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운동을 시작하다

수영? 살도 안 빠지는데 뭐 하려 해?

by 딜레탕트 줌마

난 50년 넘게 살아오면서 초등학교 이후 단 한 번도 남들 눈에 날씬했던 적이 없었다.

‘통통’에서 ‘뚱뚱’까지를 넘나들며 젊은 시절엔 다이어트가 늘 지상최대의 난제였다.

2,30대는 안 해본 다이어트가 없을 정도로 끊임없이 도전했지만 결과는 실패였고,

40대를 넘어서면서부터는 일정 체중만 넘지 않기로 작전이 바뀌었다.

이마저도 해를 거듭할수록 기준이 상향조정되고 있다는 게 문제지만 말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운동 역시 손 안 대본 게 없을 정도로 남들 한다는 거 많이도

도전했었고, 남은 건 각종 용품이었다.

4년 전 살던 주택에서 아파트로 이사를 하면서 창고에 방치했던 운동 관련 용품들을

정리하려 보니, 말문이 막혔다. 테니스, 배드민턴 라켓부터 검도복에 죽도, 스키,

각종 헬스기구까지 돈도 아까웠지만, 새삼 내 미천한 인내력과 끈기, 더불어 허영까지

확인하는 것은 결코 기분 좋은 일이 아니었다.

그렇게 용품들을 폐기 처분하면서 웬만하면 걷기 운동 말고는 도전하지 말자고 결심했고,

아파트로 이사한 후 일주일에 한두 번 단지 내 산책로를 걷는 게 운동의 전부가 됐다.

그런데 이즈음 생각지도 못한 문제가 생겼다.



갱년기였다. 정신적, 육체적으로 너무 많은 변화가 찾아왔다.

그 변화 중 가장 괴로운 것이 체중 증가와 불면이었다.

이제까지 불면증은 상상으로라도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갱년기 증상과 함께 찾아온 불면증은 너무 심각했고, 수면제 처방을 받아야 할

지경에 이르렀다.

급속도로 늘어나는 뱃살과 심각해지는 불면에 뭔가를 해야만 했지만, 30년 넘게 해 왔던 일까지 그만두면서

난 무기력증에 빠졌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때 정수기 관리를 하기 위해 두 달에 한번 방문하는 코디분과 얘기를 나누다 솔깃한 얘기를 듣게 됐다.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지자체에서 저렴하게 운영하는 수영장이 있다는 것이었다.


사실 수영은 이미 배운 적이 있었다.

대학교 1학년 때 교양체육으로 수영을 해야 한단 얘길 듣고, 입학하기 전 겨울에 1달 정도 배웠었다.

그리고 입학해서 한 학기 동안 1주일에 한번 체육시간에 수영 수업을 들었었다.

자유형 간신히 25m, 배영 떠 있는 정도 실력이었던 것 같다.


‘ 그래 아예 처음부터 배우는 것도 아니고, 자전거처럼 몸이 어느 정돈 기억할 거야... ’


하는 생각과 나이 든 사람들에게 관절에 무리 안 가는 운동이란 말에

난 12월의 추운 겨울 깜깜한 새벽에 오픈런 수강신청을 감행했다.

알고 보니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수영강습이 인기가 많아서, 처음 신청할 땐 마감되기 쉬워,

새벽부터 줄을 선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어렵사리 수강신청을 마치고 드디어 시작된 수업.

평일 오전 10시 반은 대부분 주부들뿐이었고, 나보다 나이 많은 분들도 꽤나 많았다.

처음 수업을 시작하면서 다행이었던 건 30년 전 기억으로 물에 대한 거부감이 없다는 거였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수영은 자전거와 달랐다.

내 몸은 전혀 수영을 기억하지 못했다!!



물에 뜨는 것부터가 도전인 기초반에서 난 뭐가 다르다고 좀 뻐기고 싶은 마음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마음과 달리 난 그냥 뜨는 거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킥판 잡고 발차기는 두세 번만 가면 일어서야 했고, 팔 돌리기는 호흡이 안 돼

숨을 참다 참다 허우적대고 일어서며 물먹기 일쑤였다.


‘아.. 수영도 내 갈 길은 아니었던 건가..?’


일주일에 3번 월수금 강습. 딱 그 세 번 만에 슬슬 회의가 들기 시작했다.

그때 한 번도 상상해 보지 못한 일이 생겼다.

같은 반 회원 중 한 명이 다가와 단체 카톡방을 만들게 전화번호를 달라는 거였다.


‘왜 필요하지? 언제 그만둘지 모르는데 알려줘야 하나...? ’


망설임은 잠시


‘그래 뭐 여기도 뭔가 공지사항 같은 게 있을지도 모르니까’


난 전화번호를 알려줬고, 바로 그날 그 단체방의 쓰임새를 알게 됐다.

