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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 들 Jan 09. 2023

에세이를 못 쓰는 사람

도이터 운동화와 핫브레이크


2018년 연초에 있었던 일을 기억한다. 2월 12일, 이후의 출판계에 반향을 일으키는 사건 하나가 일어났다. 웬 멋쟁이 반항아 같은 작가 한 사람이, 학자금 대출을 갚아야겠다며 메일링 서비스를 시작한 것이다. 달에 만 원을 받고 스무 편의 에세이를 보내준다고 했다. 그 서비스의 이름은 [일간 이슬아]였다.

 

나는 창간호의 구독자였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느냐면 ‘일간 이슬아’의 ‘이슬아’이기 이전의 이슬아 때부터 그를 알았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sns를 통해 우연히 이슬아 작가의 계정까지 닿게 되었고 게시물 몇 개를 보다가 팔로우를 눌렀었다. 이유는? 아마 그가 입은 빈티지한 옷들이 멋져서였던 것 같다. 아니면 빈티지한 옷을 입은 그의 맵시가 멋져서? 아무튼, 나는 그의 팔로워에 이어 독자까지 돼버렸다. [일간 이슬아]라는 머리말을 단 그 첫 번째 메일에는 ‘글을 발송하는 시각은 매일 다릅니다. 요일마다 출근 일정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시간이 들쑥날쑥해도 매일 한 편의 수필을 보내는 것만은 확실합니다.’라는 약속이 적혀 있었다. 약속은 웬만하면 꼭 지켜졌으므로 독자들은 늦어도 오후 11시 25분쯤에는 그날의 이슬아를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되어갔을 것이다.

 

‘문단계의 아이돌’로 불리는 이슬아 작가는 현재 두루두루컴퍼니에 소속되어 있기도 하다. 두루두루컴퍼니는 장기하, 혁오, 카더가든의 소속사이기도 하다. 이슬아, 장기하, 혁오, 카더가든? 힙한 페스티벌의 라인업을 보는 것 같다. 이슬아가 아이돌과 같은 존재로 대중에게 각인되기 얼마 전쯤, 그를 만난 적 있다. 망원동의 한 까페에서 이슬아 작가를 주인공으로 하는 토크콘서트 비슷한 대담의 자리가 있었고, 거기서 이슬아의 실물과 목소리를 처음 접했다. 그러고는 그 저녁 나는 확실한 사랑 하나에 빠져버렸다. 로비에서 만난 그에게 카메라를 들이밀며 셀카를 찍어달라고 했다. 그는 고마움을 표하고는 입꼬리를 길게 올려 미소 지으며 프레임 안으로 들어왔다.

 

나는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그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업로드하며 ‘아 숨통 트여. 사는 것 같다. 할 일 밀려서 0.1초 올까말까 고민했던 과거의 나 반성하세요. #이슬아 #일간이슬아 #구독하세요 #후회안해요 #나를한번믿어봐’ 라고 썼다. 서른여섯 개의 좋아요가 눌렸다. 그 중에 나를 믿고 ‘일간이슬아’를 구독신청한 사람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미 그 즈음 이슬아를 믿고 ‘일간이슬아’를 구독하는 사람들은 빠르게 늘어나고 있었다. 며칠이 채 지나지 않아서 나는 참지 못하고 게시물 하나를 더 올렸다.

 

 

메일수신함 검색창에 이 슬 아 라고 치면 [일간 이슬아]로 시작되는 제목의 메일들이 모여든다. 좋아하는 것을 모은다는 게 이런 기분을 쌓는 거라면 방 한 편을 수집품들로 가득 채운 친구를 열두 번 이해할 수 있다.


어느 날까지는 인생에 전혀 없던 이름이 매일 있게 되는 것은 특별한 일이다. 서점이나 만화방, 아카이빙 룸을 둘러볼 때와 비슷하게 느릿느릿 읽고, 어떤 것은 다음에 읽으려고 일부러 안 읽는다. ‘이슬아의 방’에서 서성이다가 쭈그려 앉았다가 드러눕기도 하면서 휴일의 정오까지를 보낸다. 막 소리 내서 웃고, 아무 소리 없어지기도 한다.


