녁 시간은 자유롭지 못했다. 일 년에 서너 차례 저녁에 외출할 일이 생길 때에는 미리 양해를 구하고 저녁 밥상을 싹 차려서 꺼내 먹기 편하게 준비해 두었다. 그러니 같은 시간에 계속 무언가를 배우러 다닌다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아침 밥상을 차리고 저녁 밥상을 차리기 전까지 겨우 주어진 몇 시간 동안, 문화센터를 기웃거리며 몇 가지를 배우러 다니기도 했다. 그렇지만 정말 배우고 싶어서, 노트 한편에 버킷리스트로 써 놓았던 강좌는 따로 있었다. 그 노트는 여전히 내게 있는데,
하고 싶은 일
성동구민대학 소설창작
매주 월요일 19시
이렇게 쓰여 있다.
소설을 배우고 싶었다.
가까운 문화센터에는 소설창작 수업은 없었다. 단 한 군데 찾아냈는데 성동구에 있는 구민대학에서 강의를 진행하고 있었다. 시간은 오후 7시부터 8시 30분. 한 학기당 12회 진행되는 그 수업에 매주 약 3시간 이상을 사용해야 했다. 한두 번도 아니고 꾸준히 수업에 참석한다는 것은 쉽지 않았다.
설득을 하거나 진지한 대화를 나눠 보지 그랬냐는 말은 나에게 상처가 된다. 그렇게 오래 살고도 하고 싶은 것, 그것도 뭔가를 배운다는데 그런 것도 네 맘대로 못 하고 사느냐는 말 역시 나를 아프게 한다. 그런 관계가 아니었기에 지금의 결말에 이른 것이니까. 그렇게 산 내가 너무 멍청이 같으니까.
언젠가는 할 수 있겠지. 자녀들이 성인이 되고 나면 저녁 시간에 나도 자유롭게 나갈 수 있겠지. 그때 나는 소설을 써야지. 그런 막연한 희망은 물론 있었다. 몇 년이 그렇게 흘렀다.
그리고 마침내 저녁 밥상에서 해방되었다.
가정불화가 심했지만, 미련한 나는 여전히 밥상은 차렸다. 그런데 미운 사람에게 차려 주는 그 밥상에 성의는 없었겠지. 차갑게 식고 맛없고 저주의 맛이 느껴졌겠지. 실제로 나는 밥을 하며 그 밥에 저주를 숱하게 뱉었다.
밥을 차리지 말라는, 본인이 직접 차려 먹겠다는 말에 내 기분이 어땠을까. 그렇지 않아도 하기 싫었던 일, 하지 말라고 하니 그 즉시 나는 밥상 차리기를 중단했다. 더는 저녁 밥상을 위해 애를 쓰지 않았다.
당장 홈페이지에 들어가 수강 신청을 하고, 정확한 위치 정보를 알아보았다. 저녁 6시에 집에서 나와 버스를 타고 6시 40분쯤 강의실 문 앞에 도착했다. 떨리는 마음으로 문을 열고 들어가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그 강의실에서 쓴 소설로 등단했다. 밥상을 엎고, 소설을 썼다. 속에 쌓아두기만 했던 말들을 꾸역꾸역 뱉어냈고, 그 말들은 글이 되었다. 밥상을 엎은 후에야 작가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