내게 전화번호를 물었던 회원이 0월 0일 강습 끝나고 밥을 사겠다며

참석 가능한 사람이 몇 명인지 물어왔던 거다.


‘ 뭐지? 이게 말로만 듣던 선거운동인가? ’


당시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있었기에 의심할 만했다.

그게 아니더라도 평소의 나로선 두 번 생각할 것도 없이 거절할 일이었다.

그래서 별일도 다 있다며 지나가는 말로 남편에게 얘기했더니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다.


“ 한번 나가보지 그래? 대학동창 몇 명, 일하면서 사귄 동료 몇 명 말고,

전혀 다른 인간관계를 맺어 볼 때도 되지 않았어? ”


그랬다. 난 20대 후반 본가에서 독립한 이후 옆집 사람이 아는 척하면 이사 갈 때가 됐구나 생각할

정도로 극소심에 어디서나 ‘아싸’를 자처하는 성격이었고,

결국 인간관계는 얄팍하기 짝이 없는 상태였다.

물론 오랜 시간 사귄 친구들은 용건 없인 절대로 안부 전화 한 번 하지 않는

내 성격을 잘 알고 있기에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새로운 친구를 사귀기엔 참 허들이 높은 성향임을 나 자신도 잘 알고 있었다.

이런 내가 나이 때도 제각각에 이름도 성격도 모르는 생판 처음 보는 이들과 친목도모를 한다니...

과연 가능할까?

게다가 내가 수영을 시작했다고 했을 때 들려온 얘기들은 이런 모임을 색안경 쓰고

보게 만드는 것들이었다. 텃세가 심하다, 왕따 당해서 그만두는 사람도 있다,

때마다 강사들에게 돈을 걷어 선물을 한다 더라 등 등


'내가 잘 해낼 수 있을까? '


몇 날 며칠의 고민 끝에 난 용기를 내보기로 했다.

이유는 단 하나!

수영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배우는데 이런 친목 모임이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거였다.

만나면 안부를 묻고, 수영하다 부딪힐 때 웃으면서 사과하고, 남들 다 잘하는데,

나만 뒤처져 좌절할 때 같이 못해서 서로 위로가 돼주는 사람이 있다면...

수영, 이거 중도에 때려치우지 않고, 좀 더 오래 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그런 목적을 가지고 생전 처음 동호회 같은 친목 모임에 첫발을 내디뎠다.



모임은 생각보다 많이 괜찮았다.

나보다 열몇 살은 어린 친구부터 열몇 살은 많은 언니까지

다양한 나이에 전업주부도 있었고, 직장인도 있었고, 아르바이트생도 있었다.

지나치게 사적인 대화보다는 수영과 운동에 대한 얘기가 주를 이뤘고,

각자 1/N로 부담 없이 계산하고, 한 달에 한번 날을 정해 수영이 끝난 후

주변의 맛 집을 찾아 식사를 하기로 했다.

난 모임이 끝난 후 집에 돌아와 남편에게 이러쿵저러쿵 조잘조잘 모임에 대해 수다를 떨었고

남편은 생각보다 괜찮았나 보다며 꾸준히 만나보라고 권하기까지 했다

그렇게 3개월 정도는 무난히 흘러갔다.

수업시작 시간보다 1,20분 먼저 만나서 인사도 하고,

수영 강습 중에도 잠깐씩 쉬는 시간마다 실없는 수다도 떨고

수영도 아주 조금씩 늘고 있었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일이 기다리고 있었다.


일정 시간이 지나자 개인 간 수영 실력 차이가 뚜렷해졌고,

누군가는 중급반으로 올라가고, 누군가는 계속 초급반에 머물러야 한다는 것이었다.

사실 그동안 강사선생은 계속 수영 실력에 따라 앞에서부터 줄을 세우곤 했는데,

난 늘 거의 맨 뒷자리 쪽에 서서 남들한테 민폐만 끼치지 말자 허우적대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도대체 다 같이 계속 갈 거란 생각은 어떻게? 왜? 하고 있었던 걸까?

난 이토록 여전히 세상이치에 어두웠고, 아주 당연한 일조차 예측하지 못할 만큼 우물 안 개구리였다.

한마디로 나이를 헛먹었다 자조했다


난 당연히 초급반에 머무는 쪽에 해당됐다.

그래도 나와 같이 머무는 멤버들이 여러 명 있어 이때까진 큰 타격감이 없었다.

하지만 곧 현타가 오기 시작했다

새롭게 등록하고 들어온 초보자들과 강습을 받게 됐는데, 그래도 몇 달 먼저 시작했다고

처음엔 줄 앞에 서 있다가, 얼마 못 가 또 뒤로 뒤로 점점 밀려나기 시작한 것이다.

