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생겼어, 고양이 - 어쩌다 집사가 된 영상번역가
"어제부터 밤새도록 새끼 고양이가 우는데, 힘이 없는 게 죽을 것 같아요. 어미 고양이도 안 오고 목소리는 점점 작아져서..."
2015년 늦가을 어느 밤. 남편하고 심야 영화를 보러 집을 나섰는데, 골목에 쪼그리고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던 웬 아저씨가 우리를 보고 벌떡 일어나 한 말이다.
"네...??"
갑작스럽게 예상치 못한 얘기를 들어서 나는 무슨 상황인가 파악이 되지 않아 버퍼링이 걸린 듯 더듬거렸다. 반면, 옆에 있던 남편은 망설임 없이 아저씨가 가리킨 쪽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갔다. 어느 집 대문 안쪽으로 들어가 담벼락 아래를 살펴보던 남편이 손바닥 위에 솜털 같은 새끼 고양이를 올린 채 나왔다.
"얘가 몸이 납작해질 정도로 나무 판자 밑에 깔려 있었어. 지금 온몸이 차갑게 굳어 있네."
가까이 들여다보니, 아직 눈도 제대로 못 뜬 새끼 고양이였다. 태어난 지 일주일도 채 안 지난 듯했다. 늦가을이라 밤이면 제법 날씨가 추웠다. 그대로 밖에 두면 얼어죽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고양이는 숨을 힘겹게 내쉬며 가느다랗게 이어질 듯 끊어질 듯 "야...옹..." 하며 울었다. 남편과 나는 고양이 한 번 쳐다보고, 서로 한 번씩 쳐다보며 갈팡질팡했다. 강아지는 어릴 때부터 키워 봤지만, 고양이는 키워 본 적이 없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옆에 아저씨가 있어서 겉으로 말은 못 했지만, 어떻게 책임지려고 구조했냐며 원망의 눈빛을 남편에게 보냈다. 아저씨가 못 듣게 남편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어쩌려고 그래? 키우지도 못할 거면서."
"구조부터 하고 집에서 돌봐주다가 날씨 따뜻해지면 풀어주지, 뭐."
그때만 해도 우리는 '냥줍'이며 '길냥이'란 용어도 몰랐고, 길냥이를 집에 데려왔다가 내보내는 게 유기 행위인 줄도 몰랐다. 골목 입구 쪽에 있는 치킨집에서 평소에 길냥이를 돌봐 주던 게 떠올라, 일단 그쪽으로 갔다. 그 아저씨도 조용히 우리를 따라왔다.
"며칠 굶었나 보네. 힘이 하나도 없구먼."
치킨집 사장이 새끼 고양이를 보더니 고양이용 분유를 타서 젖병에 담아 줬다. 젖병을 물려 봤지만 우유를 제대로 삼키지 못해 콧구멍으로 흘러 나왔다. 마침 가게 앞에서 맥주를 마시고 있던 아줌마들도 옆에서 지켜보며 "아이고, 이 쬐끄만 걸 어째. 우유도 못 먹네"라며 걱정했다.
'걱정만 하지 말고, 누가 좀 데려가 주면 안 돼요?' 나는 속으로 외쳤다. 치킨집 사장이 고양이를 맡아 주지 않을까 내심 기대도 해 봤다. 그런데 이미 새끼 고양이 두 마리를 돌보고 있어서 맡아 달라는 말이 차마 안 나왔다.
그 사이에 처음에 고양이가 있는 곳을 알려줬던 아저씨는 어딘가로 사라지고 없었다. 아, 뭔가 당한 느낌. 자기가 책임지기 싫으니 우리한테 떠맡기고 사라졌구나 싶었다. 어쩔 수 없이 고양이용 분유와 젖병을 빌려서 집으로 데리고 돌아왔다. 페이스북에 새끼 고양이를 구조해 왔는데 어떻게 돌봐야 하냐고 질문을 올렸다. 금세 덧글들이 달렸다.
"페트병에 뜨거운 물을 넣고 수건으로 싸서, 옆에 놔 줘라. 체온을 올려야 한다."
"혼자 배변을 못 할 테니, 휴지로 엉덩이 부위를 살살 자극해라."
"2-3시간마다 우유를 먹여야 한다."
갑자기 너도 나도 '캣밍아웃'을 했다. 내 주변에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들이 그렇게나 많은 줄 처음 알았다. 그 뒤로도 고양이에 대해 궁금한 점이 있으면 페이스북 친구들에게 물어봤다.
고양이 카페에도 가입을 해서 이런저런 정보를 모았다. 뭐든 질문만 하면 너도 나도 바로 답을 달아 줬다. 아이 하나를 키우려면 온 동네 사람들이 함께 키워야 한다더니, 그야말로 고양이 한 마리를 다 함께 키우는 셈이었다.
며칠 정도 잘 돌봐 줬더니 고양이는 두 눈도 번쩍 뜨고 여기저기 뽈뽈거리고 돌아다닐 정도로 쌩쌩해졌다. 한 달 정도 데리고 있다가 입양 보내야지 생각하고 있었기에, 남편하고 나는 이름도 붙여 주지 않았다. 그 사이에 정 들면 안 된다며, 일부러 거리를 뒀다.
그런데 우리의 계획은 틀어졌다. 요 녀석이 새까맣게 초롱초롱 빛나는 눈으로 우리 눈을 가만히 쳐다보는 순간, 마음이 흔들렸다. 뒤뚱뒤뚱 걸어오더니 내 손가락을 어미 젖 빨듯이 쪽쪽거릴 때는 마음이 무장해제됐다.
"아, 나를 엄마로 생각하나 봐."
그 뒤로 어느 샌가 나도 모르게 '라인이'라는 이름을 지어 줬다. 차갑게 굳어 있던 그 자그마한 몸을 직접 손으로 느꼈던 남편은, 라인이가 건강하게 살아난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찼던 것 같다. 고양이를 키울 자신이 없다던 남편도 결국은 승복했다. 그렇게 우리는 얼떨결에 고양이 집사가 됐다.
고양이를 키우는 법과 관련해 정보도 모으고 책도 열심히 읽었다. 우리가 배운 내용들은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렸다. 고양이는 사람을 잘 찾지 않고 독립적이라더니, 사람만 졸졸 쫓아 다니고 방문을 닫으면 열어 달라고 난리를 쳤다.
고양이는 대소변을 잘 가리고 깨끗하다더니 여기저기 오줌 테러도 했다. 새끼 때는 세상에 둘도 없는 순진무구한 눈빛으로 우릴 보더니, 갈수록 영악해졌다. 라인이가 우리를 길들이고 조종하는 것 같다.
"내 마음을 알아맞혀 봐. 내가 뭘 좋아하는지, 뭘 싫어하는지, 뭐가 불만인지 집사 너희가 알아서 파악하고 나한테 맞춰 봐~."
라인이를 억지로 끌어안으려거나 하지 않고, 먼저 다가오길 가만히 기다린다. 하루라도 똥오줌을 싸지 않고 거르면 어디가 아픈 건 아닌지 안절부절이다. 온갖 간식을 사다 바치고, 시시때때로 장난감으로 놀아 드리기도 한다. 부당한 관계인 것 같은데, 우리는 라인이만 쳐다봐도 행복하다며 떠받들고 산다. 속도 없이.
지금도, 불쑥 나타났다가 홀연히 사라진 그 아저씨 정체가 궁금하다. 우리에게 라인이를 점지해 준 '삼신 할배'가 아니었을까. 참으로 기묘한 묘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