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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rper May 29. 2024

미얀마에서 배운 놓치는 즐거움

Joy of missing out

몇 년 전 미얀마에서 거주한 적이 있습니다. 미얀마에서 세 번째로 큰 바고강 근처에 있는 동네였는데, 짚이나 나무로 불법 설치한 빈민촌부터, 서민층이 사는 아파트, 부유층이 사는 주택까지 다양한 주거 형태를 한 번에 볼 수 있는 곳이었어요. 그만큼 다양한 사람들을 주위에서 관찰할 수 있었습니다.


카페도 없고, 와이파이도 잘 안되고, 말도 잘 안 통하는 그곳에서 사는 삶은 꽤 행복했어요. 왜냐하면 생각을 하면서 살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거든요. 생각과 삶이 보조를 맞추고 있다는 것을 느낄 때, 기분이 아주 아주 좋았습니다.


당시는 큰 프로젝트들을 마치고 지쳐있는 상태였어요. ‘조그마한’ 기회들이 쉴 새 없이 찾아오는데 하나도 놓치기가 싫었습니다. 주변 사람들과 비교하며 내가 혹시 뒤처져 있지는 않은지 확인하고, 찾아온 일을 일단 놓치지 않기 위해 무리를 했습니다. 놓치는 것에 대한 두려움 (FOMO; Fear of missing out)이 컸던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 삶을 살아내고 일을 해내기에 바빠서 정작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할 여유가 없었습니다.


미얀마에서 삶은 단순했습니다. 원하지 않는 일은 수락하지 않았고, 놓치기 아쉬운 자리로의 초대도 거절했습니다. 비교할 대상이 눈앞에 보이지 않다 보니 의미 없는 조급함과 경쟁심도 많이 사라졌고, 중요한 큰 일들에만 집중할 수 있었어요. 매일매일을 스스로 디자인하는 평안함과 놓치는 즐거움 (JOMO; Joy of missing out)을 처음 느꼈습니다. 사는 대로 생각하지 않고, 생각하는 대로 살게 된 것입니다.




자전거 타고 마을을 지나다가 만난 분께 집을 구경해도 되냐고 했더니, 선뜻 그러라고 하면서 저를 집으로 초대해 주셨습니다. 그분은 저에게 맛있는 차도 대접해 주고, 미얀마 전통 화장품 다나카도 발라보게 해 주셨어요.


어느 날은 길거리에서 장사를 하는 한 청년이 주변을 너무 정성스럽게 청소하고 있는 거예요. 가까이 다가가보니 지붕의 문구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Never never never never never give up. 포기하기 않겠다는 단호한 결심이 선명하게 전해져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주변을 정돈하는 정성과 성실함이 참 아름답다고 생각했어요.



그 옆에서 딸기를 팔던 청년은 저에게 딸기 두 개를 선물해 주었어요.



또 다른 날은 작은 아이가 저에게 의자를 가져다주었어요. 아마도 아이는 오랫동안 한 자리에 서서 장사를 하고 있는 저희를 관찰하다가 의자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따뜻한 시선의 작은 관찰자의 큰 배려가 너무나도 따스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아이의 가족은 저를 집으로 초대해 따뜻하고 맛있는 가정식을 대접해 주었습니다.



낯선 사람에게 베푸는 친절, 따뜻한 관찰과 배려, 그리고 포기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가진 이 분들 덕분에 놓칠까 봐 두려워했던 작은 기회들보다 더 소중한 것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몇 년이 지난 오늘, 놓치는 즐거움과 단순한 삶이 주는 평안함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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