어릴 때 음식에 대한 편식이 심했던 걸 크면서 많이 고쳤는데, 글에 대한 편식은 여전하다. 덜 커서 그렇다고 생각한다. 어느 두 작가의 수필을 알기 전에는 그것을 재미있게 읽는 법을 잘 몰랐었고, 그들을 알고 난 다음에도 그들이 쓴 수필 외의 수필을 재미있게 읽는 법은 여전히 몰랐다. 이슬아 작가는 수필만 쓴다고 했다. 그게 너무 신난다. 다른 걸 써도 좋겠지만 그러지 않아도 좋을 것이다. 세 작가의 수필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어졌으니까 나는 좀 더 클 것이고, 방바닥에서 보내는 휴일을 즐겁게 하는 건 점점 많아질 것이다. 언제든 이슬아를 기억하는 날까지 난 이 사람의 ‘연재노동’을 응원하고 그가 파업하지 않게끔 어떤 식으로든 그를 계속 구독하기로 했다. (2018.04)

 


나는 허구로 된 이야기를 더 자주 읽어왔다. 서점에 가는 날이면 대부분의 에세이 서적들을 그저 스쳐지나갔다. 동시에 싸이월드, 페이스북, 인스타그램을 건너오는 내내 나의 이야기를 썼다. 그러다가 마침내 내 이야기를 쓰는 것에도 완전히 질려버렸다. 에세이와는 그대로 작별하는 줄 알았다. 그때, 돌연 이슬아 작가가 내 인생에 나타난 것이다. 그는 읽고 나서도 또 다시 읽고 싶은 이야기를 많이 썼다. 어느 날엔가는, 어린 이슬아가 산에 오르다 말고 내려온 이야기를 두 편에 나누어 받아봤었다.

 

 

(전략)

 

나는 약간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 잠시 후 시큰둥하게 물었다.

“그렇게 구하기 힘든 거야?”

할아버지와 나는 동시에 내 발을 내려다보았다. 거기엔 밤색 가죽 등산화가 신겨져 있었다. 그는 기다렸다는 듯 숨을 크게 들이쉬며 “그럼 인마!” 하고 외쳤다. 할아버지는 갑자기 손잡이에서 손을 떼고 내 발 옆으로 쭈그려 앉아 뒤꿈치 쪽을 살피기 시작했다. 그 전철에서 쭈그려 앉은 사람은 할아버지뿐이었다. 나는 눈치를 보며 할아버지를 나무랐다.

“왜 앉고 그래!”

할아버지는 등산화가 신겨진 내 오른발을 자기 손에 받치더니 뒤꿈치 쪽에 찍힌 상표를 보여주었다.

“이거 봐라, 이거 봐. 도이터 라고 적혀 있는 거 좀 봐봐라 임마. 도이터가 무슨 뜻이냐면 독일 애들이 만들었다는 뜻이야. 너 인마 독일 애들이 어떤 애들인지 아니?”

나는 할아버지 눈을 마주치지 않고 대답했다.

“모르고 싶어.”

할아버지는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설명했다.

“독일 애들은 지구상에서 제일 꼼꼼해. 걔네가 만든 물건은 얼마나 튼튼한지 망가뜨릴래야 망가지지를 않어. 그런 민족이 만든 게 이 신발인데, 도이터 등산화 중에 이백십 사이즈는 우리나라에 몇 개 있지도 않어 인마. 어른 사이즈야 많지. 근데 애들 등산화는 잘 안 만든다. 왠지 아니?”

나는 목에 힘을 주고 대답했다.

“모르고 싶다고.”

할아버지는 바닥을 짚고 일어나서 말했다.

“그야 당연히 애들은 등산을 안 하니까 그런 기라. 산에 애들 있는 거 봤니? 못 봤지? 산에는 어른 밖에 안 가.”

나는 한숨을 쉬었고 그는 계속했다.

“그런데! 우리 이슬아가 누구냐?”

“이제 그만 좀 말해.”

“이슬아는 이씨 집안의 고명딸이지! 유일한 기지배! 이슬아는 다른 애들이랑 다르게 산도 엄청 잘 탄단 말이야. 왜냐? 내 손녀니까. 알평대군의 후손이니까. 그렇다면 인마, 나는 누구냐?”

정답을 할아버지의 입으로 듣고 싶지가 않아서 나는 최대한 어떤 감흥도 없이 대답했다.

“할아버진 도봉산 다람쥐잖아...”

흡족한 얼굴로 그가 웃었다.

