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마치 일정한 패턴을 따라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는 사건들이 많습니다. 역사 속 대격변이나 경제적 붕괴, 사회적 변화도 그저 반복되는 ‘패턴’처럼 읽히곤 합니다. 그러나 책 <우발과 패턴>에서 지적하듯, 겉으로 드러난 규칙성 속에도 강한 우연이 존재합니다. 사건의 결과가 특정한 패턴을 보이는 것처럼 보여도, 실제로는 수많은 불확정적 요소와 우연이 얽혀 결정됩니다.
사람들은 흔히 원인을 한 가지로 단정하고, 그 원인을 해결하면 모든 문제가 사라질 것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정치적·사회적 문제를 분석할 때 특정 인물이나 집단, 한 정책, 혹은 한 사건을 모든 책임의 근원으로 몰아가는 식입니다. 그러나 이는 단순화의 함정일 뿐 아니라, 도덕적 판단을 과도하게 개입시키는 위험도 있습니다. 한 가지 원인을 악으로 규정하고 정죄하는 순간, 우리는 그 사건을 둘러싼 복잡한 맥락과 수많은 다른 요인을 놓치게 됩니다. 동시에 ‘이 한 가지를 고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는 착각에 빠지게 됩니다. 사회현상이나 역사적 사건의 구조적 이해가 어려워지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사건들은 정말로 ‘무작위적’이거나 ‘예측 불가능’한 것일까요? 흥미로운 접근은 초결정론적 관점입니다. 초결정론은 물리학적으로 모든 사건이 원인과 결과의 연쇄 속에 존재한다고 보지만, 인간의 관점에서 포착할 수 없는 미세한 요소들이 많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우리가 불확정적이라 느끼는 사건들은 사실 관찰이나 인지의 한계 때문일 수 있다는 겁니다. 즉, 사건은 이미 결정되어 있을지 몰라도, 우리는 그 복잡한 인과망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와 연결해 생각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육감’입니다. 육감은 논리적 사고로 명확히 증명되지 않지만, 경험과 관찰을 통해 뇌 속에서 쌓인 일종의 정보 집합, 즉 인간 내면의 빅데이터가 작동한 결과라고 볼 수 있습니다. 육감은 직관적이지만, 사실 논리적 계산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는 결정론적 판단입니다. 다시 말해, 논리는 육감을 과학적으로 증명한 것이고, 육감은 아직 증명되지 않은 논리라 할 수 있습니다. 이 관점에서 보면 우리가 흔히 ‘이성적’이라고 생각하는 판단조차도 결국 육감과 크게 다르지 않은 맥락에서 작동하고 있는 셈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인간의 논리나 판단이 무가치하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오히려 이런 한계를 인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건과 사회현상을 바라볼 때, 단순화된 인과관계나 한 가지 원인으로 규정하려는 충동을 경계하고, 다양한 변수와 우연의 가능성을 함께 고려하는 사고가 필요합니다. 역사적 변화나 사회적 사건을 이해하는 과정에서 ‘우발과 패턴’의 시각을 염두에 두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판단은 조금 더 성숙하고 현실에 가까워질 수 있습니다. 결국 이런 한계를 완전히 극복하기는 어렵지만, 이 시각을 마음에 두고 사고할 때 사건을 보다 섬세하게 읽어낼 수 있으며, 판단의 깊이와 현실 감각을 조금씩 키워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