떡상 와이파이를 찾아 떠난 강원도

26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by 하뮤하뮤

넓은 통창으로 자그마한 해변과 짙푸른 겨울바다가 고요하게 펼쳐져있다. 굳은 등허리를 알맞게 마사지해 주는 안락한 안마의자에 앉아 '0원으로 사는 삶'이라는 책을 읽는 아이러니한 상황. 작가가 돈이 없는 삶을 살기 위해 소비와 편리함에 맞서 고군분투하며 자유로움을 얻으려고 하는 장을 읽으며 거의 2주 치가 되는 생활비(요샌 하루에 만 원도 안 쓰는 것 같긴 하다)를 숙박비로 사용한 내가 웃겨서 크게 웃었다(물론 다른 사람들이 있으므로 무음으로)


요새 짧은 에이아이 동영상으로 수익창출을 꿈꾸고 있는 친구가 이 숙소의 와이파이를 사용해서 콘텐츠를 업로드하면 콘텐츠가 떡상한다는 이상한 미신 같은 소리로 나를 꾀어낸 것은 얼마 전. 근처에 바다가 있다는 말에 아무 생각 없이 따라나섰다. 이곳은 워케이션의 성지다. 그래서 그 와이파이가 영험했느냐? 그건 아직 모르겠다. 하지만 믿음과 희망과 꾸준함이 있으면 원하는 바도 언젠가 따라오리라 대략 생각하는 나로서는 그 콘텐츠가 곧 떡상하기를 희망해 본다.


나는 책을 읽다가 살짝 어둑어둑해지는 참에 해변을 따라 걷기로 했다. 인적 없는 강원도의 해변, 추운 색의 파도가 밀려와서 축축한 해변의 모래에 닿아 하얗게 부서진다.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 콧구멍을 벌렁이며 짠내를 몸에 가득 담아본다. 조개껍데기와 부서져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불가사리의 사체, 난해한 그림 같은 갈매기들의 발자국을 따라 걷다 보니 군사시설이 보인다. 산책로를 따라 한 남자가 걸어온다. 땅거미가 거의 지고 있는 참이라 약간의 경계모드를 장착한 후 씩씩하게 걷는데 남자 뒤로 살랑살랑하고 커다란 베이지색 뭔가가 따라온다, 앗 이건 크고 귀여운 것. 그 뒤로 팔랑팔랑하고 작은 베이지색 뭔가가 따라온다. 앗 이건 작고 귀여운 것! 아저씨를 쭐래 쭐래 따라오는 건 개렸다. 아니, 그 뒤에는 새끼 고양이? 의젓하게 꼬리를 흔들며 똑바로 걷는 개와는 달리 새끼고양이는 잔망스럽고 나풀대는 몸짓으로 수풀 속에 들어갔다가 모래를 파는 둥 아주 산만하다.


"안녕하세요." 나는 귀여움에 한없이 높이 올라가는 목소리를 눌러 짐짓 차분한 목소리로 인사를 한다. 같이 산책하시는 거예요?라는 내 말에 강아지가 어느덧 내 옆으로 와 다리에 몸을 비빈다. 앗 착하기도 하지. 나는 정신없이 강아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대화를 이어나갔다. "고양이도 같이 산책을 하나요?" 아저씨는 자랑스러운 목소리로 "네, 같이 산책하는 중입니다. 강아지 이름은 바다 고양이 이름은 가을이에요. 둘이 아주 죽고 못살아요. 맨날 붙어있어요."

"우와. 진짜 신기하네요." 나는 대답했다. 아저씨는 계속 말씀하셨다. "가을이가 어느 날부터 들어와 같이 살게 되었어요. 바다는 길고양이한테 많이 맞고 다녔는데 요즘에는 안 맞는 것 같더라고요."

그 와중에 모래를 파며 이동하던 고양이는 얌전하게 모래에 큰일을 봤다. 몇 가지 정보를 더 말씀하신 선생님은 계속 걸어가셨고 바다는 그 뒤를 따라가고 가을이는 그쪽을 바라보며 계속해서 큰일을 봤다. "선생님 지금 가을이 똥 싸는데요?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알아서 따라올 거예요."

아하. 가을이를 보니 볼일을 다 보고 모래를 파묻고 있었다.

"맨날 저렇게 모래를 파더라고요. 왜 그러는지 모르겠네."

"고양이는 모래에 볼일을 보고 모래를 묻는 습성이 있어요."

"그렇군요, 제가 고양이를 잘 몰라서."라고 무심하게 말하며 가을이를 바라보는 아저씨의 눈이 초승달처럼 가늘어졌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바다야 가을아, 아저씨와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동물농장톤으로)~


저녁으로는 친구와 근처의 순두부집에 가서 빨간 순두부를 먹고 배를 두드리며 2차로 근처의 술집을 갔다. 무겁게 깔린 어둠에 조도가 약한 몇 개 안 되는 가로등 사이로 오두막 같은 것이 서있다. 빠지면 큰일 나겠다 싶은 농수로를 조심히 피해 빌린 차를 세웠다.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잠시 하늘을 바라봤다. 별 본지가 언제인가. 도시에는 별빛보다 밝은 조명이 많아서 한밤중에도 별을 보기란 쉽지가 않다. 강원도의 밤하늘은 별이 총총했다. 오두막으로 다가가 문을 밀고 들어갔다. 말이 없어 보이는 주인장과 주량을 자랑하듯 빈 술병을 주욱 늘어놓은 손님 1, 택시를 부르고 귀가를 준비하는 손님 2가 있었다. 작은 오두막에 솔방울과 초로 장식해 놓은 실내에 다양한 우리 술이 준비되어 있었다. 전체적으로 알코올도수가 높은 주종이 주를 이뤄서 그중 가장 도수가 낮은 토종 애플사이다를 하나 시키고 안주로는 김부각을 시켰다. 좁은 공간에서 낮은 조도와 다소 숨 막히는 정적틈으로 빠르게 한잔하면서 겨울의 정취를 느끼고 숙소로 돌아갔다.


잠자리가 바뀌어서 잠 못 자는 밤의 터널을 지나 살짝 잠들었다 눈을 뜨니 아침 7시 반 동해바다에는 빨간 해가 뿅 하고 떠올라 있었다. 눈이 멀 것 같은 해를 잠시 바라보다 이게 x만 원짜리 일출(은 한참 지난 시간 이긴 하지만)이구나 잠시 가성비를 생각하다가 역시 삶은 멋진 것이 아니냐는 셀프가스라이팅을 하다가 뜬금없이 26년에는 좀 더 자연을 가까이하는 한 해가 되어야지 라는 결심을 했다. 이 여행은 한 달 전인 것 같긴 한데 마침 25년의 마지막인 오늘, 그곳에서 읽던 책 두 권과 '바다와 가을(사실 이름이 정확하지는 않다)'이와 동해바다의 일출(비스므레한것)과 총총하던 밤하늘의 별을 떠올리며 26년에 새로운 기운을 불어넣어 본다. 모두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매거진의 이전글요즘 세상에 누가 라디오를 들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