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 신은 사랑이라는데, 왜 인간은 서로를 핥퀴는가
천안의 낯선 공기 속에 던져졌을 때,
처음 내게 다가온 교우들의 손길은 구원 같았다.
결혼 후 7년 동안 엄격한 신앙 교육을 받으며
"교회에서는 눈과 귀와 입을 조심하라"고 배웠던 내게,
낯선 이들의 과도한 친절은 때로
두려움이었으나 이내 안도감이 되었다.
동갑내기 집사들 넷이서 평일마다
밥을 먹고 차를 마시며 나눈 시간들.
나는 우리가 영혼의 깊은 곳까지 맞닿은
진정한 '사랑방' 식구라고 믿었다.
하지만 그 따스했던 온기는 채 1년을 가지 못했다.
어느 날부터인가,
함께 있을 땐 천사처럼 웃던 이들이
나와 단둘이 남겨지면 약속이라도 한 듯 입을 닫았다.
인사를 건네도 시큰둥한 반응,
눈을 맞춰도 서늘하게 비껴가는 시선.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하던 내게 돌아온 답은
서글프게도 지극히 세속적인 것이었다.
형편이 어려워 밥 한 끼 제대로 대접하지 못했던
나의 사정을 그들은 '이해'한 것이 아니라
'계산'하고 있었다.
가난한 성도의 진심보다
밥값 한 번의 지불 능력이 우선시되는 곳.
그곳은 성전이 아니라 그들만의 견고한 리그였다.
그렇게 본교회에서 13년을 버텼다.
찬양 사역자로,
안수집사의 아내로 묵묵히 자리를 지켰지만,
결국 그 불편함을 견디다 못해
분립 개척이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공동체를 찾아 떠났다.
그곳에서 2년 남짓 평안을 찾나 싶었을 때,
나를 외면했던 그 부부가 본교회에서 험한 말로 싸우고
쫓기듯 우리 교회로 오겠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왜 하필 내가 숨어든 이 작은 피난처까지 쫓아오려 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두려운 마음으로 목사님께 간청했다.
"그들이 오는 것이 너무나 고통스럽다"고.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비수처럼 꽂혔다.
"오는 사람 안 막고 가는 사람 안 잡는다."
그 말은 내게 이렇게 들렸다.
'헌금 잘하고 형편 좋은 성도가 온다는데,
가난한 안수집사 가정 하나 떠나는 게
무슨 대수냐'는 차가운 손익계산서로.
가장 낮은 자를 위해 문턱을 낮추었다는 교회는,
여전히 돈과 권력이라는
높은 담벼락을 쌓고 있었다.
귀한 직분보다 귀한 것은 지갑의 두께였고,
먼저 온 자의 눈물보다
새로 올 자의 헌금 봉투가 더 무거웠다 실감하는 순간,
내 안의 무언가가 무너져 내렸다.
사람의 눈빛이 무서워서,
그 '무례한 경건'의 위선이 가증스러워서
나는 그렇게 1년 넘게 교회 문을 열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나는 지금 교회 문밖,
가장 고독한 광야에서 다시 묻기 시작한다.
"하나님, 당신의 성전은 정말 어디에 있습니까?"
(고린도전서 3: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