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에 한 개씩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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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시작 시리즈에 이어 이번엔 지속성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지속 시리즈에서 이야기하고 싶은 내용은 결심한 바를 시작하긴 했는데 꾸준히 하지 못하고 흐지부지되거나 작심삼일로 끝내지 않기 위한 방법들이다. 초기 열정만 있고 뒤로 갈수록 무기력과 게으름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나도 무언가를 꾸준히 해낼 수 있었던 방법들이다.
나는 하고 싶은 일이 많다. 배우고 싶은 것들, 시도하고 싶은 것들, 경험해보고 싶은 것들이 늘 메모장에 적혀 있다. 문제는 하고 싶다는 의욕은 있는데 꾸준함이 없다. 그래서 운동이나 외국어 공부, 글쓰기 등 꾸준함이 필요한 것들이 쭉 이어져온 적이 없었다. 누가 억지로 시킨 것도 아니고, 내가 하고 싶어서 시작한 것들인데도 지속할 수가 없었다. 시작과 멈춤이 반복될수록 스스로 나는 의지도 없고 게으른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좌절의 경험만 쌓여갔다. 어느 날 자신에게 물었다.
‘나는 왜 이것들을 꾸준히 하는 게 힘들까?’
그런 나도 꾸준히 하는 것들이 있었다. 밥 먹을 때 숟가락 들기, 양치질하기, 손톱 깎기. 생존을 위해서 당연한 것들이지만 이 행동들의 공통점은 애쓰지 않아도 저절로 된다는 것이다. 밥을 먹기 위해 숟가락을 쥐고 드는 행위는 세상에 태어나서 나 혼자 한 게 아니다. 누군가 나에게 방법을 가르쳐주고 익숙해질 때까지 수없이 반복했다.
처음엔 손과 팔의 근육이 내 마음대로 움직여주지 않아 숟가락을 떨어트리기도 하고, 엉뚱한 모양을 잡았을 것이다. 숟가락으로 밥을 떠서 입까지 갖다 대는 데에도 부들부들 손이 떨려서 밥알이 떨어져서 다시 주워 먹었을 것이다.
이런 경험은 나뿐만 아니라 인간이라면 누구나 겪는 경험이다. 그로부터 수개월, 수년이 지나면 숟가락을 쥐는 방법론 같은 건 의식하지 않은 채 같이 밥을 먹는 사람과 대화를 하며 밥을 먹을 수 있을 정도로 몸에 배어버린다. 습관이 된 것이다. 머리로 의식하지 않아도 몸이 기억할 정도로 숟가락질을 반복한 결과다.
그렇다면 다른 습관들도 똑같이 만들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한 번에 하나씩 습관화하기로 했다. 아직 몸에 베지 않은 것들을 한 번에 하려고 하니 힘이 든 것이었다. 아기가 숟가락질을 처음 배울 때도 한 번에 숟가락과 젓가락을 쓰라고 배우지 않는다. 보통 숟가락 하나만 쥐어주고 밥만 먹는 연습을 시키면서 젓가락질이 필요한 반찬은 보호자가 숟가락 위에 얹어준다. 숟가락질이 익숙해지고 나면 그제야 젓가락질을 배우는 식이다.
지금 내가 습관을 유지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우선 습관화하고 싶은 목록을 쭉 적은 후 첫 번째 항목을 습관화하고, 첫 번째 항목이 습관화가 되면 두 번째로 옮겨가는 식이다. 이 방법으로 운동, 독서, 글쓰기 이 세 가지는 매일 하는 습관으로 자리 잡았다. 현재 이 세 가지는 습관이 되었기 때문에 시작하기 위해 애쓰지 않아도 몸이 기억하고 자연스럽게 움직인다.
저녁 7시 30분쯤 되면 하던 일을 마치고 방바닥의 먼지를 닦고 운동 매트를 편다. 8시부터 시작하는 운동을 위한 준비다. 습관이 되면 운동이 하기 싫어서 괴로워하거나 할까 말까 고민하는 일이 없다. 그냥 하는 거다. 당연히 이 습관을 위해 저녁 일정은 되도록 잡지 않는다. 이 습관이 잡히기까지 3개월 정도가 걸렸다. 3개월까지는 미루고 싶은 마음이 가끔 고개를 내밀 때도 있었지만 그런 날은 매트 위에서 스트레칭만 하는 걸로 끝낼 때도 있었다.
중요한 건 운동을 얼마나 격하게, 오래 하느냐가 아니라 매일 습관이 될 수 있게 하느냐다. 운동이 습관이 될 때까지는 다른 걸 습관화하려고 애쓰지 않았다. 매일 운동을 하기 위해 쓰는 에너지가 이미 컸기 때문이다. 처음 운동 습관을 들일 때 운동 시간은 25분이었다. 25분 운동이 익숙해지면 5분, 10분씩 늘려갔고 지금은 운동시간이 50분까지 늘었다. 운동 시간이 길다고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니지만 그만큼 내 체력이 늘고 운동에 대한 재미를 느꼈다는 증거다.