 

 

진지하게 미간을 구기고 정숙하기를 요구하는 어린이 슬아와, 자긍심으로 가득 찬 말과 행동을 멈추는 것을 너무 어려워하는 슬아의 할아버지가 한 장면에 놓이며 글이 시작되었다. 몇 문장을 건널 때마다 기침 나오듯이 참을 수 없는 웃음이 튀어나왔다. 도입부터 마음을 빼앗긴 나는 또 얼른 쿨럭거리며 웃고 싶어서 다음 문단으로 서둘러 나아갔다. 그런데 이 이야기 속의 둘은 도봉산 등반을 마치지 못했다. 슬아에게 아주 중요한 심경의 변화가 일어났기 때문이다. 산의 중턱에서 하산한 슬아와 할아버지는 매표소 앞에서 우이암을 올려다봤다.

 


그제야 할아버지가 종일 매고 있던 가방이 눈에 들어왔다. 엄청 무거워 보였다. 그 안에 뭐가 들어있냐고 물어보기가 겁났다. 가방을 풀면서 그는 한 번 더 상심할 게 분명했다. 뭐든 간에 새벽부터 일어나 열심히 싸 왔을 테니까.

그러나 내가 뭐가 있냐고 묻기도 전에 할아버지는 가방을 내려놓고 지퍼를 열었다. 그 안에서 핫브레이크 두 개를 꺼냈다. 그게 내가 제일 좋아하는 초코바인 걸 그는 알았다. 나는 핫브레이크를 건네받으며 물었다.

 

(중략)

 

우리는 다시 1호선 도봉역을 향해 터벅터벅 걸었다. 할아버지의 걸음도 평소만큼 빠르지 않은 걸 보니 서두르고 싶은 기분이 아닌 듯했다. 이제 겨우 점심 즈음이었다. 아침에 역에서 내렸을 때보다 할아버지 째그맣게 느껴졌다. 문득 아까 할아버지의 가슴팍을 마구마구 친 게 생각났다. 그 생각을 떨치려고 나는 아무 말이나 했다.

 

“내가 정상까지 올라갔으면 좋았을 거야?”

“좋았을 거지.”

“올라가서 야호도 했을 거야?”

“도봉산 다람쥐는 야호 같은 건 안 해. 그런 건 산에 처음 온 애들이나 하는 거지.”

 

할아버지의 가방엔 4단 도시락이 그대로 들어있었다. 그 날 그가 도시락에 뭘 싸 왔는지 나는 지금도 모른다.

 

(후략)

 

 

이 글의 제목은 <당신의 자랑>이다. 손주의 발에 꼭 맞는 최고급 등산화를 사주기 위해 시장을 뒤지고, 그 운동화를 신은 손주보다 그 운동화를 산 자신에 대해 더 힘주어 알리고 싶어 하고, 손녀를 ‘고명딸’이라느니 ‘기지배’라느니 자랑스럽게 호명하며, 그 애가 도봉산 다람쥐의 손녀답게 산을 잘 타기를 부추기고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무엇인가에 실망하면서도, 실망을 품고서 손녀딸이 가장 좋아하는 초코바를 꺼내어 나누어 먹는, 슬아의 ‘당신’에 대한 이야기. 또한 그런 ‘당신’의 슬아에 대한 이야기.


나는 이슬아의 문장들을 읽다가, 읽기를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나 바보 아니야?’


내 경험, 내 기분, 내 생각 그런 건 에세이의 일부일 뿐이라는 생각이 쳐들어왔다. 에세이 쓰기란, 내 옆에 앉은 사람을 면밀히 들여다보고, 눈을 가늘게 뜨고 길 건너의 사람을 관찰하고, 눈을 꾹 감고 저어어어어기에 있는 누구를 상상하는 일인 것 같았다. 자신에게 일어난 일 그 이상의 것이 이슬아의 글에는 새겨져 있었다. 이를 테면 개구지고, 정겹고, 쓸쓸하고, 아름다운 ‘시선’이었다. 꿀밤을 한 대 얻어맞은 듯 머리통이 지끈하고 시원해졌다. 이제는 쓸 수만 있다면 그런 글을 쓰고 싶다. 나를 딛고 서서 너를 들여다보고 건너다보고 상상하고 싶다.



*<독서관>에서 발행하는 뉴스레터인 <요일작가> 시즌2에서 무료 연재 하였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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