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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함승민 Jan 16. 2018

비트코인은 진짜 돈이 될 수 있을까

돈의 역사

지갑 속의 1만원짜리 지폐를 꺼내보자. 세종대왕이 그려진 이 녹색 종이(정확히는 종이가 아니라 솜) 한 장을 만드는 데 드는 비용은 70원 정도다. 그러나 우리는 이를 고민 없이 1만원으로 알고 쓴다. 이처럼 화폐의 가치는 화폐 자체가 아니라 ‘그것이 가치가 있다’라고 생각하는 사실로부터 발생한다. 그럼 사람들은 언제부터 이런 맹목적인 믿음을 갖기 시작했을까?  


화폐의 역사는 인류의 역사만큼 길다. 시작은 6000년 전 농기구로 농사를 짓기 시작하면서 먹고 생활하고 남을 만큼의 생산물이 발생하던 때다. 사람은 잉여 생산물을 다른 사람과 교환하고 싶어 했다. 다만 과정이 쉽지 않았다.  


닭을 키워 돼지를 사고 싶다고 치자. 다행히 거래를 원하는 상대를 만나면 쉽게 교환할 수 있다. 그런데 돼지 주인이 원하는 게 소라면 다르다. 거래는 이뤄지지 못한다. 이처럼 화폐가 없으면 자신과 반대의 거래를 원하는 상대가 있어야만 거래를 할 수 있다. 행여 운 좋게 맞는 거래 상대를 만나도 교환은 순조롭지 않다. 서로 생각하는 가치가 달라서다. 나는 닭 10마리와 돼지 1마리를 바꾸고 싶은데, 돼지 주인은 닭 30마리를 원할 수 있다.  


사람들은 이런 불일치 문제를 해결할 제3의 물건을 고안했다. 바로 화폐다. 먼저 물건을 교환하면서 자연스럽게 물건 사이의 가치를 비교했다. 이때 비교 기준으로 자주 사용하는 게 생겼고, 이게 자연스레 화폐 역할을 담당했다.  


가령 돼지를 원하는 닭 주인이 닭과 쌀로 바꿔 돼지 주인에게 준다. 돼지 주인은 받은 쌀로 소를 산다. 이 경우 ‘쌀’이 화폐의 기능을 한 셈이다. 이렇게 ‘가치의 기준’과 ‘거래의 수단’으로 돈의 역할을 대신하는 물건을 ‘상품화폐’라고 한다. 처음에는 곡물·가죽·옷감 등 생필품이 상품화폐로 많이 쓰였다.  


그런데 '상품화폐'는 무겁고 부피가 크면 들고 다니며 거래하거나 집에 쌓아두기 불편하다. 그러면서 점차 보관과 운반이 용이한 동물의 뼈나 장신구가 그 자리를 대체했다. 화폐에 가치의 기준과 거래의 수단이라는 기능 외에 ‘보관과 축적’이라는 역할이 더 해지면서다. 가장 대표적인 게 조개껍데기다. 중동·중국 등에서 기원전 수천 년 전부터 사용했다.  



이처럼 생필품에서 장식품으로의 전환은 화폐 역사상 가장 중요한 인식 전환의 계기가 됐다. 『화폐이야기』에서는 ‘생필품에서 장식품으로의 전환은 화폐의 가치가 그 내재적 가치(화폐를 구성하는 소재의 가치)에서 이탈하는 단초’가 됐고 ‘이후 화폐의 역사는 내재적 가치에서 멀어지는 기나긴 여정’이라고 설명한다. 조개껍데기는 70원짜리 종이가 1만원으로 쓰이게 된 발상의 시작인 셈이다.

 

이제 겨우 시작이다. 사람들은 더 작고 더 튼튼한 돈을 원했다. 때마침 신석기에서 청동기 시대로 넘어가며 낙점된 게 금속이다. 일단 금속은 조개껍데기보다 단단하고 오래간다. 기술이 더 발달한 뒤에는 똑같은 크기로 잘라 쓸 수도 있었고, 필요하면 다시 한 데 모아 녹이면 됐다. 처음에는 주로 청동과 철로 돈을 만들었다. 구리로 만든 쟁기(포전)와 철로 만든 칼(도전)이 이때 등장했다.  


