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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묭 Jul 14. 2024

아토피 일기1-아토피와의 질긴 인연

 "되도록 스트레스 받지 마시고요, 처방해 준 약 우선 삼일 먹어볼게요."


 진물이 펑펑 나는 얼굴로 병원 의자에 앉아 멍하니 의사 선생님의 말을 듣고 있다. 듣고 있으나 새겨듣지 않는다. 얼굴이 염증으로 뒤덮일 때마다 1년에 두세 번씩 보는 의사 선생님도 다소 기계적으로 말을 내뱉는다. 30분을 기다리고 3분 만에 진료를 받고 처방전을 받아 병원을 나온다. 스트레스를 받아서 병원에 왔는데 스트레스를 받지 말라는 말은 20년 가까이 들어도 어렵다. 방법을 모르겠다.


 소아아토피로 시작한 아토피와의 질긴 인연은 아직도 사이좋게 이어오고 있다. 4살 때, 내 다리에 붉은 발진이 생겨 긁는 것을 보고 부모님은 나를 병원에 데려가셨다. 처음에는 습진이라고 했다. 병원에서 처방해 준 연고를 밤낮으로 열심히 먹이고 발라주었다. 며칠이 지나면 가라앉는 듯싶었지만 약 복용을 멈추면 다시 발진이 올라왔다. 다리를 타고 점점 위로 올라온 발진과 가려움은 얼굴까지 뒤덮었다.


 초등학생 때는 아토피 때문에 눈이 퉁퉁 부어 쌍꺼풀이 사라질 정도였다. 눈가와 입가는 멍이 든 것처럼 검게 부르텄고, 늘 각질을 달고 살았다. 입가와 귓불이 찢어져 물이 닿을 때마다 쓰렸다. 밥을 먹거나 웃을 때 찢어진 입가가 벌어져 피가 나는 건 일상이었다. 잠을 자다가 긁으면서 깨면 엄마가 얼음주머니를 가려운 부위에 대주셨다. 나는 졸면서 긁고, 엄마도 같이 졸았다.


 당시에는 아토피에 대한 명확한 치료법이 없어(안타깝게도 아직도 개발 중이다) 병원에서 처방해 주는 스테로이드나 민간요법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아토피에 대해 좋다는 치료법은 다 해본 것 같다. 생 알로에로 팩 하기(알로에 독성 때문에 더 심해졌다), 식초 섞은 물 바르기, 진흙팩하기, 황토물로 목욕하기, 효소 찜질, 뜸 뜨기 등등 기억이 안 날 정도로 안 해본 게 없다. 대부분의 민간요법이라는 치료법은 염증이 난 피부 위에 무언가로 소독한다는 개념이었다. 당연히 악 소리 나오게 쓰라린 고통에 나는 자주 울었다.


 당시 농사를 하시던 할머니는 밭을 오고 가는 도중에 꼭 산에 올라가 약초 뿌리를 캐오셨다. 그게 무슨 나무의 뿌리인지, 정확히 어떤 효능이 있는지는 아직도 모른다. 할아버지의 경운기에 약초 뿌리를 가득 싣고 돌아온 날이면 할머니 집에서는 거실과 안방까지 약초 달이는 냄새가 났다. 씁쓸하면서 어딘가 고소한 냄새였다. 할머니는 몇 시간을 펄펄 끓인 검은 약초물로 내 몸을 씻겨주셨다. 약초물이 피부에 닿을 때마다 상처에 소금물을 붓는 것 같았다. 반쯤 울면서 목욕하기 싫다고 칭얼거렸지만 할머니는 이렇게 해서라도 나으면 얼마나 좋겠냐며 몇 년 동안 산에 올라 약초 뿌리를 캐오셨다. 다른 민간요법과 비슷하게 효과는 없었다.


 목욕을 끝내면 할머니는 병원에서 준 연고를 정성스레 내 몸에 발라주셨다. 나는 익숙하게 알몸으로 서서 몸을 빙글빙글 돌려가며 어느 부위에 아토피가 있는지 할머니에게 알려주었다. 할머니의 오랜 말버릇은 '너랑 내 피부를 바꾸면 얼마나 좋겠냐'였다. 그렇게 해서라도 내 피부가 나으면 동네 사람들을 모두 초대해 잔치를 열 거라고 하셨다. 왜 할머니는 자기가 아토피를 가져가는데 잔치를 열 정도로 기쁜 건지 그때는 몰랐다. 할머니의 손을 잡고 다닌 병원도 수두룩하다. 초등학교 3학년쯤에는 광주에 있는 한 유명한 피부과에 2년 정도 다녔다. 글자를 못 읽는 할머니의 손을 잡고 고속버스를 타고, 택시를 타고 다녔다. 할머니의 눈이 되어 타야 할 버스를 찾고, 할머니의 손에 의지해 병원을 찾아갔다. 맞벌이를 하시는 부모님의 역할을 할머니가 대신해 주셨다.


 엄마는 나를 임신하셨을 때 감기약을 먹지 않아서 내게 아토피가 생긴 거라며 오래도록 자책하셨다. 아마 그때 감기약을 먹었다면 감기약을 먹어서 아토피가 생겼다고 자책하셨을 것이다. 아토피의 원인에 대해서는 여러 가설이 있다. 유전이다, 면역 문제다, 음식 알레르기다 등등. 원인이 뭐가 됐든 엄마의 감기가 아토피의 원인은 아닐 것이다. 자식에게 하자 있는 무언가를 물려주었다는 책임을 본인에게 돌리는 엄마의 좋지 않은 습관 정도로 생각한다.


 거의 인생 전부를 아토피와 함께 지내는 동안 느꼈던 것들을 차분히 글로 풀어내보려 한다. 잘 기억나지 않는 어린 시절 이야기를 쓰려다 보니 엄마의 도움을 받았다. 몇 번이나 아토피가 생겼을 때의 이야기를 묻기도 하고 듣기도 들었지만 엄마는 늘 속상해하시고 가끔 속상한 마음을 눈물로 드러내신다. 오늘 아침에도 그건(어릴 때 아토피 이야기) 왜 또 갑자기 묻냐는 엄마의 질문에 '일기 쓰려고요'라고 대답하니 수십 번 해주신 이야기를 또 담담하게 들려주신다. 잘 기억해 뒀다가 나의 언어로 옮겨 적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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