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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그냥하뮤

생음악 기침

by 하뮤하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나는 쿨럭대고 있다. 말하다가 쿨럭쿨럭캑캑되면 어머 어쩌면 나 병약해 보일지도. 공기 좋은 곳으로 요양 온 얼굴 새하얀 서울 계집애처럼 보일지도(배경은 1960년대). 하지만 지금은 2025년,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한 팬데믹이 긁고 지나간 시대. 사람들은 기침을 하는 사람을 매우 혐오할지도 모른다. 야속하게도 2월 말부터 잔기침은 내 일상의 자연스러운 친구가 되었다. 쿨럭쿨럭 쿱쿱하는 기침하는 소리가 이제 디폴트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병원도 진짜 많이 다녔다. 약도 열심히 먹었다. 목에 좋다는 도라지청도 사서 큰 숟가락으로 퍼먹고, 용각산인가 뭔가 하는 맛없는 하얀 분말도 목구멍에 털어 넣었다.


2월 말이었나 3월 초였나? 머리를 감고 말린다고 말렸는데 살짝 젖어있어서 그랬나, 매일 집에만 처박혀있다가 홍대로 나가 사람을 만난 게 문제였나. 아니면 목이 파여있는 스웨터가 문제였나. 볼일을 보고 만화책을 빌려 돌아오는 길, 하늘에서는 눈송이가 떨어졌다. 날씨 자체는 별로 춥지도 않았다. 며칠째 봄날씨가 이어지고 있던 때였으니까. 아무튼 목이 좀 칼칼하더니 감기가 왔다. 그것도 예의 없이 새벽부터, 감기야 철철이 행사처럼 머물다 지나가는 몸이라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웬걸 감기는 떨어졌어도 기침은 낫지 않는 것이었다.


때마침 못하는 노래실력으로도 라이브를 시작하게 된 3월부터 지금까지 쿨럭콜록하며 부상투혼으로 노래하는 나 자신. 나는 노래하는 자의 목컨디션 관리는 대체 어떻게 하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과 절망을 품고 라이브클럽으로 향하곤 했다. 기타 치는 자로서 보컬 뒤에서 기타를 치거나 트리오, 퀄텟으로는 작은 펍이나 클럽에서 긱을 하고는 있지만 남들 앞에서 내가 노래를 부를 거라는 생각은 별로 못해봤다. 펜데믹시절 너무 심심해서 만들던 음원에 적당한 가수를 못 찾아서 대충 불러 넣은 것을 시작으로 대략 싱어송라이터 같은 게 되었지만 어디까지나 방구석 가수였다. 그러다가 깡을 좀 길러보자는 생각으로 쌓아둔 노래들로 라이브도 조금씩 하게 됐다. 원체 가창력으로 승부할 수 있는 실력도 없는 데다 보컬의 기량으로 사람들에게 강 같은 감동을 주겠다는 욕심도 없었지만 노래하다가 시도 때도 없이 터져 나오는 기침만은 상당히 곤란하다.


라이브 하다 쿨럭쿨럭캑캑되면 어머 나 병약한 아티스트 같을지도. 공기 좋은 곳으로 요양 왔지만 입에는 파이프를 문 빵모자를 쓴 섬세한 예술가 같을지도(배경은 1960년대). 하지만 지금은 2025년,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한 팬데믹이 쓸고 간 자리, 우리의 생존자들은 기침을 하는 가수를 매우 혐오할지도 모른다. 기침을 있는 힘껏 참았다가 주로 간주 부분에서 기타를 치는 손가락만 놀리면서 기침을 토해내는데 이때 타이밍을 기가 막히게 잘 맞춰야 한다. 고개를 힘껏 돌려 피하지 못하면 쿨럭하고 터져 나오는 소리가 마이크를 타고 넓고 크게 울려 퍼지기 때문이다. 거기에 리버브라도 걸려있으면 공간감 있는 기침소리를 만천하에 퍼지게 할 수 있다. 여보세요. 거기 누구 없소. 모두들 제 기침소리를 들으세요.


그래서 나는 존경하게 됐다. 목소리가 악기인 사람들을. 나약한 인간의 육신을 어떻게 잘 조절하며 일정한 퀄리티로 생음악을 들려주는지. 솔직히 현재의 과학(의학) 기술로는 감기나 독감바이러스 같은 건 인간이 어떻게 해볼 수 없는 불가항력의 영역이 아닌가. 아무도 귀 기울여 듣지 않는 거리의 버스커부터 지역의 합창단, 또 글로벌 팬덤이 형성된 가수까지 점점이 펼쳐져있는 노래 부르는 자들의 스펙트럼 안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신체의 악조건과 싸우는 모든 이들에게 무한한 존경과 사랑을 보낸다.


그런의미로 어제 발매된 고닭의 폴카닷츠 앤 선빔 뮤직비디오를 감상하자!

https://youtu.be/eSVc38WwPAI?si=16XWXnGMwhsPxI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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