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하냐고? 아님 불행하냐고? 그 답을 찾아 나선다
마지막 퇴근길이었다.
늘 그랬던 것처럼 습관적으로 라디오를 켜고 DJ의 우스개 소리와 가요를 들으며 운전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입고 있던 티셔츠 앞자락으로 '툭' 물 한 방울이 떨어졌다.
그다음은 '후드득'. 눈앞이 뿌예졌다.
당황스럽게도 난 울고 있었다.
프리랜서로 30년 넘게 해 온 일을 그만두는 날이었지만 오래전부터 예상하고 있었던 일이었고
한사무실, 건물에서 오랫동안 같이 일했던 이들도 아니고, 프리랜서라는 성격상 잠시 같이 일했던
동료들과 가볍게 작별인사를 하고 주차장에서 차를 몰고 나와 집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50대 후반의 나이
이제 이일을 끝으로 나를 찾는 곳이 있을 확률은 거의 제로.
내가 나서서 애써 이곳저곳 일을 찾기도 애매한 나이였다.
그래서 이 길이 마지막 퇴근길이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었다.
시원섭섭했다. 딱히 내 직업을 사랑했다기엔 늘 생활을 위한 방편이라는 생각이 우선했기에,
이제 끝이라는 생각에도 뚝 끊어질 수입이 걱정이면 걱정이었지, 미련은 딱히 남지 않았다.
그런데 막상 난 어느 순간 울고 있었다.
나 혼자 타고 있는 차 안이었지만, 행여 누가 볼세라 눈물을 훔치는데 혼잣말이 나왔다
" 왜 이래.. 쪽 팔리게... 네가 얼마나 이일을 좋아했다고 이제 와서... "
하지만 한동안 눈물은 멈추지 않았고, 그 끝에서야 인정하게 됐다.
내가 좋아하던 일을 못하게 됐다는 걸,
지겹다 지겹다 하면서도 일을 하는 동안에는 행복해했었다는 걸,
그래서 그 끝에서 말도 못 하게 슬퍼하고 있다는 걸.
한 동안은 아무렇지 않은 척 연기를 했다.
놀고먹으니까 좋네..
그렇게 아무렇지 않은 척 정말 베짱이처럼 열심히(?) 놀고먹고 자고 했다
생전 보지도 않던 유튜브 동영상에 빠져든 것도 그즈음부터였다.
가슴 한구석 허전함이란 말로는 미처 설명하기 힘든 감정을 잊으려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봤다.
하지만 난 아무도 모르게 불행했다. 매일.
그러던 어느 날 예전에 봤던 오디션 프로그램 영상을 무심코 눌러보다가,
뜻밖에 얘기를 듣게 됐다. 뒤통수를 맞은 듯 띵했다.
내게 충격을 준 그 말은 오디션 프로그램에 심사위원으로 나온 한 가수의 심사평 중 나온 말이었다.
" 세상은 기본적으로 불행하다. 근데 덜 불행하기 위해 노력하는 게 인생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이 말의 끝에 심사위원이었던 그 가수는 눈시울을 붉혔다.
그를 울컥하게 만든 건 <Still Fighting It>이 라는 노래였다.
그 가사는 대충 이랬다.
Good morning, son
잘 잤니 아들아
I am a bird
아빠는 한 마리 새란다
Wearing a brown polyester shirt
갈색 셔츠를 입은 새
You want a Coke?
콜라 사줄까?
Maybe some fries?
감자튀김도 먹을래?
The roast beef combo's only nine ninety five
소고기 콤보는 9.95달러 밖에 안 하네
But it's okay
걱정하지 마
You don't have to pay
넌 돈 낼 필요 없으니까
I've got all the change
아빠한테 돈 있단다
Everybody knows
다들 알고 있지
It hurts to grow up
어른이 된다는 건 많은 아픔이 따른다는 걸
And everybody does
누구에게도 예외는 없지
It's so weird to be back here
아빠가 되어 이 자리에 서니 어색하네
Let me tell you what
이건 말해줄 수 있을 거 같아
The years go on and
세월이 흘러도
We're still fighting it
여전히 어른이 되기 위해 노력할 거란다
We're still fighting it
여전히 노력할 거라는 걸
And you're so much like me
너를 보면 내 어린 날을 보는 것 같아
I'm sorry
그래서 미안해
Good morning, son
잘 잤니 아들아
Twenty years from now
20년쯤 지나서
Maybe we'll both sit down and have a few beers
너와 함께 앉아 맥주 한잔하게 되면
And I can tell You 'bout today
오늘에 대해 말해 줄게
And how I picked you up
내가 갓 태어난 너를 어떻게 안아 올렸는지
And everything changed
그 순간 모든 것이 바뀌었다는 걸
It was pain
힘들었다고
Sunny days and rain
맑은 날도 있었고 궂은 날도 있었지만
I knew you'd feel the same things
언젠가 너도 같은 감정을 느낄 거라는 걸 아빠는 안단다
Everybody knows
다들 알고 있지
It sucks to grow up
어른이 된다는 건 고통이라는 걸
And everybody does
그 누구도 예외는 없지
It's so weird to be back here
아빠가 되어 이 자리에 서니 어색하네
Let me tell you what
이건 말해줄 수 있을 거 같아
The years go on and
세월이 흘러도
We're still fighting it
여전히 어른이 되기 위해 노력할 거란다
We're still fighting it
여전히 노력할 거라는 걸
You'll try and try
그렇게 계속 노력하다 보면
And one day you'll fly away from me
언젠가 아빠가 그랬듯이 너도 비상하게 될 거야
Good morning, son
잘 잤니 아들아
I am a bird
아빠는 한 마리 새란다
And you're so much like me
너를 보면 내 어린 날을 보는 것 같아
I'm sorry
그래서 미안해
[출처] Ben Folds - Still Fighting it(가사/해석)|작성자 흑형의소울
누구나 그렇듯 나도 늘 그렇게 행복해지려고 노력하고 애써왔다
하지만 늘 부족헀고, 늘 목말랐고, 그래서 불행해지곤 했다.
