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랜서가 되고 싶어요
어릴 적 꿈이 뭐였던가 기억하고 있다.
그것도 너무 확실히.
왜냐하면 난 그 꿈을 이루고 살아온 사람이기 때문이다.
나 같은 사람이 드물지는 않겠지만, 열 살 갓 넘어 꾸었던 꿈이라기엔
지금 생각해도 꽤나 어이없고, 요망하기에
‘내가 왜 그랬을까’
가끔 생각해보곤 한다.
초등학교 시절. 아니 그땐 초등학교였던 시절
5학년쯤이었나..
장래희망에 난 ‘프리랜서’ 라고 썼었다.
또래보다 조숙했던 나는 어린애들이 감히 생각하기 어려운 직업을 써내며
그 자체로 좀 으쓱하고 싶었던 것 같다.
아무튼 ‘프리랜서’라는 장래희망이 좀 특이했던지 아님 뜻도 모르고 멋있어 보여 썼다고
생각했는지 담임 선생님이 물어왔다.
“ 프리랜서? 이게 뭔지 알아? ”
“ 어.. 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하고 싶은 일 하는 거요”
“ 자유롭게 하고 싶은 일이 있어? 그게 뭔데? ”
“ 기자 같은 직업이나 아무튼 글 쓰는 일이요”
“ 왜? 글 쓰는 일이 좋아? ”
“ 책을 읽는 게 재밌어요. 그래서 재밌는 걸 쓰고 싶어요”
그 시절 난 사실 엄청난 다독(多讀)을 자랑했다.
2남 1녀 중 막내로 자란 난 위의 두 오빠가 놀아주지 않는 심심함을 해결하는 방법으로
우연찮게 오빠들 방에 있던 책을 집어 들었고, 책이 들려주는 너무나 재밌는 얘기들에
빠져들었다. 동화책부터 위인전까지
당시 동네엔 책 소개 팜플렛을 들고 다니며 전집 동화류나 백과사전을 판매하는 아저씨들이
많았는데, 오빠들에 대한 기대가 컸던 엄마는 월부로 그 책들을 사들여 오빠들 방에 채워놓고
뿌듯해 했었다.
하지만 엄마의 기대완 달리 그 책들엔 뽀얗게 먼지만 안고 있었는데, 어느 날부터 그 책들이
내 손에 쥐여져 있곤 했던 것이다.
그렇게 책의 재미에 빠져 난 무엇이든 닥치는 대로 읽었다.
만화에서부터 신문 연재소설까지 그러다 사춘기를 지난 오빠들 방에 굴러다니는
연애소설들까지
그러다 학교에서 숙제로 내준 글짓기를 하기 위해 원고지를 마주하게 됐다.
뭘 쓰는 거였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난 200자 원고지 7장을 넘기는 글을 수월하게
써서 제출했고, 그 결과 뜻밖의 포상을 받게 됐다.
겨울방학에 사직동에 있는 어린이 도서관에서 주관하는 독서 프로그램에 학교대표로 참여하게
된 것이다.
집에서 도서관까지는 버스로 한 시간 정도. 그 나이에 꽤나 먼 거리를 일주일이나
다녀야 했지만 나에겐 꽤나 충격적인 경험을 안겨주었다.
도서관에서는 책을 읽고 독후감을 써서 발표하는 식으로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뭐 중간중간 강의도 있고 했지만 그건 기억에 없고,
독후감 발표 시간이었던 같다.
세상에...
이렇게 글을 잘 쓰는 애들이 많다니...
어린 내 눈에도 그들의 글은 수준이 높았고,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는지, 그걸 어떻게 저렇게
재밌게 썼는지 놀라웠다.
다른 아이들의 글이 너무나 부러웠고, 나도 글을 잘 쓰고 싶단 열망에 들뜨기 시작하는 계기였다.
내가 글을 쓰고 싶어 하기 시작한건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학예회가 열리면 빠지지 않는 작은 연극의 대본도 내가 쓰겠다고 자원했고,
아이들이 다들 질색하던 과학 독후감(학교에서 정해준 도서목록 중 한권을 읽고 써서 내는) 숙제도
기꺼워했다.
그러다 어느 날 잡지 (연예계 소식과 가십을 주로 싣던 ‘선데이 서울’류의)를 읽다가
기사 말미에 적힌 ‘프리랜서 000기고’ 라는 말을 보게 됐고, 그 뜻을 사전에서 찾아보고는
단박에 매료되고 말았다. ‘프.리.랜.서’ 입안으로 굴려보니 왠지 간지럽기도 하고
듣기에 퍽이나 멋있어 보였다.
‘ 난 커서 프리랜서가 되야지 ’
밑도 끝도 없는 내 꿈이 시작이었고,
내 글쓰기 인생의 시작이었다.
돌이켜 보면 내가 글쓰기에 흥미를 잃지 않게 된 포인트가 곳곳에 있었다.
첫 번째는 중학교 3학년 때였다.
그 시절 무슨 일이었는지 학교 시험에 주관식이 꽤나 큰 포지션을 차지하고
있었고, 중학교 3학년 중간고사 쯤이었나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시험이
치러졌다. 국어 선생님은 무슨 생각이었는지, 국어시험에 자기이름을 소재로
짧은 글짓기를 포함시켰다. 우리 학교가 공립이었기 때문에 가능했었는지,
지금처럼 시험성적에 예민하지 않았던 시절이었기에 가능한 실험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파격적인 시험에 아이들은 모두 당황했다.
