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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용현 Feb 24. 2024

유다, 장자권 계승

다말의 믿음. 창 38:1-30

야곱의 12아들, 특히 요셉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하나님의 구속사의 과정이 기술되는 중간에 삽화처럼 유다에 대한 기록이 있다. 요셉이 형들의 미움을 받고 죽임 당할 뻔했으나 죽음을 모면하고 애굽에 팔려가게 되었다. 이제 요셉의 애굽에서의 일들이 기록되기 전에 하나님의 구속사가 어떻게 유다의 가문에 진행되는 지를 보여준다. 왜 여기서 유다에 대한 기록을 했을까?      


하나님께서 구속사를 이루시는 과정에 한사람 아브라함을 선택하시고 그 후손들을 통하여 일을 진행하신다. 구속사는 장자를 통해 진행된다. 장자권이 아브라함부터 시작해서 이삭에게, 그리고 야곱에게 이어지는데, 야곱의 열 두 아들들 가운데 첫째가 아닌 유다에게 장자권이 이어지고 있음을 말하고 있다. 장자권은 당연히 첫째인 르우벤에게 이어져야 하지만, 둘째도 셋째도 아닌 넷째인 유다에게 주어지고 있다.   

  

창49장에서 야곱은 아들들에게 축복하는데, 특별히 유다에 대한 축복의 내용에서 실질적인 장자의 축복을 하고 있다. 실제의 장자인 르우벤은 서모인 빌하와 통간하므로 아버지의 침상을 더럽힌 자로서 장자의 축복에서 배제되었다.     


둘째와 셋째인 시므온과 레위는 창34장의 여동생 디나가 강간당했을 때, 하몰에게 복수하는데 구원의 징표인 할례를 도구로 사용한 것에 대한 징계로 장자의 축복권을 승계하지 못하였다.     


넷째인 유다는 요셉이 형들의 미움을 사서 광야에서 죽임을 당할 상황이었을 때, 요셉을 죽이지 말자고 형제들을 설득하여 요셉의 생명을 지켜주었다. 요셉을 구원한 중재자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중보직의 사전표상(예표)으로 제시된다. 유다는 실질적인 장자권을 상속받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유다의 가문에 일어나는 사건들은 하나님의 구속사에 중대한 의미를 갖는다. 유다의 두 아들에게서 일어나는 사건들은 그런 시각에서 바라봐야만 한다.     


그런데 유다의 가정에서 진행되는 일이 참 기이하다. 유다는 아들 셋을 두었는데 큰아들 엘이 다말과 결혼을 했고, 엘은 하나님 보시기에 악하여 하나님께서 죽게 하신다. 그래서 계대수혼권에 따라 형이 후사 없이 죽으면 장자권을 이을 후사를 생산하도록 동생이 형의 자리를 지켜야 하는데, 동생이 형수에게 들어가 아들을 낳아줘야 한다. 그래서 시아버지 유다는 큰아들 엘이 죽었을 때 며느리 다말에게 둘째 아들 오난을 내어주어 후사를 얻게 하도록 했다. 그런데 둘째 아들 오난은 형수와 동침하고 그 씨가 자기 아들이 되지 않을 줄 알아 그 씨를 형수에게 주지 않았다. 이 일은 하나님 보시기에 악하였고 하나님께서 오난도 죽게 하신다. 이제 셋째 아들 하나 남았는데, 유다는 그마저 죽을까 하여, 다말에게 내어주지 못하고 다말에게 친정에 가 있으라고 한다. 어떻게 보면 다말을 믿지 못한 것일 수도 있고, 하나님의 이루시려는 뜻에 대해서 믿지 못한 불순종일 수 있다.      


그런데 유다의 며느리 다말은 시아버지 유다를 속여 장자의 후사를 만들게 된다. 이것은 다말이 하나님의 일하심에 대한 믿음의 행동으로 나타났다고 볼 수 있다. 시아버지 유다를 속인 다말의 행동은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선한 일이라는 것이다. 구속사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인간의 연약함과 악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경륜이 어떻게 진행되는지를 볼 수 있다. 그래서 요셉을 통해서 이루시는 구속사의 중간에 실질적 장자인 유다 가문의 사건들을 기록하고 있다.     


다말의 행위는 시아버지를 속여 간음을 행한 것일 텐데, 현재의 문화로 바라보면 성경이 이해가 될 수 없다. 당시의 문화와 하나님의 뜻이 어떻게 전개되고 있는지를 모두 살펴서 이해를 해야 하는 것이다. 계대수혼법 역시 그런 면에서 이해하기가 어려운 부분이기도 하다.      


다말은 예수님의 족보 가운데 나오는 몇 안 되는 여인들 중 하나이다. 족보의 기술은 주로 남성 위주로 전개되지만 예수님의 족보에는 특이하게 몇 명의 여성들이 기록되고 있다. 그들은 모두 하나님의 구원역사에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다. 유대인들 입장에서 바라보면 이방인, 그것도 여성이 혈통을 잇는 것으로 기록되는 것은 대단히 특이한 내용이다. 이것은 단순히 한 가문의 흥망성쇠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속사에 대한 기록인 것이다.     


성경의 주제는 야곱가문이 중심된 인간의 역사가 아니라, 그들의 인간적인 연약함과 악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구속사가 어떻게 전개되는지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림은 네이버 [그림성경]님의 블러그에서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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