나의 저질 체력과 운동능력에 좌절해야 했다.


‘ 아무래도 수영에 소질이 없나 봐. 살도 안 빠지고, 빠지긴커녕 입맛만 좋아져서

살이 더 찌는 거 같아’


그만 포기할까 싶었던 그때 내 귀에 들려온 얘기들은 또다시 내 맘을 붙들었다


‘누구누구는 월수금 강습 외에 화목도 강습을 듣는데’

‘누구는 수영장 쉬는 날 다른 동네 수영장을 찾아가서 연습한데’


다들 그렇게 열심히 하니까 잘하는 거였다.

그러니 그들처럼 열심히 하지 않은 난 이 정도면 된 거 아닐까?

마치 학창 시절 붙박이처럼 앉아 공부하는 1등을 보며

놀 거 놀면서 10등 안에 드는 아이가 잘난 체하는 꼴이었지만

은근슬쩍 내 맘이 나에게 타협을 해왔고, 난 수영을 그만두고 싶은 유혹에서 쉽게 벗어났다.


근데 이상도 하지.

기껏 취미 생활일 뿐인데..

운동을 좋아하는 편도 아닌데..

굳이 남들과 비교해 가며 잘하고 싶은 생각은 더더욱 1도 없었는데...

나 스스로를 설득할 핑계를 찾고 찾아가면서까지

왜 수영을 그만두고 싶지 않은 거지?


시간이 흐르면서 남들은 수영이 좋다 못해 수영에 미쳐 ‘수친자’로 거듭나곤 했지만

나에겐 여전히 정해진 월수금 그룹수영 말고는 더 이상은 무리였다.

그나마도 다양한 이유로 빠지고 나면 한 달 수업 시간 중 3분의 2 정도 출석이

최선이다. 물론 중요한 이유는 게으름과 체력이슈

그런 와중에도 어느덧 수영을 시작한 지 1년 반이 넘어가고 있다

처음 같이 시작했던 이들은 상급반을 거쳐 고급반으로 넘어가고 있었지만

난 중급반에서 ‘고인 물’이 되었다.

물론 나와 비슷한 처지의 동료들이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그들은 나보다 훨씬 나이가 많거나, 애초에 물 공포증 극복부터가 문제였던 이들이었다.

객관적으로도 난 수영에 그다지 재능이 없는 게 분명하다.

게다가


‘어느 유부남 강사가 미혼 회원과 바람나서 그만뒀다고 하더라’

‘어느 반은 강사 생일파티를 했다고 하더라’


등등 오래 다니다 보니 알아서 기분 좋지 않고, 알 필요도 없는 얘기들까지

본의 아니게 알게 되곤 했다.

이것 역시 내가 별로 즐기지 않는 것이기에

내 의문에 힘을 더한다.

난 왜 수영을 그만두고 싶지 않은 거지?

아니 내 생애 처음 이토록 꾸준히 하게 된 운동이 왜 수영인거지?

생각에 생각을 거듭한 끝에 내가 찾아낸 기억..



1년 반 전 수영장에 발을 들이고, 물속으로 잠겼을 때

그 순간의 느낌을 여전히 난 매번 수영장을 갈 때마다 느끼고 있었고,

아마도 그 느낌이 내 무거운 발을 수영장으로 이끄는 게 아닐까 생각하게 됐다.

살면서 그동안 해봤던 수많은 운동들은 머릿속을 비우고 나에게 집중하는데

이만한 운동이 없었던 것 같다.

러닝 머신 위를 걸을 때도, 골프를 칠 때도,

에어로빅이나 요가를 하면서도 늘 머릿속엔 복잡한 계산이 있었고,

남들의 시선까지 의식되는 일도 많았다.

하지만 수영은 달랐다.

머리까지 물속에 잠겼을 때, 그 느낌은,... 그 건


완벽한 고요.

완벽한 단절.

내 호흡에만 집중하고, 내 머릿속이 텅 비어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 아주 짧은 순간이

가져다주는 쾌감이었다.


그러니까 난

하루 종일 쉴 틈 없이 머릿속을 떠도는 많은 생각들과

날 지치게 하는 온갖 감정들에서 벗어나는 시간

아주 찰나의 시간이지만 그 순간이 가져다주는 평화로운 느낌을 놓치고 싶지가 않았던 것이다.

수영은 나에게 어쩌면 도피일 수도 있겠지만

어쩌면 아무도 모르는 아주 솔직한 ‘나’와 만나는 대면이고

나만의 명상이었나 보다.


그래서 난 평생의 숙원사업인 다이어트에 큰 도움도 되지 않는(내 부족한 노력과 재능 탓이지만)

수영을 사랑하게 됐고, 수영은 날 덜 불행하게 만들어주는 내 인생의 운동이 되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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