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열음 Oct 04. 2020

나와 닮은 너라서

널 알게 되어서 그저 기쁠 뿐




알게된 건 올해 1월이었다. 종강을 하고난 후에는 친구들과 파티를 하고, 미팅을 나가기도 하고, 술을 진탕 마시기도 했다. 하지만 12월 31일만은 서울에서 보내고 싶지 않다는 나의 억지에 꾸역꾸역 30일날 기차를 타고 내려갔다.


그 때는 주위에서 중국드라마를 보는 사람이 많았다. 장발의 남자들이 날아다니고 뛰어다니는 모습을 보며 웃어넘겼던 기억이 있다. 중국은 진짜 신기한 나라구나, 하고 저걸 볼 일은 절대 없을 거라 생각했다.



강한 부정은 항상 예기치 못한 일들을 만든다. 집에 돌아오니 엄마가 그 드라마를 보고 있었다. 엄마는 티비에서 하는 외국드라마들을 좋아했는데 나도 같이 의학드라마인 그레이 아나토미나-어린 나이였지만 수위가 높은 드라마라는 건 알 수 있었다-NCIS,-해군 관련 사건을 수사하는 수사대-를 봐왔다. 다 재밌는 드라마뿐이었다. 그래서 나도 엄마의 곁에 앉아 같이 보았다. 매번 그랬듯 하나하나 설명해주고 이해시켜주면서 30몇 화 쯤을 봤다. 잘생긴 배우들도 많았고 나는 모르지만 다들 사연이 있는 것 같았다. 다음날 1화를 찾아봄으로서 나는 소위 말하는 덕후가 되고 말았다.









드라마 <진정령>의 공식 포스터. 좌측에는 남망기 역의 왕이보 (王一博) 우측에는 위무선 역의 샤오쟌 (肖战)

해당 드라마에 대한 스포가 다수 존재합니다












총 50화 정도의 드라마는 정말 수많은 인물들과 그에 따른 수많은 서사들을 가지고 있다. 다섯 개의 가문-운몽 강씨, 고소 남씨, 난릉 금씨, 청하 섭씨, 기산 온씨-중 하나인 기산 온씨 가문이 다른 가문을 평정하려고 하며 혼란이 일어난다. 그런 과정 속 희생되어 죽은 위무선-위씨인데 얘는 어디지? 라고 생각하겠지만 운몽 강씨의 하인이다-이 다시 돌아오며 전개되는 이야기이다. 이 정도는 알아도 되는 게 1화에서 다 알려준다. 위무선이 죽었다니 꼴도 좋군요, 류의 대사를 몇 번이나 봤는지 모르겠다.

(아무렇지 않았던 1화는 끝까지 보고 다시 본다면 맨정신으로 볼 수가 없다)






어쨌든 나는 위무선 역의 배우 샤오쟌에게 푹 빠져서 드라마를 보게 되었다. 선선이라는 애칭을 부를 정도로. 하지만 드라마를 다 보았을 때 나의 최애는 바뀌어있었다. 바로 이 글을 쓰게 한 계기이며 내가 작품을 보는 눈을 완전히 바꿔준 나의 구원자.





                        운몽 강씨의 후계자인 강징江澄 (강만음)이다.


드라마는 완전히 그의 사형인 위무선의 시선에서 전개된다. 하지만 나는 어느 순간 강징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카메라도 제대로 비추어주지 않는 그의 시선이 궁금해져 눈으로 쫓기 시작했다.





강징. 그는 운몽 강씨의 후계자이다. 대외적으로는 어릴 적 멸문 당해 부모님을 잃지만 재건하여 성공한다. 그의 재건에 받침이 된 건 사형이자 역적인 위무선을 죽인 것. 사마외도에 빠진 위무선이 하나 남은 가족인 누나 강염리를 죽였기 때문에 그는 위무선을 죽였다.


지금은 누나가 남긴 조카 금릉을 키우며 가주로서 홀로 살아간다. 위무선이 죽은지 16년 되던 해, 위무선은 다시 돌아온다. 그로 인해 그의 상처가 다시 조명되며 닿지 못했던 진실을 알게 된다.

