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의 소음에서 도망쳐 '자발적 소외'를 선택하다.
철학자 쇼펜하우어는 '고슴도치 딜레마'를 통해 인간관계의 본질을 꿰뚫었다. 추운 겨울, 온기를 나누려 다가갔다가 서로의 가시에 찔려 다시 멀어지는 고슴도치들. 그들은 아픔과 추위 사이를 반복하며 비로소 '적당한 거리'를 찾아낸다.
하지만 요즘의 나는 그 적당한 거리를 찾는 대신, 아예 무리 밖으로 걸어 나가고 있다. 한때 신뢰했고 좋아했던 이들이었지만, 만남이 반복될수록 내 마음엔 이상한 멍자국이 남았다. 농담이라며 던진 말에 베이고, 그들의 성취가 담긴 대화 속에서 나의 초라함을 발견했다. 나는 저울질하고 싶지 않았으나, 그들의 말들은 자꾸만 나를 저울 위에 올렸다.
내가 옹졸해진 걸까, 그들이 변해버린 걸까. 그들의 웃음 뒤에 조롱이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고개를 들 때면, 이런 생각을 하는 내가 미쳐가는 건 아닐까 겁이 났다. 진심을 물어볼 용기도, 물어본 뒤에 찾아올 후회를 감당할 자신도 없었다. 그래서 나는 가장 쉬운, 그러나 가장 외로운 방법을 선택했다. 모든 관계를 끊어내는 일이다.
심리학은 이 상태를 '사회적 퇴행' 혹은 '자발적 소외'라고 부른다. 누군가는 나를 자폐적이라 손가락질할지 모르지만, 실상은 상처로부터 나를 보호하려는 처절한 방어기제다. "더는 찔리고 싶지 않으니, 아무도 만나지 않겠다"는 무의식의 선언인 셈이다.
나만의 유별난 문제라고 생각했으나, 사실 이는 수많은 성인이 겪는 현대적 증상이다. 외부의 거절과 비교, 비난이 반복되면 자존감은 낮아지고 타인의 시선은 공포가 된다. 관계 속에서 매 순간 가면을 써야 하는 피로감이 임계점을 넘을 때, 우리는 스스로를 고립시킨다.
고립의 방 안으로 숨어든 직후엔 기묘한 안도감이 찾아온다. 더는 비교당하지 않아도 된다는 해방감. 하지만 이 안도감은 유통기한이 짧다. 문을 걸어 잠글수록 외로움과 무기력이라는 그림자는 더 짙게 드리워지기 때문이다. 깨달은 것은 하나다. 내가 고립을 선택한 건 '상처받는 게 두려웠기 때문'이었다는 사실이다.
스스로를 소외시키고 있다는 자각은 문득 불안을 몰고 온다. "이렇게 살아도 괜찮은 걸까?"라는 질문이 가슴을 친다. 심리학적 연구들은 '혼자 있는 상태(Solitude)'보다 '연결되어 있지 않다는 느낌(Isolation)'이 뇌와 마음을 더 빨리 노화시킨다고 경고한다.
일본의 '히키코모리'가 청년을 넘어 중장년층으로 확산되는 현상은, 우리 시대가 성인에게 요구하는 역할의 무게가 얼마나 가혹한지를 보여준다. 나 역시 그 단어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나는 지금 성숙해지는 과정에 있는 걸까, 아니면 서서히 병들어가는 중일까.
카프카의 소설 속 주인공들처럼, 어쩌면 나도 사회적 자아를 죽임으로써 진정한 나를 찾으려는 고통스러운 의식을 치르는 중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방 안에만 머물기에 삶은 너무 길고, 냉기는 매섭다.
심리학은 극단적인 회피 대신 '관계의 질'을 조정하라고 조언한다. 모든 문을 닫는 대신, 나를 덜 소모하게 만드는 소수의 사람에게만 틈을 내어주는 방식이다. 완전한 참여와 완전한 고립 사이, 그 '중간 지대'를 설계하는 일이다. 30분의 짧은 산책, 얼굴을 보지 않는 온라인 소통, 혹은 이렇게 글로 마음을 전하는 일부터 시작해 보는 것.
나는 여전히 답을 모른다. 관계를 끊어낸 것이 훗날의 후회가 될지, 신의 한 수가 될지. 내가 예민한 것인지 그들이 무례한 것인지도 여전히 안갯속에 있다. 하지만 한 가지만은 분명해졌다. 내가 느끼는 이 피로와 위축은 나만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 그리고 이 상태를 방치하는 것은 결국 나를 얼어붙게 할 것이라는 사실이다.
다시 고슴도치의 이야기를 떠올린다. 그들은 결국 적당한 거리를 찾았을까. 나는 아직 그 거리를 찾지 못했다. 내가 가진 가시가 남을 찌를까 봐, 혹은 남의 가시에 내가 찔릴까 봐 온기 자체를 거부하는 중이다.
이제는 완전히 얼어붙기 전에 작은 불씨를 찾아보려 한다. 모든 관계를 복구하겠다는 거창한 다짐 대신, 나를 상처 주지 않는 단 한 사람, 혹은 단 하나의 활동을 찾는 것부터 시작하고 싶다. 그것이 성숙이든 병듦이든, 일단은 계속 움직여야 한다. 감정을 글로 옮기는 지금 이 순간이, 다시 온기를 향해 발을 내딛는 나의 첫걸음이 되어주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