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의 친구

언니, 저 마음에 안 들죠

by 함지연

신부 대기실에서 컨디셔닝 작업 중이던 나의 사수가 본식이 열리는 홀에서 수국을 다듬는 나를 향해 손을 흔든다.

지연 쌤~.

아침 8시에 출근한 우리는 오전 동안, 다른 장소에서 플로리스트 보조 업무를 하고 있다. 일 년 넘게 수다를 떨며 옆에 있었는데, 떨어져서 일을 하니 이렇게 눈이라도 마주치면 반가운 것이다.

말갛게 웃는 얼굴을 보며 나도 모른 척할 수는 없지.

선배 쌤~

그녀를 향해 손을 크게 흔든다. 한 손엔 수국을 다른 한 손에는 전지가위를 든 채로.

지난해 추석 이후 시작한 웨딩홀 꽃장식 보조 알바는 일 년 넘게 하고 있다. 이제는 이 일이 좋고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편해져서 일주일에 한 번이지만 출근이 즐겁다. 오전에는 다른 공간에서 일을 하지만, 오후에는 함께 작업을 한다. 그때 우리의 수다가 시작된다.

몇 년째 물려있던 삼성전자가 요즘 원금을 회복하고 드디어 수익이 나기 시작하자 선배 쌤의 얼굴이 밝다. 매도를 할지 10만 전자를 기다리며 보유할지 고민하는 그녀는 종종 내게 주식에 대해 묻는다. 단타의 여왕인 내게 종목 추천을 부탁하기도 한다.


처음부터 사이가 좋았던 것은 아니다. 사실은 서로 비호감이었다. 일을 하기로 하고 문 앞에서 기웃거릴 때 플로리스트 대표는 내게 사수에게 일을 배우라고 했다. 곧이어 출근한 사수는 꽃을 다듬는 방법부터 알려주었다. 꽃은 종류별로 손질 방법이 달랐다. 아마 사수가 꽃 한 단을 컨디셔닝 할 동안, 나는 채 반 단도 처리하지 못했을 것이니 얼마나 답답했을까. 나는 처음 하는 일이라 허둥거렸고, 그녀는 그런 내게 쌀쌀맞게 대했다. 그 모습이 신경 쓰였는지, 대표는 나를 조용한 구석으로 데리고 가서, 이해하라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언젠가 다 같이 간식을 먹는 시간에 그 얘기를 꺼냈더니, 당사자인 사수와 다른 플로리스트들 모두 깔깔 웃었다. 서로 편해진 다음의 일이니, 누구도 상처받지는 않았다.

그녀 역시 나중에 털어놓았는데, 처음에 내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아 친구들 모임에서 나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새로 온 사람이 있는데, 말 한마디 안 한다고. 일을 배우는 사람이 물어보지를 않는다고. 그때 친구 한 명이 그랬다고 한다.

그건 너랑 친해지기 싫다는 거야.

이제는 지연 쌤이 편해졌나 봐. 이렇게 말을 많이 하는 거 보면.

얼마 전, 사수가 그런 말을 했다. 쌀쌀맞다고 생각했던 그녀는 사실 한결같은 사람이었다. 낯을 가리고 가깝지 않은 사람과는 대화를 하지 않아서 오해가 생겼던 것.

대화를 이어가다 보니, 그녀와 나는 아주 가까운 거리에 살던 이웃이었다. 걸어서 5분이나 될까. 20년 가까이 한 동네에 살았다. 같은 시장에서 장을 봤고, 같은 분식집에서 떡볶이를 샀다.

심지어 같은 치과를 다녔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우리가 다닌 치과의 훈남 의사 선생님에 대해 공통적으로 느낀 호감에 대해 흥분하며 공감했다. 그분이 어땠냐면, 공포스러운 치과 진료를 받으며(나는 치과가 제일 무섭다) 긴장하고 경직된 어깨를 손으로 살며시 잡았다. 그러면 일순간에 긴장이 풀리는 것이다. 그러다가 다시 통증이나 기구 소리, 냄새 등으로 어깨가 굳으면 시술을 중단하고 어깨를 잡는다. 아픈 이를 잘 치료해 주어서가 아니라 딱딱하게 굳은 어깨를 스르르 풀리게 하는 마법의 손길 때문에 항상 감동이었던 치과. 내가 받은 감동의 포인트를 그녀 또한 똑같이 느꼈기에 우린 또 한참 그 치과 의사 선생님에 대해 수다를 떨었다.


내가 그 동네를 떠나고서야 알게 된 오랜 이웃 주민. 그리고 이렇게 일터에서 만나지 않았더라면 한 동네에 수십 년을 살았어도 끝내 모르는 사이였을 사람(그녀도 나도 동네에서 친구를 사귀는 타입이 아니다). 그러나 지금은 가장 자주 만나는 사람이기도 하다. 일주일에 한 번씩 일 년을 넘게 만났는데 처음 그랬던 것처럼 쭉 불편했다면 내가 이 일을 계속했을까.

최근에 출간한 책 한 권을 그녀에게 선물했다. 책의 첫 장에 사인을 해서 주었는데, 그녀를 이렇게 호칭했다.

금요일의 친구.

우리는 매주 금요일마다 만나고 있으니까. 그녀는 그 호칭을 마음에 들어 했다. 금요일의 친구에게 이사를 하고 나면 나의 새 집으로 놀러 오라고 했다. 금요일의 친구는 흔쾌히 그래,라고 대답했다.


(그녀와의 일화를 글로 써야겠다고 초고를 썼던 것이 몇 달 전. 그때의 제목은 ‘언니, 저 마음에 안 들죠?’였다. 이 사람이 나를 마음에 안 들어하는구나 하는 분명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 오해가 점차 풀리며 편한 사이가 되었더라는 내용의 글이었다. 글을 고치며 제목은 ‘금요일의 친구’로 바뀌었다. 처음에 나를 마음에 안 들어했던 그녀는 이제 내 친구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