본격적인 금속화폐 시대를 연 것은 금과 은이다. 일반적인 금속 화폐의 장점뿐 아니라 매장량이 적어 수급 변동이 크지 않아 희소가치를 지녔다. 쉽게 녹이 슬거나 변하지도 않고, 보기 좋게 반짝이기까지 한다. 물질적 특성 외에도 사회·종교적 상징성을 갖춘 점도 화폐로 채택되는 데 영향을 미쳤다. 화폐로서 더할 나위 없는 조건을 갖춘 셈이다.  


다만 금과 은이 처음부터 지금과 같은 모양으로 쓰이진 않았다. 초기에는 뭉텅뭉텅 잘라서 사용했다. 그래서 '이 금이 얼만큼인지'를 파악하기 위해 무게를 쟀다. 이를 ‘칭량 화폐’라고 한다. 무게를 재서 가치를 정한다는 뜻이다. 영국의 화폐 단위 ‘파운드’나 과거 유럽 국가들의 화폐 이름이었던 마르크(독일)·리브르(프랑스)·리라(이탈리아) 등은 금·은의 무게를 재던 시절의 흔적이다.  

하지만 매번 물건을 사고팔 때마다 저울로 일일이 무게를 재는 건 너무 귀찮다. 사람들은 금과 은의 크기와 모양을 조금씩 맞춰갔다. 그게 바로 막대 형태의 괴(塊, bar)다. 일정한 무게와 순도를 확인했으니 믿고 쓰라는 의미로 인장도 찍었다. 그러나 또 금괴, 은괴는 너무 무겁다. 또 자잘한 거래를 하기엔 가치가 너무 크다. 껌 하나 사고 싶은데 수표만 들고 다녀야 하는 꼴이다. 사람들은 기어이 작고, 똑같은 모양·무게를 가진 금과 은 덩어리를 만들어냈다. 동전이 등장한 것이다.

 

2500년 전 지금의 터키 지방인 리디아에서 세계 최초로 오늘날의 동전과 같은 동그란 형태의 금·은화를 만들었다. 호박금(electrum)이라 불리는 동전이다. 이를 그리스 도시국가들이 널리 퍼뜨렸다. 무역 용도뿐 아니라 동전을 만들어 수익을 남기는 ‘주조 차익’을 얻거나, 전쟁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대규모로 화폐를 주조했다. 국가가 돈을 벌기 위해 돈을 만든 시초다.  


이후 알렉산더 대왕이 광대한 영토를 정복하면서 생긴 전리품인 금과 은으로 통일된 화폐를 만들어 유통시켰다. 화폐량의 증가와 화폐의 보편적 사용으로 교역이 늘고 경제적 번영과 통합의 기반이 됐다. 하지만 화폐의 급격한 증가로 화폐 가치가 떨어지는 인플레이션이 발생하기도 했다.  


이어 로마 제국이 그리스가 만든 ‘정복 후 화폐 발행’의 바통을 이어받았다. 특히 초기 로마는 대외팽창 정책 덕에 정복지에서 지속적으로 금·은을 공급받았다. 화폐 발행도 증가했다. 다만 이 때는 교역도 크게 늘어나 심각한 인플레이션이 발생하진 않았다. 그러다 1세기가 넘어가면서 금·은이 부족해졌다. 영토 확장이 중단되고, 식민지였던 스페인의 금·은 광산도 바닥을 드러내면서다.  


통치를 위한 재원이 필요했던 로마 황제 네로는 금·은화의 순도를 줄이거나 도금된 화폐를 만들어 재원을 충당했다. 사람들은 금을 '믿지 못할 돈'으로 여기기 시작했다. 화폐 가치는 하락하고 인플레이션이 발생했다. 시중에 유통되는 진짜 금·은화도 줄었다. 금화를 화폐로 쓰기보다 그걸 녹여 금을 만들어 파는 게 더 이득이었기 때문이다.  


이때를 기점으로 화폐는 암흑기를 맞는다. 서로마 제국이 멸망하면서 화폐를 발행할 만한 중앙 권력이 사라졌다. 중세의 ‘충성과 보호의 약속’ 중심의 봉건제도, 농지와 수확물을 노동의 대가로 지불하는 장원 제도의 특징은 화폐의 침체를 부추겼다. 재화의 거래와 부의 축적이 없으면 화폐는 무용지물이다. 이 시기 거래와 축적은 지배계층의 전유물이었다. 이로 인해 금화 주조는 중단되고, 그나마 유통되는 은화의 순도도 점점 낮아졌다.  