 



드라마 안의 대외적인 부분과 드라마 안에서 그에게 부여해준 서사는 이 정도이다.












그는 평생을 위무선의 그림자에서 살았다. 운몽 강씨 하인이자 가주 강풍면의 친구였던 위장택 부부의 아들인 위무선. 강풍면이 부모를 잃은 그를 데려왔다. 무얼해도 강징보다 월등히 뛰어났으며 강징보다 사랑받았다. 아버지인 강풍면은 그에게는 지나치게 엄격했고 위무선은 지나치게 사랑했다. 오죽했으면 위무선의 친모인 장색산인이 강풍면의 첫사랑이라는 소문이 돌았을까. 친아들보다 아낀다는 소문은 이미 만연해있었다. 그 소문을 듣고 화가 치밀었지만 그래도 위무선을 미워하지는 않았다. 그는 좋은 사형이었고 자신을 아끼고 좋아했다. 강징도 그랬다.



하지만 온씨에 의해 가문이 멸문당하고 부모님이 돌아가셨다. 위무선을 트집 삼아 처들어온 것이다. 화를 돌릴 곳이 없어 위무선에게 화를 냈다.


도망치다 잡혀서 끌려갔다. 수련도 할 수 없는 몸이 되어 돌아온 것이다. 그 때에는 폐인이 되었다. 복수를 할 수도, 가문을 일으킬 수도 없다. 아무런 희망도 보이지 않아 절망에서 허덕이고 있었다.




그러다 위무선이 그를 도왔다. 기적처럼 금단을 되찾았다. 그런데 그 뒤로는 위무선이 이상해졌다. 이해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가족이니까. 남아있는 건 이제 셋뿐이었다. 어째서인지 사마외도의 길로 빠진 위무선은 화를 잘 냈다. 검을 겨루는 것도 하지 않았고 들고 다니지도 않았다.





젊고 능력 있는 가주와 모두가 두려워하는 사마외도의 조합은 견제의 대상이 되었다. 다들 위무선을 못살게 굴며 강징을 못살게 굴었다. 결국 대외적으로는 연을 끊었다. 위무선은 자신의 행동이 운몽 강씨의 행동으로 간주되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위무선의 실수로 누나의 남편인 금자헌이 죽었고 전쟁이 일어났다. 사람들은 위무선을 토벌하려 했다. 그 전쟁에서 누나인 강염리는 위무선을 구하다 죽었다. 위무선은 결국, 자살했다.










그는 가족을 모두 잃었다. 부모를 잃었고 그 다음에는 셋만 남았다. 강염리와 위무선이 죽고 이제는 혼자 남았다. 그의 나이로는 고작 20살-22살 정도였을 것이다. 하지만 무너질 수는 없다. 혼자 남았음에도 아픔을 드러낼 수 없고 슬픔에 무너질 수 없었다. 가주니까 가문을 다시 이끌어야한다. 그게 그의 사명이었다.   



그리고 누나 부부가 남기고 간 조카가 남아있다. 이 아이만은 외롭게 키우지 않아야지, 나처럼 차별 받고 컸다는 기분은 들게하지 말아야지, 사랑 받아 오만할지언정 사랑 받지 못해 아픈 아이로는 키우고 싶지 않았다.




원래 아파본 사람이 위로를 잘한다고 한다. 그를 보면 맞는 말이다. 그는 자신과 같은 아픔을 주고 싶지 않아서 조카를 최선을 다해 키운다. 그의 바람대로 조카는 다소 오만하지만 그래도 외숙이 언제나 자신을 사랑한다는 확신에 차있다. 사랑을 의심하지 않고 자신이 사랑 받는 게 당연하다고 여긴다.




그 부분이 나는 조금 슬펐다. 그가 얼마나 가족의 사랑이 고팠고 그것을 의심했는지 알 수 있어서이다.



