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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함승민 Mar 27. 2020

자영업위기일까, 소매종말일까

헛도는 자영업자 대책

한국은 '오프라인 소매업'의 위기를 '자영업 위기'로 표현하는 경향이 있다. 자영업, 소상공인, 1인사업자 같은 단어가 계급론적인 뉘앙스를 갖고 있어 정치사회적으로 '먹히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 '오프라인 소매상'은 딱딱하고 차갑기만 한 단어다. 사람들의 관심을 사고 들끓게 만들기에는 부족하다. 


문제는 사소한 것 같은 둘 간의 미묘한 차이가 문제의 원인을 파악하는 데도 왜곡을 만든다는 점이다. '오프라인 소매업'이 어렵다고 하면 그 이유를 경제구조의 변화, 산업의 특징 같은 데서 찾게 마련이다. 그러나 '자영업자'라고 하면 자연스레 문제의 원인이 '규모'에 있을거라고 단정해버리기 쉽다. 


파악하는 원인이 다르면 해결책도 다르다. 문제인식이 규모에 초점을 맞추면 당연히 대책의 방향은 '지원'과 '보호'로 귀결된다. 세금, 임대료, 이자를 깎아준다는 것들이다. 산업의 변화 같은 걸 눈감아 버리니 대증요법에 그치고 만다. 그리고 이에 대한 정당성과 현실성 등을 두고 또 소모적인 논쟁이 반복된다. 


뜨거운 가슴으로 자영업자에 대한 관심을 환기하는 것도 좋지만, 차가운 눈으로 문제를 (자영업자의 비중이 큰)오프라인 소매상의 위기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이런 점에서 해외에서 '소매종말'을 다루는 시각을 참고할 만하다. 소매종말에 대한 논의는 계급론적 시각보다는 산업구조에 대한 분석의 비중이 크다. 




미국과 영국 등지에서 ‘소매종말(Retail Apocalypse)’에 대한 논의가 뜨겁다. 잘 나가던 대형 유통 업체들이 잇따라 문을 닫기 시작하면서다. 


소매 종말의 일차적인 원인으로 지목되는 건 온라인 쇼핑의 시장 잠식이다. 소비자들은 쇼핑하기 위해 예전만큼 점포들이 늘어선 거리로 나가지 않는다. 이제 더 이상 공구, 도자기, 자동차 용품, 의류, 장난감, 이불을 오프라인 매장에서 찾지 않는 것이다. 스마트 기기가 대중화하면서 버스 안에서 소파를 사고, 소파나 침대에 누워 디자이너 핸드백이나 새 주방까지 구입하는 시대가 됐다. 


그러나 일부 전문가들은 온라인 쇼핑 증가만으로는 소매종말을 설명할 수 없다고 말한다. 미국의 전체 소매 판매액 중 온라인 비중은 2000년 1%에서 현재 1% 가까이 급증한 건 맞지만, 여전히 오프라인보다 비중이 훨씬 적다는 것이다. 이에 원인을 소매 매장의 공급 과잉과 인구구조의 변화에서 찾기도 한다. 소비 및 인구 성장은 정체됐는데도 부동산 개발과 상가 공급은 이어졌고, 그 여파로 시장 내 ‘구조조정’이 발생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인구구조 변화에 따른 소비 둔화도 원인이다. 1980년대 초반엔 미국의 베이비붐 세대가 소비지출이 가장 많은 35~54세 연령대에 진입하면서 성장의 원동력이 됐다. 그러나 이들의 노화가 시작되면서 2001년 소비가 둔화되기 시작했다. 바통을 이어갈 다음 세대는 인구도, 소득도 부족하다. 


이유가 온라인으로의 전환이든, 상가 공급의 과잉이든 소비자 입장에선 소매종말은 딱히 큰 걱정거리는 아니다. 실제로 미국 현지에서도 이런 목소리가 나온다. 소매 매장이 변화하는 추세와 기술이 적응하지 못하면 도태되는 게 당연하고, 고객 역시 더 나은 서비스를 누릴 권리가 있다는 지적이다. 이들은 정 들었던 매장이 사라졌다고 감상적으로 보고 슬퍼할 필요 없이, 새로운 채널로 유통이 진화하는 것으로 봐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문제는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다. 여기서 파급되는 경제적 여파 때문이다. 해외 언론에서 언급하는 가장 직접적인 우려는 소매 업체의 파산이다. 블룸버그 칼럼니스트 코너 센은 “많은 소매 업체가 사라지고 일부 프랜차이즈로 통합돼, 쇼핑의 다양성이 사라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부동산 경기 침체도 걱정거리다. 장사가 되지 않아 매장이 빠져나가는 자리엔 상가만 덩그러니 남기 때문이다. 


또 다른 문제는 일자리다. 쇼핑산업은 미국인들의 최대 고용주다. 종사자 가운데는 저소득층이 많다. 물론 소매업을 대체하는 전자상거래에서 일자리가 생길 수 있다. 실제로 업체들은 온라인 사업을 강화하기 위해 배송을 위한 유통센터를 추가하고 있다. 문제는 사라지는 일자리와 생기는 일자리의 차이다. 실직한 이들의 대부분은 앨라바마에 사는 여성인데, 새로 생긴 유통센터는 미주리의 남성을 고용하는 식이다.


