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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몬드 Mar 08. 2022

[ep4] 그대, 어두운 밤을 순순히 받아들이지 마오

 이것이 '직장내 괴롭힘'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원래 그 사람이 좀 성격이 그러니까 하선생이 이해해요. 너무 맘에 담아두지 말고."


팀장은 나를 달랬다. 나는 또 다시 유난스러운 직원이 될까봐 아무렇지 않은 척 어제의 불편감을 숨기고 쿨하게 업무에 임했다. 또 한번 '재수없는 일'이 일어났지만 '원래 성격이 그런' A를 내가 제지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팀장은 난처한 표정을 지으면서 이젠 그런일 없을 거라는 말을 덧붙였다. 그 말을 믿는 것 외에 말단 직원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그리고. 두 달 뒤,

마침내 내 인생을 뒤흔들어버릴 그 날이 왔다.


애써 외면해온 위험의 그림자는 잔인하게 나를 집어 삼켰다.


살기 어린 눈동자, 오늘은 반드시 나를 제압해버리겠다는 각오로 사무실로 쳐들어온 A가 드디어 가해자가 되는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다 어디 갔어! 홈페이지 담당자 나와!!!"


왜 하필 지금인가. 우리 팀엔 팀장도 팀원도 없이 오직 나 혼자 남아있는 상황이었다. 도와줄 사람이 없다.

온 몸이 얼어 붙었다. 머리털이 쭈뼛서고 다리에 힘이 풀렸다. 어떻게든 피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몸이 마음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손가락이 키보드 위에서 갈 곳을 잃고 덜덜 떨렸다. 서서히 죄여오는 숨막히는 공포에 속이 울렁거렸다. 나도 모르게 눈을 질끈 감았다.


"너지? "


이번엔 아무도 널 도와줄 사람이 없을 것이다. A가 내 자리로 성큼성큼 다가왔다. 반드시 오늘은 패자의 얼굴을 보고 말겠다는 살기 띤 악마의 얼굴을 보자마자 숨통이 조여왔다.


"... 하실 말씀 있으시면 저희 팀장님 오시면 그때 말씀 나누시죠."

어떻게든 이 상황을 벗어나야한다. 나는 최대한 차분하고 이성적으로 대응할 것이다.

"홈페이지 사업 이 지경으로 하는 거 본인이 했지?"

"여러 차례 말씀 드렸습니다만 부서에서 결정한 겁니다. 저는 사업 운영에 대한 권한이 없습니다. 팀장님 그리고 임원 분들이 합리적인 절차에 의해 결정하셨고 저는 지시에 따라 일하는 겁니다. "   


"그래? 그래서 본인은 아는게 없다?"


대화를 이어나가선 안된다. 이렇게 대화의 물꼬를 터주면 결국 꼬투리 잡혀 또 의미없는 감정노동만 더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불편을 피하면 그 다음은, 또 그 다음은? 어떻게 할 것인가. 더는 피할 곳도, 더 깊이 상처받을 일도 없을 것 같았다.


"저는 이 업무를 잘 알고, 누구보다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저희와 함께 일하는 업체도 마찬가지구요. 촉박한 시일에도 최대한 만족스런 결과를 만들기 위해 모두가 애쓰고 있어요."


"잘 안다고? 내가 이런 사업을 몇번이나 해봤는데? 너 이거 처음해보지? 한 달째 안된다는게 말이 돼? 니 책임은 없고 업체 책임이다 이거지?"


"아닙니다. 누구의 잘잘못을 따지는게 아니라 절차를 설명드리는 거에요."


"담당자는 아는게 없고 위에서 결정에만 따랐다. 넌 아는게 없다. 내 책임은 아니다 이거 아니야?"


"A부장님. 결정 권한이 상부에 있음을 말씀드리는 겁니다. 업체에서도 최선을 다해 해결하려고 노력중이에요. 다소 시일이 걸린다는 건 이미 몇 차례나 설명을 드렸는데 이렇게 계속 찾아와 우기시면.."


"뭐??? 내가 언제 !!!!! 내가 언제 찾아와서 우겼는데??"


