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18년간 사업을 하면서 늘 답답함을 느꼈다.
특히나 가까운 직원들, 그리고 업을 같이 하는 파트너들에겐 더욱 그랬고,
때로는 가혹하게 대했던 내 모습이 선명히 떠오른다.
지금은 다행히도 그때만큼 가혹함이나 답답함을 자주 느끼지 않는다.
나는 생각해 봤다.
이상하게도 내가 화를 내고, 답답해하고, 가혹했던 대상들이 늘 정해져 있었다.
바로 가족. 그리고 정말 가까운 동료들이었다.
나는 지금까지 10번 이상의 법인 설립과 폐업을 반복했고, 그만큼 많은 동업자들과 직원들과 함께했다.
그리고 그 속에서 늘 비슷한 패턴의 답답함이 반복됐다. 어느 날, 그 답답함이 나를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문득 깨달았다.
나는 제삼자에겐 화를 거의 내지 않는다.
화를 내지 않는 것이 아니고 그냥 화가 안 난다.
거래처, 처음 만나는 사람들, 외부 파트너들에겐 화가 나지 않는다.
이유는 간단했다.
나는 가까운 사람들을 나와한 몸처럼 여기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나를 대하듯이 그들을 대했다. 나는 나 자신에게 가혹한 사람이다.
그러니 나와한 몸이라 생각한 상대에게도 똑같이 가혹하게 군 것이다.
그래서 많은 동료들을 떠나보냈다. 그리고 그때마다 큰 상처를 받았다.
왜냐면, 나는 그들을 '또 하나의 나'라고 여겼기에
그들의 이탈은 곧 내 일부가 사라진 것 같은 상실감을 줬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가혹하고 답답한 리더로 나를 기억했을 뿐이다.
그래서 사업이 힘들어지고 수익이 떨어지면 그동안 쌓인 감정이 폭발하게 된다.
나에게 앙금이 쌓이고, 결국 이별이 찾아온다.
이런 경험은 나에게 너무나 괴롭고 고통스러운 반복이었다.
나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25년, 몇 달 동안 깊은 심리적 성찰을 했다. 그리고 한 가지 진실을 알게 되었다.
내가 나를 사랑하지 않으면, 내가 나에게 관대하지 않으면,
결국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도 가혹할 수밖에 없다는 것.
나는 진심으로 내 파트너들이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었다. 그건 100% 진정성이었다.
하지만 그 진정성은 상대에게는 숨 막힘과 부담감으로 전달됐던 것이다. 왜냐면, 나는 나에게도 그러했으니까.
숨을 못 쉬게 할 정도로 스스로를 몰아붙였던 내가, 나와 같은 사람이라 여긴 상대도 똑같이 대했던 것이다.
한 달 전, 또 한 명의 동료가 내게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형님… 저 그만하고 싶어요.”
표정은 지쳐 있었고, 눈빛에는 죄송함과 무력감이 가득했다.
예전 같았으면,
“그래? 이 정도도 못 버티냐?”
“그럴 거면 왜 시작했어?”
하며 내 감정과 실망감을 앞세워 몰아붙였을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나는 늘 나 자신에게도 그렇게 해왔으니까.
힘들어도 참고, 끝까지 해내야 한다고 스스로를 몰아세웠던 나였으니까.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그 친구는 내가 15년 넘게 지켜본 동생이자,
3년 넘게 매일 부딪히며 함께 사업을 만들어온 동료였다.
나는 그 순간, 예전처럼 내 감정을 앞세우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그래서 이렇게 말했다.
" 내가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꼭 너와 함께 성장을 같이 하고 싶다. 힘들게 해서 미안하다. "
그 말 한마디에 그의 어깨가 조금 내려가는 게 보였다.
그 말이 그에게 ‘버티라’는 강요가 아니라,
‘지금까지 함께한 시간에 대한 존중’으로 들렸다는 걸 느꼈다.
그리고 그 이후, 우리는 다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고, 이전보다 더 단단하고 건강한 관계로 지금도 같이 길을 걷고 있다. 그 마음이 전달되었다.
지금 우리는 과거보다 더 단단한 관계로 함께하고 있다.
가까운 사람에게 답답함을 느낄 때, 그건 상대의 문제가 아니라, 나의 태도와 기준의 문제일 수 있다.
그 사람은 나와 다르다. 나처럼 생각하지 않고, 나처럼 느끼지 않는다.
그러니 먼저 내가 나를 사랑하고, 나에게 관대해지는 것이 먼저다.
그럴 때 비로소, 내가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관계도 건강해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