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들지 못하는 세상

이제는 A.I .... 도대체 어디까지 배워야 하나?

by 딜레탕트 줌마

난 가끔 주변 지인들에게 이런 얘길 한다


‘ 우리가 죽고 한참 나중이 되면 역사 속에선 아마 우리가 살았던 이 시기가 격변의 시간으로

기록될 거야.. ‘


이런 얘길 하면 누군가는 이렇게 얘기한다.


‘ 조선시대에도 고려시대에도 다 자기가 사는 세상은 빨리 변한다 생각했을걸 뭐...’


그럴지도...

누가 맞고 틀리고의 문제가 아니라 그냥 내 생각일 뿐이니 그냥 그렇다 치자.

자 그럼 내가 살아오면서 뭐가 얼마나 변했는지 얘기해 볼까?

내 나이 때 사람들이 가장 먼저 떠올릴만한 건.. 컴퓨터다!!

그래 봤자 직업이 글을 쓰는 거다 보니 거창한 무슨 프로그램들 얘기가 아니라

그냥 한글작성의 변천사 같은 정도가 되겠지만

지난 35년 얼마나 많은 변화가 있었는지 돌아보다 내가 깜짝 놀랐다면?

이건 절대 과장이 아니다. 완전히 내 기준에서지만 말이다.



내가 컴퓨터란 걸 처음 접한 건 1991년 대학 4학년 때였다.

외국에서 막 학위를 마치고 강의를 시작한 전공 교수님이 리포트를 컴퓨터로 작성해 출력하고

플로피 디스켓과 함께 제출하라고 했던 것이다. 나와 우리 과 동기들 대부분은 그야말로 멘붕에 빠졌다.

그도 그럴 것이 그즈음 나를 비롯한 대부분은 컴퓨터 비슷하게 접해본 거라곤 학교 앞 오락실

테트리스 기계 정도가 전부였으니까...

나와 과동기들은 그때부터 학교 앞 복사가게에 타이핑을 돈 주고 맡길 것인가 아님 이공계 지인들의 도움을 받을 것인가 방법들을 찾아 나섰던 기억이 선명하다. 당시 플로피 디스켓이란 것도 손바닥만큼 큰

네모진 것에 가운데 도넛처럼 구멍 난 것이었는데 그걸 무슨 신줏단지 모시 듯 들고 다녔었다.

난 당시 이과계열 전공을 하는 친구네 집에 가서 밤을 새우며 내가 손으로 써주면 친구가 대신 타이핑을 해줘 리포트를 제출했었다. 그런데 그건 그걸로 그냥 끝이었다. 내가 또 컴퓨터를 만질 일은 대학 졸업 때까지

없었으므로...



그러던 나에게 컴퓨터가 정복해야 할 산으로 다가온 건 졸업을 앞두고 시작한 아르바이트 때문이었다.

이곳저곳 취직 시험에서 떨어지며 취업 재수를 고민하고 있었던 난 우연히 과방에서 만난 후배로 부터

방송국에서 아르바이트를 같이 하자는 제의를 받았다.

자료조사와 잡일을 하는 거라고 했다.


‘ 그래 일단 서너 달 아르바이트비를 모아 취업재수를 하자’


결심하고 아무것도 모른 채 아무 생각 없이 발을 디딘 곳. 거기는 막 생긴 스브스 방송국이었다.

당시 방송국은 KBS와 MBC 뿐이었다. 그런데 SBS라는 새로운 방송이 생겼다니 신기하다는 맘 하나로

그냥 시작한 일이었다.

그런데 방송국 그곳에 컴퓨터가 있었다.

내가 보기론 쓰는 사람은 거의 없는 상태로 놓여있었지만 아무튼 사무실 한구석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이 기계가 쓰이는 일은 일주일에 단 한번. 방송 전날 메인 작가가 손으로 쓴 원고를 가져오면

그 밑에 서브 작가가 그 원고를 다시 컴퓨터로 쳐서 출력하고 mc와 스텝들에게 복사해서 돌리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 프린터가 또 요즘의 것과 달라도 너무 달랐다. A4용지 같은 게 아니었고, 무슨 전산용지 같은 게

줄줄 나오면 점선에 맞춰 좍 뜯는 시스템. 그걸 복사기에 넣어 A4용지로 복사해야 했던 거다.