살기 어린 눈의 A는 손에 무언가 짚히면 내던지고 나를 향해 손찌검할 기세였다.

태어나 한번도 느껴본 적없는 공포 앞에 등골이 서늘해지고 눈앞이 아득해졌다. 도망가야한다는 생각 뿐이었다. 팀원들은 다 어디 간걸까. 팀장은 왜 또 자리에 없는건데.. 순간적인 판단력이 흐려졌다. 경찰에 신고해야하나. 소리를 질러야하나. 공포에 질린 채 온 몸이 바들바들 떨렸다.


"아는 것도 하나 없고 할 줄 아는 것도 없다. 본인이 자격미달인 걸 인정하는 거구만."

조롱섞인 비난이 이어졌다. 모멸감과 수치심, 공포에 더이상 견디기 힘들었다.


"... 계속 이러시면 .. 지금부터 녹음하겠습니다."


녹음이라는 단어를 꺼내자마자 A가 멈칫했다. 그 단어는 그 즉시 효과가 있었다.


"뭐 녹음? 니가 감히? 하 그래 녹음해봐!! 어디 해보라고 ! 나도 녹음한다 이거야! "


계속해서 몰아붙이던 A는 녹음이라는 단어를 꺼낸 내가 괘씸했는지 분을 이기지 못해 씩씩대며 자신의 핸드폰을 들이밀며 더욱 공격적인 기세로 쏘아붙였다.


"대답하세요 어느 소속 누구시죠? "


그는 갑자기 존대말을 사용해 취조하듯 따져물었다. 속수 무책이었다.


"제발 이러지 마세요. 저는 정말 한치의 부끄러움 없이 성실하게 일하고 있을 뿐 입니다."


이젠 간절한 절규이자 부탁이었다.

.

.

.

가해자가 자리를 떠나고 나는 그대로 힘이 풀려 자리에 풀썩 주저앉았다.


툭툭.. 긴장의 끈이 풀리자 그간 외면해왔던 불안과 위험의 조각들이 순식간에 집채만한 파도가 되어 방울방울 눈에 차올랐다. 백짓장처럼 새하얗게 변한 손이 아직도 부들부들 떨렸다. 솟구치는 눈물을 훔칠 힘이 없었다. 사무실 바닥에 주저앉아 몸을 가누지 못하고 그대로 눈물을 쏟아내다가 이윽고 감정의 샘이 폭발해버렸다.


노동자로서의 최소한의 존엄까지 유린당했다. 

지속적으로 행해진 폭언 앞에 깨질 듯 불안해보이던 내 인내는 한계에 도달했다. 

그렇게 한시간을 울었던 것 같다. 산산 조각난 내 영혼 앞에서 통곡하며 울었다.

너무 아프고 참담해서. 지금 이 공간이 내 일터라는 사실이 경악스러울 정도로 참담해서 말이다.


외부에 있어 미안하다는 팀장이 수화기너머로 내 상태를 물었다.

"그래요 하선생 많이 힘들죠? 집에서 며칠 쉬어요. 다 해결될 테니까."

팀장은 여전히 천하 태평이었다.


집에 돌아와 침대에 누우니 온 몸이 얻어 맞은 것 처럼 아팠다. 눈물이 멎고 나니 머리가 깨질듯이 아팠다.

나는 어쩌자고 그의 말을 되받아 쳤을까. 그냥 가만히 있을걸. 후회가 밀려왔다.

어차피 이기지도 못할텐데 괜히 일만 키웠나. 가슴이 날카로운 비수로 난도질 당한 듯 쓰렸다.

난 그저 성실하게 내 일을 했을 뿐이다. 이를 악물었다. 내 연약한 저항이 너무나도 힘이 없어 슬펐다.


다시 눈물이 흘렀다. 사건은 시시각각 몇 초마다 떠올랐다.

 상상이 더해진 시나리오의 피해자는 나일  하다가 정신차리면 이미 나인 채로 선명하게 떠올랐다.


그렇게 환상과 회상을 넘나들며 울다 지쳐 잠이 들던 며칠 후, 나는 내가 겪은 다양한 '재수없는 일'이 바로 직장 내 괴롭힘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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