그런데 ‘불행’이 기본값이고, 덜 불행해지려고 애쓰는 게 인생이라고?
난 더 행복해지려는 노력보다 덜 불행해지는 하루하루를 쌓아가는 법에 대해
생각해 보기 시작했다
마음 한 켠에선 이렇게 속삭인다
‘ 말 장난해? 니 나이가 지금 몇인데, 철없는 방황도 아니고 부질없다. 부질없어..’
그러다 문득 또 이런 속삭임이 들린다
‘ 조금만, 아주 조금만.
어제 보다 오늘, 오늘 보다 내일 아주 조금만 덜 불행해지는 거. 나쁘지 않잖아?
어쩌면 조금 더 행복해지는 것보다 훨씬 쉬울지도 몰라’
그렇게 오락가락 하다가 타협한 것이 내 이야기를 써보자는 거였다.
늘 마감시간이 정해져 있고, 평가를 받아야 했으며, 생활을 위해 약속된 댓가를
기대하며 쓰는 글이 아니라
그저 누군가가 들어주지 않아도 상관없는 나만의 이야기를 쓰는 일.
그런데...
내 얘기를 쓰려니 막막했다.
내가 세상을 향해 하고 싶은 말이 있었나?
아니 그 전에 난 얼마나 솔직하게 내 이야기를 드러내 쓸 수 있을까?
용기가 필요한데, 그 용기가 없었다
오디션 프로그램들이 잘나가던 시절이 있었다.
화제성과 시청률을 모두 잡으며 오디션 형식의 프로그램들이 쏟아져 나왔었다.
난 이 오디션 프로그램의 매니아라고 해도 좋을 만큼 장르와 채널 상관없이
온갖 오디션 프로그램들의 편성표를 외우고, 그 시간을 기다려 시청했다.
뿐만 아니었다. 관련 동영상이 뜨면 그걸 찾아보고 재방송까지 또 보곤 했다.
한동안 성공 공식처럼 여겨졌던 오디션 형식의 프로그램들이 기록한 높은 시청률을 보면
나 같은 사람이 많았다고 짐작할 수 있다.
저마다의 이유가 있었겠지만
특별한 이유를 따지고 말고 할 것도 없이 공통의 조건은 ‘재밌으니까’ 봤을 것이다.
나도 오디션 프로그램이 그렇게 재밌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특정 출연자의 팬덤에 들어가거나 하다못해 전화투표에 조차 참여하지도
않았다.
그저 난 오디션 프로그램이 도저히 안보고는 못 배길 만큼 좋았다.
그러다 문득 내가 오디션 프로그램에 매료된 이유가 깨달음처럼 내 맘에 콱 박히는 순간이
있었다.
누군가 너무나 감동적인 노래를 부르는 장면도, 눈물어린 가정사를 털어놓는 장면도 아니었다
그건 누구도 알아주지 않아도 약속된 미래가 없음에도 자신이 하고 싶은 음악을 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모든 걸 받치는 이들의 간절함이었다.
긴장감을 이겨내고 무대 위에 서고, 심사위원들의 날카로운 비평을 온몸으로 마주하고
패배의 쓰라림에 눈물 흘리면서도 다시 계속할 용기를 이어가는 참가자들.
그들을 보며 웬지 모르게 가슴이 뜨거워졌고, 그 뜨거워진 가슴이 내게 질문을 던졌다.
‘ 난 무언가에 저토록 미쳐본 적 있었나? 저토록 뜨거웠던 적이 있었나?
저렇게 모든 걸 던질 정도로 원했던 게 있었나? ’
난 내가 가져보지 못한 그 ‘뜨거움’ 에 매료돼 오디션 프로그램을 보고 또 찾아봤던
거였다. 그들을 보며 그들의 뜨거움을 곁불 쬐듯 조금씩 느끼고 바라고 선망했던 거다.
난 지금도 쉽게 뜨거워지지 못한다.
원래 성격일수도 있고, 아님 남보다 다치기 쉬운 성정에 겁이 나서일 수도 있겠다.
결국 늘 후회했고, 후회했다.
그래서 지금이 마지막 기회가 될지도 모른다는 초조함이 나를 자꾸 내몬다.
당장 눈 앞에 놓인 많은 시간을 헛되이 보내면 안 된다는
내 인생에 남아 있는 시간이 얼마나 될지 자신 할 수 없는 물리적 나이가 됐다는 초조함.
30년 넘게 했던 일을 그만두고
1년여를 꼬박 방황하고 고민하다
이제 난 내가 하고 싶은 얘기를 쓰기로 했다.
그렇게 조금 덜 불행해지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