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편] 현관문이라는 가장 높은 산

산티아고를 꿈꾸며, 방 안의 고립을 선택하다

by 소프트스토리룸

9편에서 산티아고를 가겠노라 호기롭게 선언했지만,

나의 현실은 여전히 침대 위,

혹은 사방이 막힌 거실 안이다.


화면 속 순례자들은 거침없이 대지를 딛고 서지만,

나는 현관문 너머에서 들려오는

이웃의 발소리에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사람이 무섭다.


정확히 말하면, 사람의 시선과

그 입에서 나올 화살 같은 말들이 두렵다.

8편에서 마주했던 그 추악한 위선들이

내 영혼에 새겨놓은 흉터는 생각보다 깊었다.


시장바닥 같은 세상을 뒤엎고 나왔지만,

정작 나는 그 소란으로부터 도망쳐

나만의 감옥을 만든 셈이다.


산티아고에 가려면 운동화 끈을 묶고

밖으로 나가야 한다는 걸 모르는 바 아니다.

하지만 나에게는 집 앞 공원을 한 바퀴 도는 것이

피레네산맥을 넘는 것보다 더 높은 산처럼 느껴진다.


일부러 운동화를 신고 나갈 용기는

아직 내게 없다.


그나마 나를 세상과 연결해 주는 유일한 끈은 강아지 산책이다.

녀석의 간절한 눈빛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몸을 일으킨다.


마지못해 집을 나설 때도

나는 모자를 깊게 눌러쓰고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다.

누군가와 눈이 마주칠까 봐 땅바닥만 보고 걷는 나의 산책은

'운동'이라기보다 '도망'에 가깝다.


사람이 없는 새벽이나 늦은 밤,

강아지와 함께 걷는 짧은 시간 동안 나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이런 겁쟁이가 정말 800km를 걸을 수 있을까?'

'현관문 하나 여는 게 이렇게 힘든데,

스페인의 그 낯선 길 위에 설 수나 있을까?'


우습게도, 이 깊은 고립 속에서 나를 버티게 하는 건

역설적이게도 다시 '산티아고 영상'이다.


방 안에서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하는 내가,

지구 반대편의 길을 무한 반복하며 본다.

그것은 망상이자, 동시에 생존을 위한 산소 호흡기다.


지금의 나는 광야에 서 있는 것이 아니라,

광야로 나가기 위해 방 안에서 떨고 있는 어린아이일 뿐이다.


주님은 이런 나의 비겁함도 알고 계실까.

밖으로 나가지 못해 거실을 서성이는 이 초라한 발걸음도,

언젠가 그 길 위에 닿기 위한 예비 연습이라 불러주실까.


나는 오늘 산티아고행 비행기 표 대신,

내일은 오늘보다 조금 더 당당하게

강아지와 산책할 수 있기를 기도한다.


현관문을 여는 그 짧은 순간의 공포를 이겨내는 것.

그것이 현재 나의 가장 처절한 순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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