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근본적인 질문 앞에서 나는 여전히 방황한다.
나는 진정으로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무엇도 두렵지 않은 자유인'인가.
대답하지 못하고 좌절하는 순간 나는 깨닫는다. 내 영혼은 여전히 무언가에 얽매인 노예 상태라는 것을.
채워지지 않는 갈망은 갈증이 되고, 그 갈증은 다시 불안과 불만족이 되어 나를 흔든다.
내가 원하는 것은 명료하다. 내면은 잔잔한 물처럼 고요하고, 나의 존재와 나의 바람이 일치를 이루어 평안한 상태. 온전한 나로 사는 것. 하지만, 승진에 대한 미련, 인간관계에서 남겨진 감정의 찌꺼기들, 이런 것들이 먼지처럼 쌓여 나를 주눅 들게 하고 망설이게 한다.
문제를 정확히 진단하고 있음에도 왜 나는 여전히 그 미련을 붙잡고 있는 것일까. 아마도 내 안의 대청소가 필요한 시점인 듯하다. 나는 우선 주변의 물건부터 정리하기로 했다. 물건조차 비워내지 못하면서 마음의 찌꺼기를 정리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오늘 당장 필요하지 않은 물건들을 버리지 못하는 건, '미래의 내가 아쉬워할까 봐'이다.
물론 미련을 버리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물건이야 필요할 때 다시 사면 그만이지만, '지금만 가능한 일'에 대한 미련은 차원이 다른 문제다. 젊음처럼, 지금 이 시기가 지나면 다가올 미래에는 결코 손에 쥘 수 없는 기회들. 그것을 놓지 못해 긴 시간 고민하고 망설였다.
하지만 냉정하게 물어본다. 이 집착이 나의 현재와 미래를 희생시킬 만큼 가치 있는 일인가? 확신할 수 없었다. 그토록 붙잡았던 것들의 실체는 고작 '자존심'이나 '사회적 체면' 같은 것들이었으니까.
남의 일일 때는 체면이 '무가치한 관념'이라 쉽게 말하면서도, 나의 문제가 되면 객관성을 잃고 만다. 하지만 나는 나를 평가하는 그 사람들과 영원히 함께할 것인가? 아니다. 그들은 스쳐 지나가는 인연일 뿐이며, 사실 대부분은 나에게 큰 관심조차 없다.
타인의 평가로 나의 본질적인 가치가 달라지지는 않는다. 나는 이미 존중받기에 충분한 위치에 있으며, 긍정적으로 소통할 준비가 되어 있다. 진짜 나를 초라하게 만드는 것은 사회적 지위의 부재가 아니라, 성숙하지 못한 태도로 내 인생을 방치하는 나 자신의 모습이다.
내가 어떤 위치에 있든 나는 나로서 빛나기로 했다. 나는 나니까.
내가 버리지 못한 미련들은 이제 내 삶의 '부수적인 소품'으로 두려 한다. 삶을 온전히 사랑하는 데 집중하다가 그 미련한 소망이 이루어진다면 기쁜 일이겠지만, 설령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내 본연의 모습은 훼손되지 않는다.
나는 나답게, 주위에 선한 영향력을 발산하는 존재로 살아갈 것이다.
주어진 환경에 잠식되지 않고, 내가 머무는 조직과 사회를 나의 긍정적인 에너지로 가득 채우는 것.
불순물을 털어낸 자리에 나만의 빛을 채우는 일.
이것이 바로 나의 미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