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사업과 규제혁신
최근 등장하는 신산업은 정부 및 기존 사업자와 갈등을 빚기 쉽다. 정부는 공중보건위생, 교통질서 확립, 국민의 안전 및 사회 질서유지 등의 목적으로 허가, 특허 등의 행정행위를 통해 기업을 규제하거나 시장을 규제해왔다. 그만큼 이러한 산업의 경우 신규 사업자가 다른 산업에 비해 진입장벽이 높다. 이로 인해 기존 사업자는 혁신의 필요성 덜 느끼고 산업이 정체되곤 한다. 신산업은 그 틈을 노린다. 공급자보다 소비자에게 초점을 맞춘 서비스로 시장에 충격을 준다. 이에 위기감을 느낀 기존 산업은 정부가 쳐둔 진입장벽을 무기로 밥그릇을 보호하려고 한다. 신산업은 낡은 규제를 욕하고, 기존 산업은 법을 지키라고 목소리를 높이는 배경이다.
스타트업이니, 모바일 신사업이니 하는 것들이 범람하는 요새만 벌어지는 일이 아니다.
예전에 백화점을 다니는 무료 셔틀버스가 있었다. 이제는 찾아볼 수 없는 유물이다. 버스 회사가 아닌 개인이나 법인이 버스를 구입해 정해진 노선을 도는 것이 불법이 됐기 때문이다. 허가 받은 정식 여객운송 업체가 아니면 돈을 받고 운행을 하는 것은 물론, 고객 유치 등을 목적으로 무료로 정류장을 도는 것도 안 된다. 예외는 있다. 학교·학원·유치원·보육시설·호텔·종교시설·금융회사·병원의 이용자를 위해 운행하는 경우다. 교육·문화·예술·체육시설의 셔틀버스도 허용된다. 단, 대형 유통 업체에 부설된 시설은 제외다. 헬스클럽은 셔틀버스를 운행할 수 있지만, 백화점 안에 있는 스포츠·문화센터 버스는 원칙적으로 금지다.
이런 규제는 왜 생긴 것일까.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보자. 무료 셔틀버스가 주목을 받기 시작한 건 1980년대 후반이다. 당시 서울 강남의 대형 백화점들이 쇼핑 고객을 유치하기 위해 앞다퉈 셔틀버스를 운행하기 시작했다. 백화점 문화센터 회원을 수송한다는 명목이었지만 실상 판촉을 위한 고객 수송용으로 활용돼 탑승을 원하는 주민은 누구나 무료로 이용할 수 있었다. 그러자 주변 시장상인들이 반발했다. 대형 유통 업체의 영업활동이 인근 고객을 빨아들여 지역 소매업자의 생존권을 위협한다는 것이었다. 이를 받아들인 서울시 등 지자체가 백화점들의 쇼핑버스 운행 시정 조치 명령을 내리기도 했다.
그러나 백화점들은 셔틀버스 운행을 포기하지 않았다. 이후 백화점과 중소상인, 정부의 긴 시소게임이 시작됐다. 정부는 단속을 하기도 하고, 백화점에게 ‘알아서 줄이라’고 어르기도 하고, 제한적으로 허용해 양성화하겠다고도 했다. 다만 정부는 중소상인의 민원도 신경 써야 했지만, 편하게 셔틀버스를 이용하는 일반 시민의 눈치도 봐야 했기 때문에 어정쩡한 자세를 취할 수밖에 없었다. 백화점은 버스의 사용 목적을 직원 출퇴근 및 유료 회원 수송용으로 신고해 운행허가를 받는 등의 편법으로 대응하기도 했다. 이렇게 셔틀버스 운행에 대한 논란은 이렇다 할 변화를 주지 못한 채 10여 년 간 이어졌다.
그러던 1997년 논란에 또 한 번 불이 붙었다. 셔틀버스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다. 당시 기록을 살펴보면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 법이 바뀌었다. 1997년 기존의 자동차운수사업법이 화물자동차운수사업법과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으로 분할됐다. 이 과정에서 무상운송 자동차 신고제가 실효성이 없다는 이유로 폐지됐다. 즉 백화점들이 별도 신고 없이 셔틀버스를 운행할 수 있게 된 셈이다. 둘째, 외환위기다. 환율 폭등으로 기름값이 크게 오르면서 낮 시간대 쇼핑에 나서는 고객들이 셔틀버스를 타기 시작했다. 구제금융 결정 전후로 낮 시간대 백화점 버스 탑승객은 20∼30% 증가했다.
