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속에서 길을 찾다
재연 프로그램의 치명적인 단점은 ‘유행’ ‘ 트렌드’ 였다
방송프로그램에도 형식이나 장르의 유행이란 게 있는데, 재연 프로그램은 완전히 사라지진 않지만,
한 번씩 유행이 됐다가 사라졌다가 하길 반복했다.
그러다 보니 재연 프로그램이 선호되지 않을 땐 다시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찾아야 했지만
다큐멘터리를 꾸준히 해오지 않으면 다시 일하기 쉽지 않았다.
다큐멘터리 역시 방송사를 통틀어도 몇 개 되지 않는데다,
계속 줄어들고 있는 실정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가 간과하고 있었던 사실은
나는 나이 들어가고, 수많은 새로운 작가들이 매년 새로 등장한다는 것이었다.
나도 모르는 새 친구처럼 일했던 피디들이 현장을 떠나 관리직이 되고,
같이 현장에서 일해야 하는 피디들에게 나이 많은 작가는 선호되지 않기 쉬웠다.
일의 결과물은 경력이 많은 작가에게서 더 좋게 나올 수도 있겠지만
그 과정에서 같이 일하는 게 불편한 점이 많다고 느낄만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작가료’라는 비용적인 측면에서도 배려해야 하는데,
그 역시 부담이 될 터였다.
결국 나의 방송작가로서의 입지는 점점 줄어드는 게 수순이었고,
언제부턴가 난 물러날 때를 준비하며, 이후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생각할 수 있는 건 드라마 작가로의 도전이었다.
주변에 많은 교양구성 작가들이 도전하고 있었고, 성공한 예도 꽤나 많았다.
하지만 일전에도 밝혔듯이 난 일찌감치 그 일에 대해선 포기와 자기합리화로 도망친 지 오래.
나이 먹어서 다시 도전하고픈 맘 역시 없었다.
그쪽 역시 나이 많은 건 단점일 뿐이라는 게 현실이니까.
그렇다면 뭐가 있을까?
글을 쓰지 않고 사는 방법을 생각해 볼까?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동안 틈틈이 바리스타 자격증도 따보고, 포토샵도,
카메라도 배워봤지만 어느 것 하나 취미생활 수준을 넘어서지 못했다.
그리고 마침내 내게도 은퇴가 찾아왔다.
아무도 내게 이때까지만 일하고 은퇴하라 말하지 않았지만,
그냥 알게 됐다.
‘ 아~ 여기까지였구나’
일을 열심히 다시 찾는다면 못 찾을 것도 없겠지만
나를 먼저 찾지 않는데, 먼저 손을 내밀기엔 상대에게도 부담일게 분명해 보였고,
그렇다고 누군가 찾아주기만을 기다리는 것은 이제 기대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대로 누구도 찾지 않은 채 1년이 흘렀다.
뭘 해야 좋을지 모르고 고민하는 내게 대부분의 지인들은 뭐든지 다시 쓰길 권했다.
정말 쓰고 싶지 않은 표현이지만, 배운 게 도둑질인데 글쓰기로 다시 돈을 버는 게 가장
확실한 방법이 아니겠냐는 것이었다.
물론 동의했다. 하지만 문제는 내가 뭘 써야 좋을지 모른다는 것이었다.
누군가는 재연드라마 쓰던 걸 발전시켜서 웹소설을 써보라 권하기도 했고,
누군가는 자료를 조사해 스토리를 만드는 일을 30년 넘게 했으니 소재를 정해 실용서를
써보라 권하기도 했다. 하지만 내겐 늘 핑계가 있었다.
웹소설은 경쟁이 너무 치열해 들인 시간과 수고에 비해 내가 감히 살아남을 수 있을지
자신할 수 없었다. 한마디로 성공가능성이 너무 낮다.
실용서는 써 볼 수 있고, 1인 출판으로 책도 내볼 수 있겠지만 그 역시 내 만족에 그칠
가능성이 컸다. 난 한 분야를 깊게 파 본적이 없으니 어떤 소재를 고르더라도
결국 수박 겉핥기에 지나지 않을 터였기 때문이다.
다시 1년 난 내가 뭘 쓸 수 있는지, 아니 뭘 쓰고 싶은지 몰라 주저주저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 미적미적 조심스레 혹은 내깔기듯 시작한 것이 브런치였다.
내가 가장 잘 아는 건 내 자신이고, 내 이야기니까. 내 얘길 써보자.
물론 여기에도 수많은 망설임이 있었다.
‘얼마나 솔직한 이야기를 쓸 수 있을까?’
‘내 얘기가 사람들에게 공감을 살 만큼 보편적이면서도 특별할까? ’
방송을 떠난 내 글은 아직 너무나 서툴고, 내 얘기를 쓴다는 건 끝까지 많이 부끄럽고
망설여질 테지만 그래도 이번엔 포기하지 않고 천천히 어떻게든 써볼 참이다.
다른 어떤 이유를 떠나서 아무튼 난 여전히 글을 쓰면서 즐거우니까 말이다.
그래서 지난 30여년 늘 그랬듯 결국 난 지금도 글 속에서 길을 찾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