잠깐 동양으로 시선을 돌려 보자. 서양과는 달리 동양에서는 화폐로서의 금이 발달하지 않았다. 금 매장량이 많지 않아서다. 대신 구리 동전이 쓰였다. 이 동전도 서양보다 약 500년 늦게 등장했다. 최초의 동전은 진시황제의 ‘원형방공전’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동전은 고려 성종(996년) 때 만들어진 ‘건원중보’다.  그러나 조선 후기에 이를 때까지 우리나라에서 동전은 널리 쓰이지 않았다. 대신 곡식과 옷감을 화폐 용도로 썼다. 상품화폐의 시대가 오래 지속된 셈이다. 관리들의 녹봉도 이것으로 지급됐다. 세종대왕이 화폐 대중화를 추진했지만 반발만 사기도 했다. 사농공상의 법도에 따라 상거래나 무역이 활발하지 못했던 탓이다. 임진왜란·병자호란 후에야 경제체제 변화로 화폐가 통용됐다.  


화폐는 거래를 위한 도구다. 거래 자체가 없으면 화폐의 쓰임새도 줄어든다. 반대로 상거래가 활발해지면 화폐는 빛을 발한다. 유럽에서 금화가 다시 고개를 든 건 14세기 이탈리아 도시국가를 중심으로 무역이 발달하면서다. 이로 인해 유통되는 금화의 양과 종류가 늘었다. 원활한 무역 거래를 위해 서로 다른 금화의 가치를 평가할 전문가가 필요했고 ‘금 세공인’들이 이 역할을 맡았다. 이들을 잘 기억해두자.  


14세기 금화 유통이 늘었다고는 하지만 금 자체가 부족한 건 여전했다. 이 갈증을 풀어준 게 15세기의 신대륙 발견이다. 1500~1800년 매장량이 풍부한 남미에서 유럽으로 흘러 들어간 금은 2800t에 이른다. 세계 금 생산량의 70%에 달하는 양이다. 이때 식민지를 통해 유입된 금을 바탕으로 스페인은 강대국으로 거듭났다.  


물론 금이 스페인에 행운만 가져다준 것은 아니다. 금이 대량 유입된 만큼 엄청난 물가 상승의 고통도 겪어야 했다. 금화의 유통량이 상품의 공급량과 균형을 이루지 못한 탓이다. 더구나 금을 노린 사략해적 탓에 영국과 전쟁을 벌였고, 칼레 해전에서 패하면서 패권을 영국에 넘겨줘야 했다.  금 물량 증가의 여파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금화 가치 하락에 따른 지속적인 물가 상승은 지대 수입에 의존하던 봉건 영주들에게 큰 타격을 주면서 봉건주의 시대의 종말을 앞당겼다. 또한 새로운 화폐에 대한 요구가 생겼다.  


 금화 가치가 떨어진다는 건 그만큼 거래와 보관에 더 많은 금화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귀했을 때야 금화 한두 개로 살 수 있던 물건을 이제 금 궤짝을 들고 가 사야 할 판이다. 금은 무겁다. 당연히 거래가 불편할 수밖에 없다. 상상해보라. 음료수 하나를 사기 위해 매번 편의점에 동전이 가득한 돼지저금통을 들고 가야 한다면 어떻겠는가?  


가벼운 화폐가 절실했다. 이 요구에 맞춰 등장한 게 지폐다. 동전과는 반대로 지폐는 동양에서 훨씬 먼저 나왔다. 종이 자체가 먼저 발명됐을 뿐 아니라 중앙집권 체제 아래서 황제가 지폐 사용을 강력히 추진한 때문이다. 중국에서 지폐를 발명한 지 700년 후에야 서양에서도 지폐를 만들었다.  


여기서 앞서 언급한 금 세공인이 다시 등장한다. 이들은 지폐를 유통시켰을 뿐만 아니라 은행을 만들어 오늘날 금융업의 시초가 된 사람들이다. 금을 많이 다루던 금 세공인에게는 당연히 금을 보관하기 위한 안전한 금고가 있었다. 금 세공인은 금고에 다른 사람의 금을 보관해주고 보관료를 받았다. 고객에게는 ‘여기에 누가 얼마의 금을 맡겨놨음’이라고 적은 보관증을 발행했다. 이른바 ‘골드스미스 노트’다.   



