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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택의료 현장에서

돌봄이 필요한 순간

by 하상목

나날이 갈수록 재택의료에 대한 관심이 점점 많아지는 듯하다.

방문의료에 대한 상담도 꾸준하게 늘고 있고 상담 주제도 다양해지고 있다.

병원에서 곧 퇴원 예정인데 어떻게 해야 하면 좋을지,

건강이 악화가 되었는데 어디로 가야 할지,

상담을 하는 난이도가 높아짐과 동시에 돌봄과 관련된 자원이나 제도를 알려주다 보니

전화통화를 하는 시간이 점점 늘어가고 있다.





돌봄이 필요해지는 순간은 언제인지 곰곰이 생각해 보게 되었다.

사실 우리는 돌봄에 대해 별로 생각이 없거나 필요성을 잘 느끼지 못하고 살아간다.

생애주기별로 나누면 우리는 태어남과 동시에 돌봄을 받아가며 살아가다가 스스로 자립하는 방법을 배운다.

그리고 돌봄을 받았다는 사실을 잠깐 잊으며 살다가 돌봄이 다시 필요해지는 순간을 만나게 된다.

언제 다시 돌봄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일까?


그것은 바로 우리가 아프거나 가족이 아플 때부터 생겨나기 시작하는 것 같다.

크고 작은 질병이 우리의 삶에 들어왔을 때 누군가의 도움이나 조력 없이는 일상생활이 어려움이 있기 마련이다.

나는 코로나19 바이러스에 감염되었을 때 몸살과 열으로 힘이 들었을 때 자가격리라는 이유로 돌봄의 소중함을 알게 되었다.

죽을 별로 좋아하진 않지만 목이 부어서 죽이 너무 먹고 싶었을 때가 있었다.

그것도 차가운 닭죽 한 번만 먹고 싶었지만 배달 앱 밖에 의지할 곳이 없었다.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인 듯했다.

가족을 돌보아야 하는 상황이 생길 때에는 돌봄에 대해 자세히 안내하거나 알려주는 곳이 없어서 더 절실함을 느끼는 것 같았다.

실제로 재택의료를 요청하는 상담을 해보면 가족이 오롯이 돌보고 있거나 돌봄이 충분하지 않은 상황에 대한

도움이 되는 자원을 안내하거나 장기요양과 같은 제도를 소개하는 상담내용이 훨씬 많다.

내가 코로나를 앓고 있을 때 배달 앱을 의지하고 있듯 돌봄이 필요한 분들도 전화기만 유일한 창구가 되었다.


그리고 우리는 돌봄에 대해 제도나 자원을 알고 있지 않은가 생각해 보았다.

누구나 아프고 병들 수 있지만 그런 생각을 하지 못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현대 사회가 미워지기도 했다.

정책이나 제도적으로 누구나 돌봄에 대해 익숙하게 들리도록 알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특히 홀몸 어르신일 경우에는 사회복지 연계가 되지 않으면 돌봄 사각지대가 많을 것이라고 걱정하기도 했다.

이 문제는 건강 평등에도 분명 영향을 줄 것이라 확신했다.


이처럼 이제는 우리가 변화해야 한다.

돌봄이 필요한 순간에서 돌봄은 누구나 받을 수 있도록 익숙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누군가가 아프고 병든 사회 속에서 살아가며 돌봄의 손길이 필요한 순간

누군가가 나서서 자원이 연결되도록 돕는 선한 영향력이 있는 지역사회로 변화가 필요하다.

돌봄의 사각지대를 허물고 누구라도 돌봄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인식이 더 따뜻하게 만들어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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