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방 주인 아니고요, 책장 한 칸 주인입니다

공유형 독립서점 연남서가

by 함지연

내가 오래 살았던 동네에는 서점이 두 개 있었다. 둘 다 개인 서점이었고 규모는 꽤 큰 편이었다. 특별한 상황이 아니라, 동네마다 서점이 한두 군데 있는 것이 당연했던 시절이기도 했다. 시간이 지나며 대형 서점과 온라인 서점만 살아남기 시작했고, 꽤 오래 버텼던 두 곳 모두 폐업했다. 그중 한 곳은 중년 부부 둘이 운영하던 곳이었다. 재래시장 초입에 있던 서점이라 지나다닐 때마다 자녀 양육에서 자유로워지는 중년 이후의 나도 서점 주인이 되고 싶다는 꿈을 꾸기도 했다.


하고 싶다거나 되고 싶다는 꿈이나 희망을 성취하며 사는 것이 쉽지 않은 게 인생이고, 사실 세월이 흐르면서 상황도 변하고 꿈도 변하고 꿈을 담았던 마음도 변한다. 일 년에 책 한 권 읽지 않는다는 사람이 대다수이고, 출판계는 매년 갈수록 어렵다고 고충을 토로하고 글을 쓰는 작가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가난한 직업 순위에서 항상 상위권이다. 그러니 서점을 창업한다는 건, 무모한 희망 사항일지도 모르겠다.


책이 있는 공간을 떠올리면 손님이 아니라, 카운터에 앉아 어서 오세요,라고 상냥하게 인사하는 주인이 된 나를 상상해보곤 한다. 나는 큰 서점의 주인 말고, 아주 작은 서점의 주인이 되고 싶다. 저녁의 오렌지색 햇살이 안쪽까지 길게 들어오는 유리창이 있었으면 좋겠고, 키가 크지 않은 화분도 몇 개 있었으면 좋겠고 아름다운 그림과 다정한 이야기가 담긴 책들이 나란히 꽂혀 있었으면 좋겠다. 허리가 편한 의자도 몇 개 두어 자유롭게 앉았다 가도 좋겠다. 절대로 먼저 말을 건네지 못하는 내향인이긴 하지만, 손님과 책에 대한 수다를 떨면 얼마나 신이 날까. 책방의 이름은 뭐가 좋을까. 어떤 간판과 어떤 문을 달아야 들어와 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까. 현재의 재정 상태에서 보증금과 월세는 어느 정도까지 감당할 수 있을까. 그런 구체적인 고민을 하기도 하면서. 상상만으로도 벌써 설렌다.


그러나 현실로 돌아와서 냉정하게 생각하면 역시 책방 운영은 치열할 것이다. 아름답기만 한 일은 결코 아니다. 빠르게 접고, 가끔 상상만 즐기자. 책과 관련된 일로 돈을 버는 것은 쉽지 않다. 생활이 충분히 될 만큼의 돈을 버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책을 쓰는 것도, 책을 만드는 것도, 그리고 그 책을 판매하는 것도 모두 쉽지 않다. 글을 써서 상금과 원고료도 받아보고 1인 출판사를 설립하고 책을 만들어서 판매도 하고 있지만, 역시 전업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가상의 공간에 간판도 걸어보고 창가에 화분도 늘어놓기도 하는 서점 주인이 꿈인 내 눈에. SNS의 흥미로운 게시물이 눈에 띄었다. 책장임대형 공유서점. 목포에 있는 서점의 이름은 포도 책방. 독특하게도 책장마다 주인이 다른 책방이었다. 각각의 책장 한 칸을 임대한 사람은 자유롭게 책이나 소품을 판매할 수 있었다. 자신의 집에 있는 중고 책을 팔아도 되고, 좋아하는 작가의 새 책을 판매해도 되었다. 그리고 당연히 서점을 하나 차리는 것보다 훨씬 저렴한 임대료로 가능했다. 솔깃했지만, 거리가 너무 멀었다. 포도 책방 이후에도 지방의 다른 지역에 하나둘 공유서점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알고 보니, 공유서점은 우리나라가 아니라 일본에서 먼저 인기를 끌고 차츰 많아지는 형태의 서점이라고 했다. 서점은 차리지 못해도 한 칸쯤 빌려 서점 주인의 꿈은 이루면 좋겠다 싶었다. 그러다가 서울에도 공유서점이 생길 거라는 소식을 접했다. 이미 어떻게 운영되는지 알았기에 책장 임대인을 모집한다는 게시글이 올라오자마자 바로 신청서를 제출했다. 그게 지난해 12월 초였다.