그런데 이게 상인들 사이에서 지불 수단으로 사용됐다. 처음엔 보관증에 이름이 적힌 사람만 지불되던 것이 보관증을 지닌 사람이면 누구나 지불받을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예컨대 상인 A는 B에게 금화 대신 금 보관증을 준다. B가 이 보관장을 금 세공인에게 가서 보여주면 금 세공인이 금과 교환해주는 식이다. 점차 이를 이용하는 상인이 늘었고 결국 이 보관증이 유럽 최초의 지폐가 됐다.

 

여기서 수익이 발생하자 많은 금 세공인은 세공 일을 관두고 보관에만 전념했다. 보관증만큼의 실제 금이 필요 없다는 걸 안 뒤에는 웃돈이나 사용료를 받고 실제 맡긴 금 이상의 보관증도 발행했다. 현대적 개념의 은행과 대출이 탄생한 것이다.  


자, 여기서 보관증은 보통 '다량의 금화에 대한 교환증거'다. 당연히 금화 하나하나보다 높은 금액을 표시한다. 지폐가 금화보다 비싸다는 얘기다. 이때부터 동전은 ‘잔돈’ 신세가 됐다.

 

그러나 이때까지만 해도 국가가 정한 지폐가 만들어지기 전이다. 각 지폐는 발행한 은행에 따라 달랐다. ‘OO은행권’ ‘XX은행권’으로 발행됐고, 각 은행에서만 금으로 교환할 수 있었다.  


국가에서 정한 단일 법정 지폐와 중앙은행은 영국에서 처음 탄생했다. 법정 지폐와 중앙은행의 탄생 배경은 그리 순수하지만은 않다. 옛날 로마와 그리스가 통치 재원 마련을 위해 동전을 만든 것처럼 영국 정부가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만든 것이기 때문이다. 1688년 명예혁명 이후 집권한 윌리엄 3세는 프랑스와의 전쟁으로 재정이 궁핍해지자 지폐를 발행하기로 결정했다. 이를 위한 돈마저 없어 상인들로부터 자금을 차입하고 공동출자 방식으로 중앙은행인 영란은행을 설립하고 파운드화를 찍었다.

 

애초 파운드화는 민간 지폐와 크게 다를 게 없었다. 하지만 정부를 등에 업은 파운드화의 영향력은 갈수록 커졌다. 1773년 이를 위조한 자는 사형에 처한다는 법이 제정되면서 법으로 보호받는 지위를 부여받았다. 1844년엔 영란은행을 제외한 은행의 지폐 발행을 금지해 독점적 화폐 발행권이 성립됐다. 영국에서 국가가 지폐 발행으로 재정을 확충하는 성공 사례가 나오자 주변국도 하나 둘 중앙은행과 법정 지폐를 만들었다.  


영국과의 무역에서 만성 적자를 보던 미국도 자체 지폐를 발행했다. 다만 이 경우는 이를 교환해줄 금·은 등의 준비금 없이 신용만으로 만든 화폐다. 당연히 이 화폐의 가치는 매우 낮았다. 식민지였던 미국 정부의 과도한 화폐 발행은 영국 의회의 발행 제한 및 금지 조치로 이어졌다. 결국 이는 미국의 불만을 사서 독립전쟁의 요인이 되기도 했다. 미국은 한참 뒤 자국 경제가 안정된 뒤에야 법정 지폐를 재발행했다.

 

17세기에는 예금 화폐가 등장했다. 은행에서 고객들에게 계좌를 개설해주고 계좌 간 이체를 해준 것이다. 실제 돈은 오가지 않는다. 이런 이체를 실행해달라는 의뢰서가 수표다. 수표는 화폐의 공급을 획기적으로 늘렸다. 실제 존재하는 잔고 이상의 화폐를 시중에서 만들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리 예금 화폐라도 그 실제 가치는 '금과 은으로 바꿀 수 있다'는 사실에 의존했다.  


18세기 은이 중국·인도로 다량 빠져나가자 영국은 금과의 교환성에 기초해 지폐에 가치를 부여했다. 이른바 ‘금 본위제’다. 금본위제가 없다면 지폐는 금화와 달리 그림 그려진 종이 쪼가리에 불과한 것이다. 영국 정부는 1821년 ‘지폐를 금으로 바꿔준다’는 금 본위제를 명문화하면서 지폐에 부여된 신뢰를 확립했다. 이후 당시 강대국들은 모두 차례로 금 본위제를 선언했다.

 

금 본위제는 상당히 안정된 시스템이다. 금에 대한 믿음이 유지되는 이상 안정적으로 돈의 가치가 인정된다. 금 없이는 쉽게 찍거나 없앨 수 없어 통화량의 급격한 변동도 막을 수 있다. 실제로 제1차 세계대전 전까지 금 본위제는 국제 금융 시스템을 잘 이끌었다.  


