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우울할 때 메트로놈을 들어

by 하뮤하뮤

* 제목은 천계영 작가님의 유명한 순정만화 대사 ‘나는 슬플 때 힙합을 춰’를 오마쥬 해봤다.


메트로놈은 나와 친하지 않았다. 뭐 지금도 딱히 친하진 않다. 그래도 아무 생각 없이 멍 때리고 싶은 날 유난히 메트로놈 소리가 위안이 될 때가 있다. 규칙적으로 스윙하는 소리. 왼쪽으로 갔다가 오른쪽으로 다시 돌아오는 리듬. 잠시 떠올랐다가 가라앉는 숨소리.

생각이 자신의 꼬리를 물고 빙글빙글 돌아가는 것을 막을 수 없을 때 메트로놈을 추천한다.


앞서 말했듯이 내겐 메트로놈이 있다. 추가 양옆으로 왔다 갔다 하는 아날로그식 메트로놈. 검은색과 베이지색으로 되어있다. 예전에 선물 받은 건데 처음엔 큰 관심 없었다가 지금은 꽤 좋아하는 물건이 됐다. 어렸을 때 피아노학원에서 보던 아날로그식 메트로놈, 선생님이 악보를 마른 손날로 지그시 누르고 뭉툭한 연필을 들고 악상기호를 적어주면 연필과 종이에서 사각사각하는 소리가 났다. 메트로놈을 작동시키고 세 번 더 연습하라는 말과 함께 다른 방으로 가시면 나는 높은 피아노의자에 앉아 다리를 꼬아 흔들며 딴생각을 했다. 악보는 어려웠고 메트로놈에 맞추는 방법은 아예 모르겠고 누워서 코파며 만화책보고 싶은 마음뿐. 피아노에 큰 흥미를 못 느껴서 길게 배우진 못했지만 이따금씩 그때 오후의 먼지와 딱딱거리며 스윙하는 메트로놈소리가 생각난다.


악기를 연주하거나 노래를 하려면 메트로놈과 별수 없이 친해져야 한다. 내 손과 성대의 움직임을 메트로놈이 갔다가 돌아오는 타이밍에 맞추는 일을 수고롭게 하지 않으면 안정된 연주를 하기 힘들다. 하지만 나는 갈지자로 제멋대로 걷고 싶을 뿐 피도 눈물도 없이 매정한 메트로놈의 팔짱을 끼고 정박으로 걷고 싶지 않다. 그렇지만 별수 없다. 메트로놈과 친해져야 한다. 그래도 메트로놈에게 밥을 주기 위해 태엽을 감는 건 꽤 좋아한다. 동력을 주기 위해 손가락에 태엽 손잡이를 감아쥐고 끼릭끼릭 더 이상 돌아갈 수 없을 때까지 이르면 작은 성취감을 느낄 수 있다. 추의 끝을 눌러 뺀 후 살짝 놓으면 추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나는 잠시 책상에 턱을 괴고 눈으로 왼쪽-오른쪽 추의 움직임을 좇으며 단순한 소리와 박자가 주는 편안함에 빠져든다.


아무쪼록 나는 추천한다. 갔다가 돌아오는 그 리듬, 피도 눈물도 없이 매정하게 정확한 그 리듬에 오늘은 잠시 마음을 얹어보자. 렛츠 스윙 투게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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