그러면서 백화점들의 셔틀버스 서비스 경쟁은 더 치열해졌다. 백화점뿐 아니라 대형마트나 쇼핑몰도 버스 운행을 시작했고, 노선도 다양해졌다. 서비스 경쟁으로 정류장에 여성 도우미를 배치해 노선을 안내하는 것은 물론 고객들의 물품을 들어주거나 일본 택시회사의 친절서비스 정신을 교육하는 사례도 나왔다.
셔틀버스 서비스의 양과 질이 개선되면서 이들이 기존 대중교통의 대체재가 되는 현상까지 나타났다. 특히 분당 같은 수도권 신도시에서는 대중교통 역할을 백화점 셔틀버스가 무료로 떠맡는 기이한 일이 벌어졌다. 지하철을 제외한 대중교통수단이 원활치 않은 상황에서 시내버스와 택시 대신 셔틀버스가 싸고 편한 시민의 발이 된 것이다.
상황이 여기까지 흐르자 이 문제에 새로운 이해당사자가 나타났다. 바로 버스·택시 업계다. 이들은 “공공성을 이유로 대중교통 사업자들은 그 면허 기준이나 요금, 노선 등에 대해 엄격하게 규제를 받고 있는데, 이런 규제를 받지 않는 무상 셔틀버스로 인해 승객이 줄어드는 등 대중교통 사업자의 생존권을 위협하고 있다”며 정치권에 강한 조치를 요구했다.
정치적 영향력이 큰 이들의 반발 목소리가 커지자 정부는 백화점 업계를 불러 운행을 자제하도록 강하게 요청했다. 이에 1999년 백화점 업계 사장단이 모인 한국백화점협회는 자발적으로 셔틀버스를 30%가량 줄이는 내용의 자정결의안을 내놨다.
하지만 별다른 실효성이 없었다. 오히려 셔틀버스 운행 규모는 더욱 급격히 증가하는 추세를 보였다. 자정안은 당연히 구속력이나 강제성이 없고, 그렇다고 이를 제재할 법적 근거도 없으며, 단속할 마땅한 방법도 없었기 때문이다. 백화점들은 치열해진 경쟁 속에서 버스를 줄이는 것보다는 다른 백화점보다 더 늘리는 선택을 했다.
결국 정부와 정치권은 극약처방을 내놨다. 강제로 유통 업체의 셔틀버스 운영을 전면 금지하는 내용의 입법을 추진한 것이다. 이렇게 여객운송사업법에 버스회사 외 자가용의 무료 노선운행을 금지하는 조항을 추가하기로 했다.
백화점 등 유통 업계는 강하게 반발했다. 소비자를 대상으로 여론을 확산시키고 ‘셔틀버스 운행은 계속돼야 한다’는 서명을 받아 정부에 제출했다. 그럼에도 개정안이 2000년 12월 국회를 통과하자 백화점 업계는 이 법이 본격 시행되기도 전인 이듬해 2월 헌법재판소로 갔다.
백화점들이 헌재에 호소했던 주장을 요약하면 이렇다. ‘셔틀버스는 영업 차원의 서비스 제공이다. 금지할 이유가 없는 영역이다. 물론 정당한 목적이 있을 때 영업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지만, 셔틀버스의 경우 그 정도로 급박한 필요성이 없다. 오히려 이는 특정 업체를 보호하기 위해 창의적인 아이디어로 시장에서 경쟁하고자 하는 업체를 경쟁에서 제외시키는 것이다. 또 예외조항을 보자. 대형 금융사나 호텔, 병원은 이런 규제를 안 받는다. 이들도 중소 금융사나 여관, 의원의 경영을 침해하는 것과 마찬가진데 유독 유통업체만 규제하는 건 평등원칙에도 어긋난다’.
