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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함혜숙 Jan 12. 2022

유효 기간이 없는 공부의 즐거움

서평 <카페에서 공부하는 할머니> : 무쓸모 공부의 필요성을 역설하다


카페에서 공부하는 할머니, 심혜경 저(더퀘스트)


할머니라기보다는 '영원한 언니'라고 해야 어울릴 법한 심혜경 쌤의 책 <카페에서 공부하는 할머니>.


김혼비 작가도 추천사에서 말했듯이, 내 눈에도 심혜경 쌤은

"내가 봐온 10년 동안 늘 무언가를 배우는 신기한 사람"이다.

더 신기한 건 공부를 '정말로' - '재미있게' - '즐긴다'는 것이다.


나는 영상번역 강의를 하면서 수강생들한테 여러 가지 공부법을 제시하는데 

처음에는 미드나 영화를 보면서 일단 재미있게 공부하라고 조언한다. 

하지만 번역가로 데뷔를 하려면 '재미'로만 공부할 수 없다고 덧붙인다. 

어느 정도 '고통'이 따라야 실력이 오른다고.


번역가를 직업으로 삼겠다는 사람들에게 재미로, 취미로 공부하라고 말할 수가 없다. 

하지만 정작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번역 공부에 즐겁게 빠져들라'는 거다.


번역 공부라고 하면 다들 책상 앞에서 하는 '외국어 공부'를 먼저 떠올린다. 

하지만 번역과 상관없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고 

다른 분야 지식에도 관심을 갖는 게 더 좋다고 믿는다. 

어학 연수를 위한 해외 여행보다는 순수한 여행을 많이 다니라고 얘기해 주고 싶다.


그런데 '꿈=직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당장 눈앞에 보장된 성과가 보이지 않으면

 '쓸데없는 공부'라고 치부한다.

영상번역 강의 중에 출판번역가나 작가, 편집자 등 다른 분야 전문가들을 초빙해서 

얘기를 듣는 시간을 마련하기도 하는데, 

간혹 '영상번역 강의인데 왜 다른 분야 이야기를 들어야 하나?'라고 반문하는 사람도 있었다.



이 책을 집어든 사람들에게 공부는 뜨겁게 불타올라 빠르게 연소시켜야 할 학생들의 것과 달라야 한다. 지속적으로 몰입할 수 있는 일로 오래 성취감을 얻는 것이 목표니까. 오래 버틸 수 있는 공부를 시작해야 하는 때인 것이다. 밤을 활활 태우며 꼿꼿이 앉아 새벽을 맞이하는 자세로는 오래 버티지 못한다.
- <카페에서 일하는 할머니> 서문에서



번역가 지망생들의 공부 과정을 지켜보면 각자 타임라인을 정해 놓고 전력 질주를 한다.

예를 들어, "6개월 뒤에 번역가로 데뷔하겠다."라는 목표를 세우고

6개월 동안 매일 밤낮없이 공부하는 격이다.


그렇게 6개월 동안 공부 열정을 불태우고 나면

하얗게 재처럼 변해 계속 앞으로 나아갈 동력을 잃어버린다.

번역가로 데뷔를 못 하면 그들의 공부는 거기서 중단된다.

공부에 유효 기간이 있는 거다.


정해 둔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면 좌절과 상실이 느껴지는 게 당연하지만, 

미리 시간을 정해 두고 미션 깨듯이 앞만 보고 달려가는 공부는... 지속되기 힘들다.

당장은 무쓸모해 보이지만, 오래도록 몰입하고 즐길 수 있는 공부가 우리 모두에게 시급하다.


예전에 <읽기의 말들>을 읽을 때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었다.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잉여의 책읽기'야말로 독서의 최고봉이다. 순수한 유희와 쾌락을 위한 독서가 사무치게 그리운 시대다.
-<읽기의 말들> 중에서


책을 읽을 때도 배경지식을 쌓는 수단으로만 생각하다가

'순수한 독서의 맛'을 느껴 보고 싶다는 욕구가 치솟았던 게 기억난다.


<카페에서 공부하는 할머니>는 저자의 말처럼, 

유학이나 취업을 준비하거나 공부를 직업적 성과로 연결하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이 책의 내용이 그다지 와닿지 않을 수 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평생 공부를 재미로 즐긴 심혜경 쌤은

10년 넘게 번역가로 활동하며 '덕업일치'의 삶을 살고 있다.

그게 이 책의 함정이라면 함정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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