그러나 전쟁이 발발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각국 정부에 ‘급전’이 필요했던 것이다. 보유한 금 이상의 돈을 찍어야만 했다. 결국 금 본위제의 맹주였던 영국을 시작으로 유럽 각국이 금 본위제를 포기하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유럽의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금 본위제를 포기한 미국이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인 1944년 다시 금 본위제를 선언했다. ‘달러를 가져오면 금으로 바꿔준다’는 것이다. 이른바 ‘브레턴우즈 체제’의 시작이다. 본토에 전쟁 피해를 입지 않은 데다 참전 대가로 금을 두둑이 챙겼고, 자국의 금광 개발까지 더해진 덕이다.

 

당시 미국은 세계 금의 약 80%를 쥐고 있었다. 너도 나도 금에 기반한 안정된 가치의 달러를 원했고, 이때부터 미국 달러는 세계의 기축통화 역할을 했다. 그러나 브레튼우즈 체제는 오래가지 못했다. 미국이 베트남 전쟁에 뛰어들면서 천문학적인 자금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제1차 세계대전 때와 같이 미국은 거추장스러운 금 본위제를 1971년 벗어던졌다.

 

이때부터 화폐 가치와 금과의 관계는 끊겼다. 지금과 같은 ‘명목화폐’ 또는 ‘신용화폐’의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금과 같은 실물의 가치와 연계되지 않으면서 정부의 신용을 근거로 유통되는 화폐다. 어떤 나라 경제가 흔들릴 때 화폐가치도 덩달아 급락하는 이유다. 실물 근거가 필요 없으니 정부는 화폐를 마음대로 찍어낼 수 있게 됐다. 하지만 그만큼 통화관리가 까다로워졌다.  


지금 가장 주목을 받는 건 전자화폐화다. 화폐는 더 이상 실체를 갖추지 않고 플라스틱 카드를 통해 계좌에서 계좌로만 이동한다. 금속을 대체했던 지폐는 데이터에 자리를 내주고 있다. 이제 세계 전체 통화 중 지갑과 호주머니에 든 화폐의 양은 극히 일부다. 각종 가상화폐도 등장했다. 아직은 보안과 표준화 문제로 통용되지 않지만 앞으로 사용 범위가 넓어질 가능성도 있다.  


앞으로의 화폐는 어떤 모습일까. 어떤 사람들은 전통 화폐가 사라질 거라고 전망한다. 혹자는 금 본위제에서 금이 지폐를 뒷받침했듯 지폐가 전자화폐의 뿌리로 존재할 거라고 본다. 아예 금 본위제로 돌아가거나 세계 단일 화폐가 등장할 거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비트코인 같은 암호화폐도 이런 수많은 가능성 중 하나다.   


비트코인을 인류가 가장 애용한 화폐인  금과 비교해보자. 비트코인이 화폐로서 내세울 수 있는 장점은 누구 하나가 맘대로 엄청난 양을 찍어낼 수 없다는 것, 즉 '희소가치'와 안정성이다. 네트워크 상의 데이터인 만큼 녹이 슬거나 변하지도 않는다. 세계 어디서나 비슷한 가치로, 범용으로 쓰일 수도 있다. 금이 가졌던 장점이다.  


다만 차이점도 있다. 녹이 슬거나 변하지 않지만, 눈에 보이지도 않는다. 이런 물건에 사람들이 쉽게 믿음을 가질 수 있을까. 금과 달리 손에 잡히지 않는 물건이라 해킹이나 오류를 불안해하진 않을까. 금은 본래 화폐 외에도 장신구, 재료, 문화적 상징 등으로 활용됐지만 비트코인은 '돈'이라는 용도 말고는 쓸모가 없다. 여기에 '가치'가 실릴 수 있을까.  


결국 화폐의 역사를 통해 비춰봤을 때 암호화폐가 미래의 진짜 돈이 되기 위한 과제는 간단하다. 어떻게 화폐의 근본인 ‘이것이 가치 있다’는 공통된 신뢰를 얻을 수 있느냐 여부다. 여기에 정치·경제·사회 상황에 따라 화폐를 활용하려는 각국 정부의 속내가 변수가 될 수도 있다. 족쇄를 벗기 위해 금이란 유용한 도구와도 결별한 국가가 암호화폐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지에 대한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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