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의 어느 날, 내 침대에 나란히 누워 TV를 보던 아들이 말했다.
-바다 가고 싶다.
정말로 바다에 가고 싶으냐고 물어보니 그렇다고 한다.
-그럼 새해 첫날 엄마와 해돋이 보러 바다 갈까?
원래는 새해 첫날 해돋이 여행을 친구와 가기로 계획했었다. 해돋이 여행 상품을 일찌감치 예약했는데 친구의 사정으로 취소했다. 평소 하던 대로 집에서 TV를 틀어놓고 따분한 연말 시상식을 보다가 보신각 타종 방송을 보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바다를 가고 싶다는 아들의 말에 나는 취소했던 그 여행 상품을 다시 예약했다. 친구와 가기 위해 예약할 당시 노선별로 한 대씩의 버스가 배정되었으나 보름 사이 버스가 늘었다. 우리가 가기로 계획한 포항 호미곶은 5호차까지 출발이 확정되었다.
한파가 예상되었고, 나는 일주일째 지독한 감기에 걸렸다. 웬만해서는 약국에서 종합감기약을 사 먹을 텐데, 이번 감기는 너무 심해서 병원에 가서 항생제를 처방받고 주사까지 맞았다. 31일 밤에 버스를 타고 새벽에 도착해서 새해 첫 일출을 보고 그날 저녁에 서울에 도착하는 무박 여행. 떠나기 전부터 걱정이 되었다. 그냥 집에 있을 걸 그랬나 싶었지만, 아들이 기대 중이었고 그 애에게 바다 위에서 떠오르는 붉은 해를 꼭 보여주고 싶었다.
옷을 겹겹이 입고 핫팩과 목도리, 장갑, 무릎 담요 등 방한용품을 챙긴 배낭을 아들과 각각 하나씩을 메고 집을 나섰다. 잠실역에서 출발하는 버스를 타고 호미곶에 도착한 시각은 새벽 3시. 그 시간에 이미 주차장을 만차였다. 도로 역시 더는 차가 움직이지도 못하는 상태였다. 버스 안에서 세 시간여를 대기했다가 다 같이 호미곶 해돋이 광장으로 이동했다.
해 뜨는 시각은 오전 7시 37분. 광장에는 이미 수많은 인파가 몰려 있었고, 추위를 피해 들어간 실내에도 사람이 많았다. 화장실을 한번 이용하려면 백 명 정도 늘어선 줄 뒤에 서서 기다렸다. 해 뜨는 시간이 임박하자 사람들은 우르르 해변으로 향했다. 추위를 피해 실내에서 서성이던 아들과 내가 해변으로 갔을 때는 앞으로 나아가기도 힘들 만큼 사람이 많았다. 게다가 나는 키가 작아 바다는커녕 사람들 뒤통수만 보였다. 미리 챙겨갔던 카메라 셀카봉에 휴대폰을 끼워 길게 늘여서야 화면으로 바다가 겨우 보였다. 어둑했던 하늘이 밝아오며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영하 10도가 넘는 추위. 바람 때문에 체감온도는 그보다 훨씬 낮았다. 다행히 날씨는 맑았다. 덕분에 2026년의 첫해를 직관할 수 있었다. 어쩐지 일출과는 인연이 없어서 그동안 바다에서 해를 보는 건 몇 번 되지 않는다. 게다가 새해 첫 해맞이라니. 그건 생애 처음 경험이었고, 만약 그 첫 번째 경험이 날씨 때문에 무산된다면 실망했을지도 모르겠다.
바닷물 위로 붉고 밝고 큰 해가 올라왔다. 여기저기에서 일제히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소리가 사방에서 들렸다. 내 입에서도 저절로 탄성이 나왔다. 마침내 해는 완전히 떠올랐고, 해변으로 우르르 몰렸던 사람들은 다시 우르르 자리를 떠났다. 기다린 시간은 길고 지루했고 추위에 몸이 얼었지만, 축제는 순식간에 끝이 났다. 여행사에서 예약한 식당은 구룡포에 있었는데, 평상시에 10분이면 도착할 거리를 2시간 만에 도착했다.
그 짧은 순간, 해가 바다 위로 솟고 마침내 하늘에 완벽한 모습을 보여주는 그 순간을 보기 위해 사람들은 바다로 향했다. 내가 예약한 여행사에서만 그날 하루, 500명이 해를 보러 떠났다. 개인적으로 온 경우는 훨씬 더 많았고, 새해 첫날 이벤트를 즐기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밖으로 나왔다. 뉴스를 보며 왜 추운 날 덜덜 떨며 해를 보러 떠날까. 집에서 편하게 보지,라고 생각하던 때도 있었다. 그리고 고백하자면, 두 번은 가고 싶지 않을 만큼 고생스럽고 힘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렇긴 해도, 새해 첫날 떠오르는 해를 직접 본 경험은 특별하다. 앞으로도 사는 동안, 어쩌면 다시는 없을 경험, 혹시 있더라도 과연 몇 번이나 될까. 한 번이나 어쩌면 두 번쯤 바다를 마주 보고 서서 새해 첫 해를 맞이할 수 있을까. 순간 눈물이 흘렀다. 좀 뭉클한 기분이었다. 새해 첫날 떠오른 크고 붉은 태양의 에너지를 온몸으로 받아들인 것은 느낌이었고, 어쩐지 올해는 하는 일들이 다 잘 될 것 같았다.
해맞이 여행을 다녀오고 며칠 후, 웨딩홀 알바를 할 때였다. 신부대기실 꽃장식을 하는 플로리스트 옆에 앉아서 컨디셔닝 작업을 했다. 잎사귀와 가시를 제거하고 시든 잎도 떼어내면서 우리는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곤 한다.
해맞이 여행을 갈 거라고 미리 얘기했었기에 여행이 어땠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좋았어요. 그런데 두 번은 안 가려고요. 그래도 너무 좋았어요.
나는 두 번은 안 간다는 말보다 좋았다는 말을 강조했다.
너무 좋았어요.
그리고 이어서 고백했다.
-나이가 이제 60이 되었는데 아직도 처음 해보는 게 너무 많아요.
나는 새해 첫날 바다에서 일출을 보는 것은 처음이다.
웨딩홀에서 꽃장식 보조 일도 처음이다. 주말 예식을 앞둔 금요일의 예식장 안의 바쁜 일과 역시 처음 경험한다. 열심히 사는 사람들의 모습을 가까이에서 처음 본다.
대형 체육관에서 열린 가수의 콘서트에서 응원봉을 열심히 흔든 것도 처음이고, 혼자 여행을 떠난 것도 처음이고, 세대주가 된 것도 처음이다.
해외로 자유 여행을 떠난 것도 처음, 독립 출판으로 책을 낸 것도 처음, 여러 여자들과 함께 전자책을 만든 것도 처음이다.
나는 마쓰야마와 유후인을 처음 가 보았고, 담양과 포항과 거창도 처음 가 보았다.
분명 70살이나 80살이 되어서도 처음인 어떤 것들이 있을 것이고(가령, 인공지능 로봇과 절친이 된다던가), 그때에도 처음 걷는 길(가령, 크루즈를 타고 알래스카 여행을 떠난다거나)이 있을 것이다. 그 처음인 것들이 차곡차곡 쌓일 때마다 부자가 되겠지. 경험 부자, 추억 부자, 그리고 도전 부자.
올해 60살이 된 내게 처음인 어떤 경험들이 다가올까. 그 처음인 것들을 주저하지 않고 망설이지 말고 기뻐하며 맞이해야겠다. 까짓 거 일단 한번 해보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