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개월 전 아직 본격적인 여름이 시작되기 전 상주의 펜션을 다녀왔다. 아침에 일어나 간단히 시리얼을 먹고 더벅머리인 채로 설거지를 하는데 갑작스레 걸려온 전화 한 통이 여행의 시작이었다. "펜션 가자, 데리러 가는 중이니까 나와." 펜션 가자는 얘기는 전부터 했지만 흐지부지 무산된 계획이라고만 생각하고 있던 내겐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다. 거지꼴로 밖을 돌아다닐 바에야 집에서 죽겠다는 마음가짐을 가진 나였기에 일행들이 서울에서 내려오기 전 서둘러 머리도 자르고 짐도 싸고, 갑작스레 펜션 여행 가게 됐다는 소식을 가족들에게 전한 뒤 바캉스 분위기라도 누릴 겸 라섹 수술을 했을 때 구매한 선글라스도 챙겨서 문을 나섰다. 그러고 보니 그 선글라스를 펜션에 두고 온 것 같다. 내 유일한 선글라스였는데.
7, 8월만큼 덥진 않았지만 그날의 햇빛이 참 눈부셨다는 것만큼은 기억난다. 마침내 합류한 일행들은 서울에서 안산으로의 여정에 이미 지친듯한 모습이었다. 그리하여 여정의 초장부터 이미 다운된 무드로 우리는 상주로 향했다. 고전 팝송 플레이리스트가 꽤 괜찮지 않았다면 나도 뒷좌석의 일행들처럼 잠들었을지 모른다.
상주에 도착해 구석으로 들어가고 들어가고 또 들어간 뒤 꼬불꼬불한 비포장 도로를 오르니 드디어 펜션에 도착했다. 첩첩산중에 있는 펜션인 만큼 공기도 좋고 날벌레도 많았다. 객실에서 문을 열고 나오면 테라스 너머로는 인삼밭이 펼쳐져 있고. 펜션 사장님이 혼자 운영하시는 것치고는 관리가 잘 되어 있었고 창문을 열어두면 날아드는 날벌레들만 빼면 모든 게 좋았다. 사람 무서운 줄 모르고 내 얼굴에 뛰어드는 나방들을 제외하고 또 좋지 않았던 건 나를 포함한 일행들의 체력이었다. 도착해 보니 이미 해가 넘어가기 직전이었으므로 우리는 짐을 풀고 각자 편한 위치에서 널브러져 있다가 저녁 먹을 때가 돼서야 다시 일어났다. 나는 육류를 참 좋아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4일 내내 저녁에 고기를 구워 먹으니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계곡물로 채운 수영장, 노래방 기계, 바베큐 그릴. 놀 건 다 있었지만 일행들이 다 아저씨들이라 그랬던 걸까 우리는 그 모든 것들을 제쳐두고 바베큐 그릴만을 사용했다. 노래라도 부르면서 흥이라도 돋우자고 하니 다들 뿔뿔이 흩어져서 쉬고 있고, 물놀이 좀 하자니까 계곡물이 너무 차갑다고 안 들어가려고 하고. 이 모임의 평균연령을 낮추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고기 먹고 술 마시면서 노는 법 밖에 모르는 연장자들의 모습이 조금 개탄스러웠다.
결국 우리 펜션 여행의 메인 이벤트는 저녁의 바베큐 파티였다. 펜션 여행하면 빠질 수 없는 코스긴 한데 4일 연속 이것만 메인으로 하기에는 멀리까지 온 보람이 조금 없지 않나 생각되긴 하지만... 그래도 즐겁긴 했다. 숙박객이 우리뿐인지라 혼자 계신 펜션 사장님도 모셔와 바베큐 파티를 했는데, 술이 들어가니 가볍지 않은 얘기들도 오가기 시작했다. 이런 얘기를 하면 꼰대 소리를 듣던 데로 시작을 끊은 사장님의 이야기는 자신이 살아온 경험들에 관한 것이었다. 보릿고개를 겪은 세대의 이야기 말이다. 그렇게 살아왔는데 그런 얘기를 꺼내면 젊은 세대에게는 곧장 꼰대 취급을 받기 일쑤고 자신이 힘겹게 걸어온 길은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 허무하게 느껴지기도 한다며 허허 웃으시는 모습에 나는 겁도 없이 그렇지 않다고 얘기했다. 당신께서 치열하게 살아왔던 모든 순간은 의미 없거나 허무한 일이 아니라고 말이다. 그저 상투적인 말이었을지도 모르지만 다행히 위로가 되신듯, 고맙다는 말을 꺼내셨다. 그 덕이었을까, 술이 다 떨어지고 근처 마트들이 문을 다 닫아서 어떻게 할까 고민하던 차에 어딘가에 은밀하게 숨겨두셨던 맥주를 흔쾌히 꺼내 주셨다.
은퇴 후 수영장이 딸린 산속의 펜션을 운영하는 삶이라는 건 만족스럽게만 느껴질 줄 알았는데 의외였다. 물론 혼자서 그 펜션을 관리하는 건 힘들겠지만, 그걸 떠나서 '내가 보기에' 더 바랄 게 없을 것 같은 삶에도 그런 쓸쓸한 마음이 있었다는 게 말이다. 그저 보이는 대로 남의 인생을 멋대로 생각하면 안 되는데, 나도 참 갈 길이 멀다. 다음에 또 가게 된다면 그동안 잘 지내셨냐는 인사와 함께 제 선글라스 못 보셨어요? 여쭤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