그런데 어느 날 나에게 원고를 컴퓨터로 다시 옮기는 작업이 맡겨졌고, 그나마 젊은 피인 내가

학교에서 리포트 쓸 때 딱 한번 구경했단 경력을 무기 삼아 그야말로 피아노 배우듯 자판을 보며

독수리 타법을 시작했다.

당시 컴퓨터는 윈도우도 없었고, 한컴오피스도 없었다.

그냥 파란 바탕에 커서가 깜빡이면 명령어를 일일이 쳐야 했다면 지금 아이들은 그게 머릿속으로 상상이나

될까?

아무튼 그렇게 컴퓨터에 손을 댈 수 있게 된 것 만으로 마치 대단한 커리어 우먼이라도 된듯한 착각이 들 무렵 내게 컴퓨터가 얼마나 대단한 물건인지를 실감 나게 하는 엄청난 사건이 벌어졌다.

컴퓨터의‘ㅋ'자도 모르던 나에게 신세계를 열어준 사건은 바로

‘kinds(한국 언론 재단 구축 종합 뉴스 DB)의 발견이었다.

당시 (1992년) 자료조사는 도서관을 쫓아가거나 방송국 자료실에서 들기도 무거운 신문철을 뒤지는 게

기본이었다. 그렇게 보면서 일일이 복사기로 들고 가 복사하거나 메모하거나..

그런데 옆 프로그램 PD분(당시 상당히 젊은 신입사원이었던 걸로 기억되는)이 컴퓨터에 ‘kinds’란 명령어를 입력하고 내가 찾고 싶어 하는 검색어를 통해 신문기사들을 한자리에서 주르륵 볼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준

거다. 그야말로 ‘유레카’가 아닐 수 없었다.

윈도우도 인터넷도 없었기에 화면에 일일이 명령어를 입력하고 느린 속도를 기다리고,

파란 화면에 가독성과 상관없이 펼쳐지는 흰 글씨를 보는 게 눈도 아팠지만

어쨌든 컴퓨터 앞에 앉으면 뭐라도 된 듯 으쓱해지는 기분을 느낄수 있었기에 꽤나 열심히 이용했던 기억이 난다. 비록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작업이 수작업으로 이뤄지고 있었지만 말이다. 예를 들면 이런 거라고 할까? 방송 직전 원고 수정이 나오면 일일이 원고를 수정액으로 지우고 손글씨로 채워 넣거나 다른 종이에 쓴 조각 원고를 찢어부치는 수고를 해야 했다는.. 지금 그런 장면이 떠오르거나 상상이 되는 사람은 요즘 말로 '옛날 사람' 일지도..



어쨌든 그때 이미 난 컴퓨터가 내 삶에서 빠질 수 없는 존재가 될 거란 걸 예감하고 있었다.

그렇게 발을 들여놓은 후 컴퓨터의 매력에 한껏 빠지게 된 건 ‘천리안’이니 ‘ 유니텔’ 이니 하던 컴퓨터 통신 덕이 컸다. 얼굴도 모르는 사람과 채팅을 하는 재미가 쏠쏠했기 때문이다.

사실 겁이 많아 개인적인 얘기를 나누기보다는 영화 퀴즈를 내고 맞추는 식의 단체 채팅방에

빠지는 게 더 많았지만...

그 시절 컴퓨터는 한자리에 고정돼서 움직이기 힘든 물건이었다.

그러다 컴퓨터 비슷한 물건을 들고 다니며 글을 쓰는 사람을 보게 됐다.


‘앗! 저건 무엇에 쓰는 물건이지?’


그 물건은 바로 ‘워드프로세서’라는 물건이었다.

모니터가 아니라 작은 액정 창에 쓰는 글이 타이핑돼서 보이고 출력을 하려면

한때 거의 모든 팩스에 사용되던 두루마리처럼 말린 ‘감열지’라는 종이를 넣어야 하는 그런 물건이었다.

처음엔 세상에 이런 물건이 하며 침을 흘렸지만 가만 지켜보니 그러기엔 너무 불편해 보이는 점이 많았다.