헌재는 이해관계자들도 불러 의견을 들었다. 전국버스운송사업조합연합회는 “무료 셔틀버스를 방치하는 것은 여객운송 업계와 나아가 나라경제를 취약하게 하는 것”이라며 “백화점의 사익에 비해 중소업체의 경영과 운송질서라는 공익이 훨씬 크다”고 주장했다. 또 “호텔·병원·학원 차량은 직원이나 일정 자격이 있는 사람만 이용하는 것이기 때문에 불특정 다수를 태우는 백화점과는 다르다”고 덧붙였다. 개정을 추진한 건설교통부는 “백화점 셔틀버스는 시장 지배력과 경제력의 남용의 예”라며 “경제민주화를 위한 정당한 규제와 조정을 위한 입법”이라고 의견을 밝혔다.
팽팽한 주장만큼 헌재 재판관들이 의견도 엇갈렸다. 2001년 헌재 결정에서 재판관 4명이 합헌, 4명이 위헌 의견을 냈다. 수는 같지만, 6명 이상이 위헌결정을 내리지 않았기 때문에 헌재의 결정은 ‘합헌’으로 내려졌다. 즉 백화점의 요구는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무료 셔틀버스 운행은 예정대로 금지됐다. 당시 헌재는 결정문을 통해 “백화점 등의 무분별한 셔틀버스의 운행으로 공공성을 띤 여객운송사업체의 경영에 타격을 줘 운송 질서의 확립에 장애를 불러 왔다”며 규제의 정당성을 인정했다. 백화점들이 앞서 자구책을 이행하지 않은 점도 ‘금지 밖에는 방법이 없다’는 주장에 힘을 실어줬다.
이렇게 일단락 되는 듯했지만 셔틀버스를 둔 논란은 계속됐다. 2008년 서울시가 교통량 감축을 위한 대안으로 셔틀버스 허용을 검토했을 때도 이 문제가 입을 오르내리기도 했다. 시간이 지나고 파급효과에 대한 데이터가 쌓이면서 찬성과 반대 논리도 더 구체화됐다. 반대 측은 “그 많던 셔틀버스가 사라진 뒤에도 버스 이용객은 늘지 않았고, 인근 시장 매출도 그대로”라며 “이는 셔틀버스가 버스와 중소상인 고객을 뺏어갔다는 주장이 틀렸다는 방증”이라고 말한다. 오히려 애먼 소비자는 혜택을 뺏기고, 교통량만 증가했다는 설명이다.
잘 보면 “특정 업체를 보호하기 위해 창의적인 아이디어로 시장에서 경쟁하고자 하는 업체를 경쟁에서 제외시키는 것”이라는 백화점들의 헌법소원 소명도 낯설지가 않다. 최근 온·오프라인 연계(O2O) 서비스나 공유경제 기반의 신산업이 등장하면서 비슷한 논란이 재연되고 있어서다. 이들은 백화점의 셔틀버스처럼 고객으로부터는 지지를 받았다. 기존 대중교통이 제공하지 못하는 싸고 좋은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어서다. 그리고 모두 비슷한 이유로 국내에서 사업을 접었다. 공공성을 목적으로 진입장벽을 쳐둔 규제에 저촉됐기 때문이다.
이런 측면에서 요즘 부각되는 규제 혁신의 개념이 무엇인지, 또 어떤 자세로 봐야 하는지는 20여 년 전 헌재에서 소수의견으로 그친 백화점 버스금지 위헌 의견에서 참고할 만하다. 백화점 셔틀버스와 유통 업체, 운송 업체라는 주어를 바꿔 내용을 재구성하면 이렇다.
‘이 사업이 불공정한 방식으로 다른 이들이 영업을 못하게 방해하는 건 아니다. 즉 아무런 반사회성을 지니고 있지 않다. 다른 사업자의 경영에 영향을 미칠 수는 있지만, 이는 이들의 경쟁력 상실에서 오는 결과다. 물론, 공공성을 위해 경제행위를 제한할 수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그 부분을 보완하는 입법을 해야지 원칙적으로 사업 자체를 금지할 이유는 못 된다. 또 중소사업자의 보호도 규정된 육성책에 따라 이뤄져야지, 경쟁을 배제하거나 제한하는 특혜조치는 바람직하지 않다. 오늘날처럼 복잡하게 분업화된 사회에서 사업의 동기나 형태, 방식은 너무 다양하다. 그런데 이렇게 제한이 너무 광범위하면 공공성을 해치지 않는 것까지 막는 결과를 초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