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햄통 Dec 08. 2019

나는 오늘도 가스를 사러 간다

중국의 공과금 선불제 시스템

서울에 있는 오빠한테 말했다.

“가스가 떨어져서 뜨거운 물이 안 나와. 가스 사러 가려고.”

“뭐?? 가스를 어떻게 사와???”

오빠는 가스통을 낑낑 들쳐 업고 끌고 오는 내 모습을 상상했다고 한다.

내가 옷을 주섬주섬 챙겨 입고 나간 곳은 은행이었다. 가스가 끊기면. 가스보일러가 작동을 하지 않아 뜨거운 물이 안 나오고 가스레인지를 쓸 수 없게 된다. 뭐 당연한 얘기 같지만 사실 한국에서는 어떤 결과에 어떤 원천이 매칭되는지 잘 몰랐다. 아니, 생각을 하지 않고 살았다. 뭐가 됐든 다 쓸만큼 쓰고 내면 되니까.

서울에서는 관리비가 후불제이지만 중국의 수도, 전기, 가스는 선불제이고 충전식이다. 심지어 중수도 그렇다. 잠깐! 중수란 뭔가요? 중수란 상수도 아니고 하수도 아닌, 말그대로 그 중간쯤 있는 물이다. 변기물에 사용된다. 중수가 다 떨어지면 변기가 사막이 됨.

수많은 충전 카드: (왼쪽 위 부터 시계방향으로) 중수 카드, 상수 카드, 전기 카드, 가스 카드

공과금을 어디서 어떻게 지불하는지는 집집마다 다른데 우리 집을 기준으로 보자면 각각 이렇다.


#购水 상수는 정기적으로 사람이 체크를 하러 온다. 부엌에 있는 계량기를 확인하고 단말기 기기로 영수증을 뽑아주면 그 금액을 알리페이로 지불한다.

플러쉬를 눌러도 변기 물이 갑자기 안 나오면 중수가 다 떨어진 거다. 관리사무소에 중수 충전 카드를 들고 간다. 충전 완료된 카드를 들고 다시 집에 쫑쫑 와서 화장실에 있는 중수 계량기에 삽입한다. 삽입과 동시에 계량기 수치가 오르고 변기에 물 차오르는 소리가 꾸르르들린다. 거참 묘하게 신기함.

#购电 전기는 복도에 따로 계량기가 모여 있는 방에서 자기 집 사용량을 확인할 수 있다. 갑자기 집에 있다가 모든 전기가 차단 되면, 혹은 집에 들어왔는데 불이 켜지지 않으면 휴대폰을 들고 그 계량기 집합소로 달려간다. Alipay로 충전을 한 뒤 충전 금액이 계량기에 짜잔 나타나는 걸 확인하고, 내려가 있는 있는 두꺼비 집을 다시 올려 준다.

철문이 바로 전기 계량기가 집합해 있는 방
어서오시오...

Alipay를 통해 돈을 내는 것은 아무리 해도 매우 신기한 일이다. 나는 그냥 핸드폰으로 꿈작꿈작 조작을 했을 뿐인데 이 신호와 메세지가 공중 어디에서 어떻게 전달이 되었는지, 중국 이 엄청난 인구의 사람들이 동시에 Alipay로 전기를 샀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2분 만에 계량기에 찰칵, 내가 핸드폰으로 입력한 딱 그만큼의 수치가 입력되는 것을 보면. 모든 신문물은 항상 계속 신기하구나, 싶다.

알리페이에서 각종 공과금을 바로 낼 수 있는 페이지. 아주 편리하기 짝이 없습니다
돈이 들어갔습니다 짜잔

그런데 휴대폰이, 모바일 페이가, 비행기가 얼마나 신통방통한지와 별개로 우리는 이러한 것들에 너무나 익숙해져 있다. 그래서 Alipay로 2분 만에 지불 할 수 없는 상황에 부딪치면 폐부로부터 무한한 짜증이 솟구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은행에 가스를 사러 갔다.

가스를 사러 왔습니다

#购气 은행에 가면 가스, 수도 등 공과금을 충전할 수 있는 기계가 따로 있는데 생각보다 간편하게 충전을 할 수 있다. 은행만 가깝다면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막 씻으려고 화장실에 들어갔는데 뜨거운 물이 안 나온다든지 밥 할 것을 다 준비해놨는데 가스가 안 나온다든지 하면 이 나라가 됐든 시스템이 됐든 뭐든 욕 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공과금 지불 전용 신기한 기계

중국에서 살다보면 어떤 영역은 발전 속도가 로케트인데 어떤 영역은 옛날 그대로 구닥다리라는 걸 체험한다. 옛것과 미래가 공존하는 시대초월적인 그참 희한한 느낌...

그래도 이런 중국의 시대초월적 발전양상과 선불제 시스템은 공기와도 같던 물, 전기, 가스의 소중함을 깨닫게 해주는 체험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장점이 있다. 갑자기 물이 안 나오면 평소 잘 안 하는 중국 욕이 막 터져 나오다가도, 물이 콸콸 나와주면 그 얼마나 감사하고 소중한지. 아프리카에, 오지에, 사막에, 물이 없는 지역은 얼마나 살기가 힘들고 불편할까. 그런 생각도 하고 막.

몸의 일부가 다쳤을 때서야 그 곳이 그 기능을 하고 있음을 인식하는 것처럼, 그게 내 생활에 얼마나 자연스럽지만 중요한 일인지 알게 되는 것처럼. 편한 것에는 감사할 줄 모르고 불편한 것에는 화가 솟구치는 단순하게 이분법적이고 이기적인 인간임을 깨닫게 해주는

중국의 관리비 선불제 시스템.

맛있고 뜨끈~한 국물을 먹으면 화도 마음도 다 풀리는 것입니다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