운동처럼 책을 읽는 것을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나도 책을 좋아하지만 읽고 싶지 않을 때가 있다. 하지만 그래봤자 일주일이다. 일단 책을 펴서 서문이나 프롤로그를 읽으면 그다음은 문제없이 잘 읽힌다(내용이 어려운 서적은 빼고). 나는 독서를 습관화하기 위해 도서관을 이용했다. 책에 많은 지출을 하기가 부담스러운 것도 있었지만 책을 사서 읽으면 책장에 꽂아두고 읽지 않은 경우가 있었다. 언젠가 읽으면 된다는 생각으로 먼지가 쌓이게 두곤 했다. 하지만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면 2주 후에 다시 반납을 해야 하기 때문에 반납일에 맞춰 빌린 책들을 읽게 된다. 읽기 싫을 때도 도서관에 왔다 갔다 한 시간이 아까워서라고 한 권은 읽게 된다.
학생 때 숙제를 할 때나 회사에서 일을 할 때처럼 책을 읽을 때도 마감일이 있다는 건 좋은 동력이 되어 준다. 도서관 반납일 덕분에 독서습관을 만드는 건 어렵지 않았다. 책을 사서 읽는 사람은 독서모임이나 서평처럼 마감이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도 도움이 된다. 이제 외출을 하면 무조건 책을 1권씩 챙기게 되고, 1박 이상의 여행을 갈 때는 2권을 챙기는 경우도 있다. 독서 습관이 잡힌 지금은 한 달에 평균 13-15권 정도의 책을 읽는다.
가장 최근에 습관을 들이고 있는 것은 글쓰기이다. 글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막연히 생각하기만 1n 년이 되었는데도 나는 20대 후반까지 아무런 글도 쓰지 않았다. 기껏해야 인스타에 몇 자 끄적이는 게 전부였다. 이대론 안된다! 한창 기록에 대한 책을 읽고 있을 때 책 <일놀놀일>에서 꾸준한 ‘긴’ 글쓰기를 위한 ‘목요일의 글쓰기’ 모임을 하는 것을 보고 당장 실행에 옮겼다. 지인 3명을 모아 나까지 4명이서 목요일의 글쓰기를 시작했다. 매주 목요일 각자 1편의 글을 써서 카톡방에 업로드를 하는 것이다. 처음 한 달 정도는 글을 쥐어짜는 느낌으로 썼다가, 3개월이 지나니 주 1회 글쓰기가 수월해졌다. 목요일이 아닌 날에도 글을 쓰고 싶었을 정도였다.
이 욕구는 브런치 작가 신청으로 이어졌고, 지금은 거의 매일 글을 쓴다. 자기계발이나 루틴, 동기부여에 관한 글은 주로 브런치에 올리고 그와 상관없이 내가 쓰고 싶은 글은 블로그에 올린다. 나는 이제 매일 아침 7-9시 사이에 글을 쓰는 사람이 됐다. 글이 재미가 없거나 형편없어도 일단 쓴다. 습관이란 그런 것이다. 숟가락질을 꼭 훌륭하게 해낼 필요는 없다. 매 끼마다 완벽하고 깔끔한 숟가락질을 구사할 필요도 없고 그럴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다른 일상의 습관도 똑같다.
이제 습관화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지금 내가 유지하는 습관들이 힘들진 않은지, 새로운 걸 습관화할 에너지가 내 안에 남아 있는지를 먼저 살핀다. 다른 습관들이 모두 자리를 잡았고 그 일을 위해 애쓰고 있지 않다면 새로운 습관을 만들어도 괜찮다는 뜻이다. 지금 읽고 있는 책 <간단한 습관이 끝까지 간다>에 이런 말이 나온다.
“지속적이니 영속적이니 하니 왠지 거창한 느낌이지만 사실 대단하다거나 별다른 말이 아니다. 사고와 이성과 행동이라는 양식을 그냥 습관화하는 것이다. 일상화하는 것뿐이다. 일이나 인생을 성공으로 이끄는 데 특별한 재능이나 센스 따윈 전혀 필요 없다.”
무언가를 수년, 수십 년 꾸준히 하면 그게 대단한 거 아닌가? 나는 운동이나 독서를 몇 개월 꾸준히 시작했을 때 이미 주변 사람들로부터 대단하다는 식의 이야기를 여러 번 들었다. 위에 쓴 글을 읽으면 알겠지만 실은 대단한 게 아니다. “그냥” 습관화하는 것뿐이다. 다만 나는 하나씩 습관화해 왔고 그게 여러 개 쌓였을 뿐이다. 무언가를 ‘밥 먹듯이’한다는 말처럼 여러 번 반복하면 그게 습관이 되고, 습관들이 모여 하루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