나도 마찬가지였으나 글쓰기에 나름 자신감이 넘쳤던 난 나름 수월하게 시험을 치뤘다.
그리고 시험결과 발표 날.
아이들은 모두 입을 모아 선생님에게 100점이 가능한 시험이었냐 불만어린
항의를 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전교에서 단 1명 100점이 나왔고, 그게 바로 나였다.
그 일은 철없는 사춘기 소녀에게 자만심을 불어넣기에 충분했다.
그러다 중학교 졸업을 앞두고, 담임 선생님이 반 아이들 글을 모아 기념 문집을
만들 것을 제안했다, (그 시절엔 그런 게 유행이었던 것 같다)
난 편집위원으로 뽑혀 선생님과 함께 반 아이들이 제출한 글을 읽고
문집을 꾸미는 일을 맡게 됐다. 아이들은 대부분 성의 없이 숙제처럼 글을 냈기에
내용은 거기서 거기 특별할 게 없어 보였다.
설렁설렁 아이들의 글을 읽어 갔다. 그런데 한 친구의 글을 마주하고 난 가슴이
두근거리는 걸 느꼈다. 눈에 잘 띄지도 않고, 적당히 얌전하고 적당히 유쾌했으면 성적도
고만고만해서 평소엔 큰 존재감이 없었던 아이.
그 아이의 글엔 몇 해 전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기억과 장례를 치루면서 느꼈던
감정들이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너무나 절절하게 담겨 있었다.
내 글이 기승전결에 맞춰 얘기를 조리 있게 펼치는 정도라면
그 아이의 글은 내 눈에도 사람을 움직이는 힘이 있었고,
그 아이가 아버지가 흙에 묻히는 것을 보며 눈물 흘리는 장면에선 같이 울게 만들었다.
‘어떻게 이런 글을 쓸 수 있었을까?’
물론 그 나이에 쉽게 할 수 없는 경험이 그 아이의 마음을, 글을 깊게 만들어줬을 것이다,
하지만 난 읽었던 많은 책속에서도 쉽게 느낄 수 없었던 충격을 받았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글
나도 그런 글을 쓰고 싶어졌다.
하지만 그 후로 고등학생이 됐고, 여전히 학교에서 소소하게
주최하는 글짓기에서 수상을 하긴 했지만 예전처럼 교과서가 아닌 책들을 파고 들 수
없었고, 글을 쓴다는 행위는 짝사랑을 시작하면서 일기장에나 적는 잔뜩 과장되고, 멋을 부린
남이 볼까 부끄러운 그런 것들 정도에 그쳤다.
그렇게 다시 몇 년. 대학생이 됐고, 민주화 운동이 한참이던 시절,
숙제처럼 사회과학 서적들을 읽고, 친구들과 독서토론을 하는데 몰두하느라 문학적인 관심은 저 멀리 던져져 버렸다.
그러다 대학교 4학년이 됐고, 취업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마주하게 됐다
내가 1순위로 생각한 건 언론사 기자였다.
어릴 적 꿈처럼 프리랜서는 아니지만 글로서 사람들을 만나는 직업은 여전히 내게 매력적이었고, 사회과학을 전공한 나와 많은 친구들이 기자를 꿈꿨다.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당시 기자는 꽤나 인기직종이었고, 기자가 되기 위해 치르는 입사시험은 ‘언론고시’라고 불릴 만큼 어렵다고 소문나 있었다.
같은 시험을 준비하는 친구들은 삼삼오오 스터디를 조직했고, 친구들을 통해 다양한 소문과
정보들이 귀에 들려오곤 했다.
그때 들었던 얘기 중에 흥미로운 것이 있었다
사실인지 떠도는 ‘ ~ 카더라’ 식 풍문이었는지는 알 길이 없지만 그 얘길 들었을 때 느꼈던 가벼운 충격은 아직도 재밌는 기억으로 남아있다.
소문은 이랬다.
4대 중앙일간지 중 한 곳의 입사시험에서 논술 문제로 ‘땅’ 이라는 한 글자가 주어졌다고 한다. 그걸로 뭘 구체적으로 쓰라고 했는진 모르겠지만 아무튼.
기자를 꿈꾸던 대부분의 응시자들은 부동산 문제를 주제로 글을 썼다고 한다
그런데 1등을 한 응시자는 이런 식으로 썼다고 한다 (정확히는 기억나지 않지만 내용은 이랬다)
“땅!”
‘안중근이 이토히로부미를 저격했다.... 불라불라불라’
그저 전설처럼 내려오는 얘기였는지 모르지만 나에겐 좀 충격이었다.
난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부동산 문제라고 생각하는 축에 속했고,
창의력까지는 아니더라도 내가 특출난 인재는 아니구나 하는 현타가 왔달까....
아무튼 그래서, 같은 글쓰기라도 창작보다는 있는 사실을 제대로 옮기고, 주장하는
글을 쓰는 게 내 적성에 맞겠단 생각으로 언론사 입사를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언론고시라는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나는 1차 필기시험조차 합격하기 힘들었고,
보다 쉬운 취업을 위해 여성 월간지 기자 모집에 눈을 돌렸다.
거긴 필기시험이 없었고, 자기소개서와 면접이 중요하다고 했다.
자기소개서.
인터넷은 커녕 컴퓨터도 흔하지 않던 시절, 그 ‘자기소개서’를 어떻게 써야할지
막막함에 같이 지원하기로 했던 친구와 같이 서로 어떻게 썼는지 피드백을 주고받기로 했다
그런데.. 난 친구의 자기소개서를 읽고 다시 절망했다.
- 2편에 계속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