그걸 쓰느니 그냥 손으로 쓰는 게 훨씬 빠르겠단 생각을 속으로 했었다.

그리고 얼마 되지 않아 흑백 모니터의 노트북이 등장했다!

이게 물건이었다. 들고 다니며 글을 쓸 수 있었고 랜선만 있으면 컴퓨터 통신도 됐고,

프린터 선만 꽂으면 프린트도 됐다. 와우!

단지 문제라면 가격이 20여 년 전 가격으로 150만 원 정도였다는 것.

하지만 난 과감히 투자했고 (당시 한달에 겨우 50~100만원 정도를 벌었으니 대단한 투자였다)

기대와 달리 겨우 1,2년 잘~ 썼다.

이 고가의 물건을 미련 없이 던져버리게 된 건 윈도우의 등장이었다.

사실 그전에 꽤나 유명했던 여성잡지사에서 잠시 객원기자로 일할 때 애플컴퓨터를 접했었는데

이상하게도 화면에 휴지통이니 하는 것들이 있어서 쓰기가 생소했던 기억이 있었다.

윈도우는 그 비슷하면서도 훨씬 사용하기 편하게 느껴졌다.

마우스라는 걸로 따닥 치면 켜지는 새로운 화면들 그 매력에 어떻게 안 빠질 수 있었겠나?

더구나 그러면서 온갖 종류의 화려한 게임의 세계가 펼쳐졌는데 말이다.

아무튼 그즈음 방송작가들의 작업에 컴퓨터와 한글 프로그램이 필수조건이 되어갔고

다양한 브랜드의 컴퓨터와 노트북들이 내손을 거쳐가게 됐다.

그러다 다시 한번 내가 컴퓨터에 입을 딱 벌리게 된 건. 바로 영상편집 기능과 동영상 플레이 기능이었다.

방송원고는 기본적으로 영상을 바탕으로 써지는 영상을 위해 존재하는 글이다. 그러다 보니 그전에는 편집된 영상을 보기 위해 편집기가 있는 방송국에서 밤을 새우는 일이 부지기수였다 거기서 조금 진화된 것이 편집된 영상을 집에서 볼 수 있도록 비디오테이프로 카피해 가져가는 것이었다. 물론 얼마 안돼 영상을 파일로 보내주는 게 가능해졌지만 다운로드 시간과 에러 확률 때문에 비디오테이프를 한동안 선호했던 기억이 있다.

그 후 cd, dvd. usb를 차례로 배워야 했고, '비디오 테이프가 뭐예요?' 하는 세상을 지나.

메일로 영상을 받아서 한쪽엔 영상을 플레이시켜놓고 한쪽엔 한글 프로그램을 띄우고 실시간으로

보면서 원고를 쓰기에 이르렀다.


'참 세상 따라잡아 가며 사는 게 만만치 않구나... '


그때나 지금이나 한결 같은 생각이 따라온다

그 와중에 ‘삐삐’에서 벽돌폰 폴더폰, 스마트 폰까지 등장하면서 난 그야말로 끊임없이 새로운 걸 배워야

했고, 지금도 눈 팽팽 돌아가게 변하는 세상에 발맞춰 나가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돌아보면 난 늘 새롭게 변하는 세상을 따라잡기 위해 아니 뒤쳐지지 않기 위해 무언가를 끊임없이 배워야만 했다. 그리고 그건 경제적으로 시간적으로 나에게 많은 희생을 요구하는 일이기도 했다.


얼마전 만난 대학친구가


'AI 관련 전공 박사과정을 다시 하기로 했어'


라고 말했을때, 난 아득해지는 기분과 함께 혼잣말처럼 이렇게 말했다.


" 이젠 그만 배우고 싶어 "


내 나이 낼모레 예순.

혹시나 키오스크 앞에서 버벅이는 아줌마로 보일까 전전긍긍하는 내 앞엔

아직도 하루하루 배워야 할 것들이 쌓여만 간다.

물론 안 배운다고 죽는 것도 누가 날 손가락질하지도 않을 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과 소통하며 살기 위해

난 오늘도 내가 배워야 할 것들을 생각하며 맘이 바빠진다.

잠들지 못하는 세상이 그렇게 날 깨어있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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