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나와 동생을 위해 인성이 바르게 잘 자랄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를 항상 하셨다.
그렇게 잘 자란 것 같아 기쁘다고 종종 말씀하시곤 했는데,
내 책을 읽어보시고 나선 "네가 표현은 안 했지만 그동안 너의 마음에 상처가 많이 쌓여 있었구나.." 하셨다.
엄마는 동생을 낳고 100일 후 회사로 복직을 하셨다.
자연스레 같이 사는 할머니가 우리를 주로 돌봐주셨고,
잘 때도 엄마가 아닌 할머니가 나를 할머니방으로 데려가셨다고 했다.
3살이란 어린 나이면 한참 엄마를 찾을 나인데, 나와 엄마에겐 선택권이 없었다.
으레 잠이 안 온다고 잠투정 부릴 나이, 투정이란 것도 제대로 부려 봤을까?
잠이 안 온다고 하는 어린 나에게 할머니는 그럼 벽보고 자라고 말씀하셨다고 한다.
밖에서 그 소리를 듣는 우리 엄마는 마음이 너무 아팠다고 한다.
하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그저 너무 어린 새댁이었던 엄마.
얼마 전 집사부일체에 오은영 박사님이 나온 걸 봤다.
남의 눈치를 너무 본다는 배우 유수빈 님.
나랑 너무 비슷한 성격에 깜짝 놀랐다.
유수빈 님의 부모님은 맞벌이로 너무 바쁘셨다고 한다.
자연스레 어렸을 적부터 혼자였을 때가 많았다고 하는데..
왜 이렇게 남들 눈치를 보게 된 걸까?
그렇게 된 이유는 "자신의 감정을 수용받아 본 경험이 없어서"였다.
감정이 들 때 그 감정 그대로 온전히 부모로부터, 혹은 주양육자로부터 수용받아 본 경험이 별로 없는 사람들이 그렇다.
그 말을 듣는데.. 이유를 듣는데..
나도 모르게 마음이 쿵, 내려앉는 느낌이었다.
일 하랴, 시집살이하랴,
20대 초반의 젊은 엄마에게는 모든 것이 버거웠을 것이다.
엄마도 엄마만으로 버거웠기 때문에..
우리의 감정까지 추스르고 돌아봐 줄 여력이 없었던 것이다.
안다..
엄마는 그 당시에 어떻게 우리를 키워야 하는지도 몰랐다고, 어떻게 해야 잘 키우는 건지도 몰랐다고 한다.
그저 하루하루가 너무 힘겨웠을 뿐이었다고 고백하셨다.
우리 부모님 세대는 아이를 최소 5명에서 10명 낳는 시대였으니,
자식도 너무 많고 할 일이 많은데 어떻게 아이 한 명, 한 명 마음을 돌봐줄 수 있었을까?
우리 엄마도 받아본 적이 없을 것이니 당연히 나에게도 주는 방법을 몰랐을 뿐이다.
감정을 있는 그대로 수용해준다는 것, 아이들과 교감한다는 것이 너무 어렵다.
왜냐면 나도 받아본 경험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육아에 관심이 크게 없던 우리 부모님 세대에서,
요즘엔 육아에 너무나도 관심 많은 우리 세대.
어쩌면 우리는 과도기의 중간에 서있는 게 아닐까.
이게 우리 세대의 사명인 것 같다.
받아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기에, 열심히 배우고 내 것으로 만들어서
우리 아이들 세대에게 감정적 유산을 잘 넘겨줘야 하는 것 말이다.
울적해질 때쯤,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부모님의 부정적인 것들만 흡수한 것이 아니다.
근면 성실하고 자기 관리에 철저한 우리 아빠를 본받아 한 번 목표한 것은 이루고 마는 꾸준함을 배웠고,
계획보다는 일단 저지르고 마는 행동파인 우리 엄마를 닮아 새로운 시도하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다.
상처가 없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깊이의 차이가 있을 뿐.
그 상처를 끌어안은 채 성숙해져 가는 법을 배우고 연습해본다.
다음 세대에 우리 세대의 상처를 넘겨주지 않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