지역경제에 주는 부정적인 영향도 크다. 동네 수퍼마켓에서 거래하는 물건 1 달러는 어쨌든 현지에서 유통된다. 그러나 온라인으로 대체되는 소매종말의 경우 같은 1달러가 쓰이더라도 그것이 현지에서 지출되지 않는다. 대신 그 돈은 바로 대도시의 아마존 본사와,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흘러간다. 당연히 사람들은 대도시로 흘러갈 수밖에 없다. 그만큼 지역 인구는 감소하고, 지역 소매상은 더 어려워지는 악순환에 빠진다.




소매종말은 국내에서는 아직 큰 관심을 받고 있지 않다. 대형 유통 업체의 극적인 실적 부진이 눈에 띄지 않아서다. 그러나 이를 ‘자영업’으로 치환해서 보면 해외 소매종말 논란이 국내 시장에 시사하는 바도 적지 않다. 소매업자와 자영업자를 똑같이 볼 수는 없지만, 실제 생활용품·의류·장난감 같은 공산품 소매 업체는 대형 체인점이나 온라인에 흡수돼 이미 ‘종말’에 가까운 상태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국내 도소매업업종 1인 자영업자의 감소는 전체 자영업 업종 가운데 가장 심각하다. 그나마 자영업 가운데서도 서비스업처럼 온라인으로 쉽게 대체되지 않는 ‘경험’ 위주의 업종은 사정이 괜찮은 편이라고 볼 수 있다. 식당이나 미용실이 경기가 안 좋다고 하지만, 장난감 가게나 이불가게만은 못하다는 얘기다. 


도소매 자영업자의 부진은 온라인쇼핑과 대형마트 등으로 수요가 이동한 영향이 크다. 실제 2006~2016년 전체 도소매업 시장 규모는 110% 커졌는데, 여기엔 181% 커진 무점포(전자상거래 등) 업체의 영향이 컸다. 반면 오프라인 소매 점포의 폐업은 늘고 있다. 동네 철물점, 장난감가게, 이불가게가 사라지는 것이다. 


음식점·숙박업 등서비스업의 경기가 좋다는 게 아니다. 다만 이들의 어려움은 이유가 조금 다르다. 온라인 쇼핑 같은 소비패턴 변화보다는 연쇄 효과로 인한 공급 과잉의 영향이 더 크다. 도소매 업종에서 폐업하는 이들과 새로 창업하는 이들이 비교적 진입장벽이 낮은 음식·숙박업으로 창업이 몰린 것이다. 


더구나 베이비부머 은퇴가 본격화하면서 늘어난 자영업자 대다수는 바뀌는 환경에 취약한 장년·노년층이다. 이들 간 차별되지 않은 자영업은 출혈경쟁만을 부추겨 수익성을 떨어뜨린다. 여기에 대형 쇼핑몰이나 백화점 같은 대형 유통 업체도 소매업 부진을 피해 그나마 장사가 된다는 맛집으로 승부를 걸면서 입지가 좁아진 점도 작용했다. 


따라서 자영업자의 대표격인 온라인으로 대체되버리는 도·소매업과 온라인으로 대체되지 않는 음식점·숙박업을 구분해서 봐야 한다. 부진의 원인이 다른 만큼 해결책도 다르게 접근해야 한다. 오프라인 소매업은 매출의 감소, 음식숙박업의 어려움은 마진이 줄어든 영향이 크다. 단순히 세금, 카드수수료, 이자, 인건비, 임대료 같이 장사하는 데 드는 돈을 줄여준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다. 




소매종말의 징후인 온라인 쇼핑의 습격은 웬만한 선진국보다 거세다. 선진국과 마찬가지로, 인구구조 변화와 소득, 이에 따른 소비력도 우호적이지 않다. 가계는 부채의 덫에 빠져 소비를 늘릴 여력이 없고 인구도 곧 감소세로 접어든다. 소매종말의 원인으로 꼽히는 것과 증상이 같다.


이후 우려되는 문제도 소매종말의 그것과 유사하다. 먼저 도소매 자영업자의 소득 저하는 심각한 수준이다. 소상공인 평균 소득이 전국 동종 업계 노동자 평균 임금보다 낮은 비율은 72.3%, 적자 상태인 비율은 7.4%에 달했다. 일자리도 불안하다. 고용쇼크는 대기업보다 주로 5인 미만 영세 자영업의 채용 감소에서 두드러진다. 자영업 몰락의 영향은 부동산 시장으로 전이될 수 있다. 


이들이 지고 있는 부채 문제도 심각하다. 이들은 대출의 질이 좋지 않고, 금리와 경기 변동에도 취약하다. 자영업이 추락했을 때의 타격은 지방이 더 크다. 자영업 대출의 절대 규모는 시중은행이 크지만 건전성 악화 등의 위험은 지방은행이 더 클 수 있다. 지방 소매점의 가장 큰 적 역시 도시의 온라인쇼핑 업체다. 


더구나 한국은 이미 ‘지방소멸’을 걱정하는 처지다. 한국고용정보원에 따르면 전국 11개 시군구는 몇 년 지나지 않아 사람을 찾기 힘든 소멸 고위험지역이다. 저출산 고령화로 인한 인구 감소와 청년층 유출 때문이다. 앞서 미국 사례에서 지적한 대로, 소매 상점의 몰락과 함께 지역 안에서 도는 돈이 줄어드는 건 이런 지방 소멸을 더 부추길 가능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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