내가 입점한 공유서점의 이름은 연남서가. 서점은 2호선 홍대입구역 근처 연남동에 위치해 있다. 100칸의 서가가 있고, 각각의 주인이 다르다. 계약 기간에 따라 더러 서가가 비는 경우도 있지만, 현재는 거의 모든 서가에 임차인이 입주해 있다.


서점의 가장 안쪽에 있는 서가의 한 칸에 1인 출판사를 설립하고 펴낸 첫 에세이집을 진열했다. 책을 읽을 때 유용할 비즈 끈갈피도 제작해서 판매 중이다. 집에 있으면 발이 달려서 저절로 사라지는 사물들이 몇 가지 있다. 양말이라든지, 립밤이라든지. 독서인들에게는 책갈피도 그런 사물이 아닐까. 선물이나 증정으로 받기도 하고 서점에서 무료로 나누어주는 것들도 많은데, 어쩐지 필요해서 찾으면 보이지 않는다. 알록달록한 구슬을 몇 개 엮어 책갈피를 만들어 판매 중인데, 지난달 연남서가 소품 부분 판매 1위란다. 나는 책을 잘 팔고 싶은데 이럴 때 웃프라고 해야 하나. 그래도 다행히 책갈피를 팔아 지난달에는 드디어 임대료를 제외하고 수익이 났다. 물론 큰돈은 아니고, 작고 귀엽고 소소한 수익금이긴 하다.

종종 판매 현황을 확인하는데, 3월에 책이 세 권 판매되었다. 역시 책갈피보다 책이 판매될 때 기분이 좋다.


어떤 한 날은, 구매자 한 분이 내게 쪽지를 남겼다. 서점 주인이 그 쪽지를 내게 전해주었다. 책을 좋아하고 책 사는 것도 좋아하는 50대 전업주부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연남동에 있는 서점이니, 당연히 젊은 독자층이 많을 거라는 것은 진작 알았다. 몇 차례 방문했을 때 역시 연남동의 유동 인구는 대부분 2,30대였다. 서점 맞은편에는 웨이팅이 있는 식당이었고, 서점 바로 위에는 소품삽이 있다. 쓰는 사람인 나는 중년이고, 주독자층도 중년일 텐데, 과연 누군가 내 서가에 머물러 줄까. 걱정도 했다. 그래서 50대 전업주부라는 소개가 더욱 반갑고 고마웠다.

오늘은 미리 입고신청서를 작성했다. 소장 중이던 도리스 레싱과 이주란, 김남숙 작가의 책도 판매를 위해 챙겼다. 책 사이에는 그 책들에 대한 짧은 감상을 적어 끼워두었다. 책방 주인 아니고, 책장 한 칸 주인은 내일 봄맞이 서가 단장을 위해 연남동에 간다.


겨울에 썼던 엽서를 치우고 새로 꽂아 둘 편지도 썼다.

봄꽃을 보러 여행을 다녀왔다고.

산수유와 매화꽃을 보았다고.

봄이 다 가기 전, 꽃을 보러 떠날 거라고.

올해 나는 소설 한 편을 쓸 계획이라고.


그리고

당신의 봄은 안녕하신지요, 라고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