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을 수 없었던 순간들
친구의 자소서는 첫 문장부터가 충격적이었다.
‘ 어머니는 내 손가락을 자르려고 하셨다’
정확한 문장은 아니지만 글을 시작하는 단락마다 구성에 따라 소제목이 달려있었고
그 소제목들만 봐도 내용이 너무 궁금해 읽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것이었다.
친구는 대학 학보사(신문사)에서 기자로 일했었고, 그 덕분에 남다른 글 짜임새로
사람들의 시선을 끌고 있었다.
예상대로 그 친구는 최종 면접까지 가서 합격했다.
그때 난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과연 내가 글을 쓰는 일을 업으로 해서
살아갈 수 있을까? 그런 일이 나에게 주어지기는 할까?
아무튼 그렇게 여기저기 취업에 실패하고 난 취업재수를 맘먹고 있었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했던 뜻밖의 일이 생겼다.
과방에서 우연히 만난 후배에게 취업재수를 위해 한두 달 용돈이라도 벌 수 있는 알바자리를
물었는데, 그 후배가 방송국 자료조사 일을 해보지 않겠냐고 물어왔다.
1991년 당시 서울방송 (지금의 SBS)가 창사를 준비하고 있었고, 그곳에서 데일리 아침방송팀
자료조사원을 구한다는 것이었다.
취업준비에 지쳐있던 난 무슨 일이라도 하고 싶었고, 정말 한두 달만 일해서 재수하는 동안
차비라도 얼마간 저축해 놓자는 마음으로 방송국에 발을 디뎠다.
그것이 내 30여년 방송작가 생활의 시작이었다.
처음엔 정말 메인 작가 선배의 원고에 쓰일 자료를 조사하고, 프로그램에 필요한 잡일을
하고, 촬영장소와 출연자 섭외를 하고 글을 쓰는 일은 주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방송사라곤 기존의 KBS와 MBC만 있던 상황. 방송작가는 부족했고, 나에게도 곧 짧은
방송원고를 쓸 기회가 주어졌다.
그렇게 교양프로그램에 발을 딛으면서 난 다른 장르는 생각해 볼 겨를도 없이
종합 구성프로그램과 다큐멘터리 작가가 되어갔다.
특출 나게 잘하진 못했지만 그렇다고 눈에 띄게 문제가 되지 않는 글쓰기 능력
(물론 방송작가에게 글쓰기 능력만 필요한건 아니지만 글쓰기에 한정해 보자면)으로
꾸준히 작가일은 할 수 있었고, 때때로 정말 이것 밖에 길이 없을까 한눈도 팔아봤지만
쉽게 발을 들여놓은 것과 달리 쉽게 떠날 수는 없었다.
그러다 우연히 재연프로그램이라는 걸 하게 되는 기회를 만나게 됐다.
팩트를 기반으로 하지만 정통다큐멘터리가 아니라 드라마 화 한 영상을 만드는 것이었다.
당시는 재연프로그램이 큰 인기를 끌던 시절이었다.
많이들 기억하는 < 이야기 속으로> <경찰청 사람들> 같은 프로그램이 히트를 치면서
재연프로그램이 여기저기서 기획됐고, 그 프로그램 중 하나에 투입되게 된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겁도 없었다.
드라마는 생각해 본 적도 없으면서 드라마 원고를 써보겠다 나섰으니..
결국 난 얼마못가 처음으로 프로그램에서 일을 못해 잘리는 경험을 하게 됐다.
프리랜서로 일하면서 내 의사와 상관없이 프로그램에서 소위 ‘잘리는 경우’는
꽤나 비일비재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경험은 늘 불쾌하고, 일정 정도 정신적 타격을
입히곤 한다.
난 그 일을 계기로 작가교육원을 다니며 드라마 공부를 시작했다.
처음엔 열정에 불타올랐다. 이번 기회에 드라마 작가로 진로를 바꿔보자는 결심도 했다.
단편 드라마 공모도 열심히 날짜를 챙겨가며 준비하려 계획도 세웠다.
그런데 현실은 그냥 계획에 그치는 일이 더 많았다. 왜? 돈을 버는 일이 더 우선시 됐고,
가보지 않은 길은 늘 나중으로 미뤄지곤 했기 때문이다.
아니, 이건 솔직히 핑계고, 부차적인 문제였는지도 모른다.
있는 사실을 시청자들에게 재밌고 설득력 있게 전달하는 글만 써왔던 나에게 아무것도 없는
백지 상태에서 하나의 스토리를 창작해 내는 일은 너무도 어렵고, 힘들고
때론 고통스럽기까지 했으니까... 그렇게 시간이 가면서 난 드라마 창작에 소질이 없다는 걸
받아들였다.
하지만 그 시간이 온전히 낭비는 아니었다.
재연드라마라는 형식은 그 후로도 꽤나 많은 프로그램에 사용됐고,
드라마를 공부하면서 얻은 지식과 경험은 나에게 재연드라마 작가로 꽤나 오래 일할 수
있도록 해주는 밑천이 됐다.
소재는 다양했다.
범죄, 사건사고를 다루기도 하고, 치정 불륜을 다루기도 하고, 역사를 다루기도 했다.
형식도 자유로웠다.
때로 법정물이 되기도 했고, 페이크 다큐 형식이 되기도 했고, 짧은 드라마 형식을
그대로 차용하기도 했다.
재연드라마는 내게 꽤나 매력적인 장르였다.
사례자를 찾기 위해 수많은 전화를 할 필요도 사전 인터뷰를 위해 몇날 며칠의 출장을 갈
필요도 없었다. 수십 시간의 촬영본을 일일이 보며 한 시간짜리 다큐구성을 짜기 위해
허리병을 앓을 이유도 없었고, 녹음 시간에 쫓기며 나레이션을 쓰느라 날 밤 샐 일도 없었다.
소재만 찾으면 원고가 미리 쓰여지기에, 그 원고에 충실한 촬영과 후반작업은 다큐멘터리에
비하면 엄청나게 노동의 강도가 약했다. 거기에 재방송을 많이 해서 저작권료도 한동안
꽤 많이 받을 수 있었다. 한마디로 가성비가 좋았다.
게다가 다양한 소재와 형식을 만날 수 있어, 나름 작가로서의 성취감과 재미도 느낄 수
있었다.
그야말로 일석삼조.
하지만 마냥 꽃밭일 수는 없었다.
너무나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 가지 내가 간과하고 있었던 사실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