그리고 감히, 그가 혼인하지 않은 이유가 자식이 태어나면 금릉과 차별하게 될 것을 우려해서 아닐까 라고 추측해본다. 본인이 그렇지 않다해도 그 아이가 그렇게 느낄 수 있기 때문에. 마치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드라마에서 그는 입이 험하다. 솔직한 말 같은 건 전혀 할 줄 모르고 가시 돋친 말만 잔뜩 내뱉는다. 분명 성격이 나쁘다. 그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걸 원래 성품인 걸 감안했을 때, 그 속에는 걱정과 사랑이 들어있다. 한 번 깨닫고 나면 그 안의 의미를 간파하는 게 오히려 쉬울 정도다.




그는 아픔이 너무 많은 사람이다. 사랑이 고픈 사람이다. 위무선이 살아돌아왔을 때도 왜 바로 연화오-운몽 강씨의 거처-로 돌아오지 않았냐고 화를 낸다. 이러니저러니해도 가족을 너무 사랑한다. 그는 평생을 소년 시절을 그리워했고 그리워할 것이다.





드라마의 마지막에서는 충격적인 반전이 드러난다. 이 드라마의 핵심 내용 중 하나는 금단을 잃은 강징에게 위무선이 금단을 줌으로서 사마외도에 빠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강징은 그 사실을 몰랐다.


그걸 알게된 후 완전히 무너지게 되며 두 사람 사이의 괴리감이 사라진다. 목숨보다도 더 귀한 금단. 그게 없었기 때문에 위무선은 사마외도에 빠지게 되었고 검을 쥘 수 없게 되었는데 자신은 몰랐다. 오히려 수련하지 않는 그를 한심하게 여기며 시비를 걸었다.
















하지만 더 충격적인 반전이 존재했다. 강징이 끌려가게 된 사유가 위무선을 지키기 위해서였다는 것. 온 씨들이 위무선을 끌고가려하는 걸 보고 자신이 주의를 끌어 대신 잡혀간 것이다. 그래서 금단을 잃게 되었다. 지독한 애정이었다.




강징은 그저 눈 앞의 상황에 대해 생각했다. 위무선이 끌려간다고? 안된다. 그건 안된다. 그래서 도망가도록 도왔다. 차라리 내가 잡혀가는 게 낫다. 그 안에 위무선에 대한 열등감이 아예 없었다면 거짓이겠지만 몸이 움직이는 순간 그가 느낀 건 그저 가족에 대한 애착과 사랑이었을 것이다. 위무선도 똑같은 상황이라면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위무선은 후에 금단을 준 것에 대해 운몽 강씨에 은혜를 갚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강징이 느끼지 못했던 위무선 안의 거리감이 존재했던 것이다. 아직 위무선은 강징이 자신을 구한 것을 알지 못하지만 온녕이 했던 말처럼 영원한 비밀은 존재하지 않는다. 언젠가 알게될 것이다.






솔직하지 못하지만 사람을 좋아하고 사랑받고 싶어했던 사람. 그는 계속 살아갈 것이다. 때때로 사랑했던, 한 때는 존재했던 사람들을 기억하며 남아있는 이들과 살아갈 것이다.







나는 이 작품 속에서 수많은 서사를 만났다. 그리고 많은 인물들을 이해하게 되었다. 이 안에서 아프지 않은 인물은 거의 없을 정도로 모두 눈물 한 방울이 떨어질만한 이야기를 가졌다. 드라마를 다섯 번 정도 보니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보이고 이해되지 않았던 것들이 이해됐다. 그게 참 신기했다.




대표적으로는 세 명의 인물이었다. 강징과 지독한 악역인 금광요와 설양. 언젠가 나머지 둘에 대한 이야기도 쓸 수 있으면 좋을 것 같다. 평생을 이해해본 적이 없는 역할들이었다. 믿기 힘들 정도의 악역과 못된 말만 내뱉는 인물.



하지만 이 드라마를 보며 주인공이 아닌 인물의 입장에서 사건을 바라보는 법을 배울 수 있었다. 이 인물을 나는 영원히 사랑하게 될 것이다. 사랑하는 마음이 부풀어서 마음이 또 꽉 찼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