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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함이 버거울 때

권태의 바다를 항해하는 예민한 당신에게.

by 조하나


알람이 울리기도 전, 의식이 먼저 수면 위로 떠 오르는 아침이 있습니다. 희미한 빛이 창문을 넘어오고, 세상은 아직 잠든 고요한 그 순간. 가장 먼저 느껴지는 것은 몸의 무게가 아니라, ‘오늘’이라는 하루 전체의 무게입니다. 아직 시작되지도 않은 하루의 일과와 의무, 만나야 할 사람들과 지어야 할 표정들이 하나의 거대하고 무거운 외투처럼, 눈을 뜨려는 내 위를 묵직하게 짓누르는 듯한 기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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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신히 눈꺼풀을 들어 올리면, 천장이 가장 먼저 시야에 들어옵니다. 어제와 똑같은 그 천장을 몇 초간 응시하며, 나도 모르게 깊은 한숨이 새어 나옵니다. 그것은 안도의 한숨이 아니라, 이제부터 ‘괜찮은 나’를 연기해야 하는 하루라는 연극 무대에 올라서기 직전, 막 뒤에서 내쉬는 배우의 한숨과 같습니다.


이상한 일입니다. 삶에 큰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오히려 모든 것이 순조롭고, 어제와 같은 평화로운 일상이 보장되어 있을 때, 이 막막함은 더욱 짙은 농도로 찾아오곤 합니다. 차라리 해결해야 할 명확한 위기나 문제가 있다면, 우리의 에너지는 그것을 향해 맹렬히 타오를 것입니다. 하지만 외부의 적이 없기에, 싸움의 방향이 온전히 나 자신을 향하기 때문일까요? 평안이라는 이름의 투명한 유리방 안에 갇혀, 그 안을 끝없이 배회하는 기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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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이 아침의 독백이 너무나 익숙하게 들린다면, 마치 당신의 마음속을 그대로 옮겨 적은 것 같다면, 가장 먼저 이 말을 건네고 싶습니다. 당신은 혼자가 아니에요.


당신이 느끼는 그 복잡하고 섬세한 감정의 결은, 이 세상의 수많은 ‘예민한 영혼’들이 평생에 걸쳐 함께 통과하는 비밀스러운 바다와 같습니다. 당신은 삶이 연주하는 교향곡에서 남들이 듣지 못하는 미세한 불협화음을 알아채는 섬세한 귀를 가졌을 뿐입니다. 그 예민함이 때로는 당신을 고통스럽게 하겠지만, 그것은 또한 당신이 가진 가장 큰 선물이자, 세상을 누구보다 깊이 이해하고 공감하는 창이 되어줄 겁니다.


이 마음의 부대낌, 이 평온의 가면 뒤에 숨은 권태의 얼굴을 제대로 마주하기 위해, 우리는 잠시 19세기 독일의 한 철학자의 서재 문을 두드려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의 이름은 아르투어 쇼펜하우어. 그는 인간의 고통을 그 누구보다 냉철하게 들여다보았지만, 그 시선 끝에는 깊은 연민이 서려 있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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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펜하우어의 진단: 우리 안의 ‘목마른 거인’과 시계추의 법칙



쇼펜하우어는 우리 모두의 내면에 결코 만족을 모르는 ‘목마른 거인’이 살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이 거인을 ‘살려는 의지(Will-to-Live)’라고 불렀습니다. 이 거인은 이성적인 존재가 아닙니다. 그저 맹목적으로, 끊임없이, 무언가를 갈망하고 욕망하며 우리를 채찍질하는 거대한 자연의 힘과 같습니다. 이 ‘의지’라는 거인 때문에 우리는 더 나은 내일, 더 큰 성취, 더 깊은 사랑을 찾아 헤매며 스스로를 소진시킵니다.


쇼펜하우어는 바로 이 ‘결핍과 갈망으로 인한 끊임없는 마찰’의 상태를 ‘고통’이라고 정의했습니다. 신호등이 빨리 바뀌기를, 답장이 얼른 오기를, 이 지겨운 하루가 끝나기를 바라는 아주 사소한 순간부터, 인생의 중대한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모든 과정이 사실은 이 ‘고통’의 범주에 속합니다.


자, 이제 그의 유명한 시계추 비유를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볼까요?


시계추의 한쪽 끝 ‘고통’ (끝없는 갈망의 마찰): 우리의 일상은 이 ‘고통’의 영역에 머물 때가 많습니다. ‘의지’라는 거인이 끊임없이 무언가를 원하며 일으키는 마음의 마찰열. 우리는 이 괴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행복이 저 반대편에 있을 것이라 믿으며 시계추를 힘껏 밀어 올립니다.


시계추의 다른 쪽 끝 ‘권태’ (자유의 현기증): 마침내 목표를 성취했습니다. 거인은 잠시 목을 축이고 잠잠해졌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일까요? 행복감은 신기루처럼 사라지고, 그 자리에는 낯선 감정이 고입니다. 바로 ‘권태’입니다. 쇼펜하우어는 이 권태의 정체를 ‘의지의 활동이 멈췄을 때 드러나는 존재의 공허함’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자유가 주어졌지만, 역설적으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자유의 현기증’. 모든 가능성이 열려있지만, 그 가능성의 무게에 짓눌려 한 발짝도 뗄 수 없는 무기력. 마치 완벽하게 방음 처리된 방에 갇혀, 세상의 모든 소음이 사라지자 윙- 하고 울리는 ‘존재 자체의 소음’(혹은 냉장고 소음)을 듣게 되는 것과 같은 섬뜩한 상태입니다.


결국 우리의 삶이란, ‘고통’이라는 뜨거운 마찰을 피했더니 ‘권태’라는 차가운 진공 상태에 갇히는 시계추의 영원한 왕복 운동이라는 것이 그의 진단입니다. 당신이 평안 속에서 느끼는 괴로움은, 바로 이 진공의 방 안에서 ‘존재의 소음’을 남들보다 먼저 알아채는 예민한 청력 때문입니다.


이 진단은 우리에게 절망이 아닌, 명확한 ‘지도’를 선물합니다. 우리는 이제 어디쯤에서 왜 헤매고 있는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이 시계추 위에서 조금 더 현명하게 춤추는 법, 이 권태의 바다를 순조롭게 항해하는 법을 배워볼 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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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태의 계절을 따뜻하게 건너는 4가지 항해술



이 시기는 싸워서 없애야 할 태풍이 아닙니다. 오히려 바람 한 점 없는 무풍지대와 가깝습니다. 이때는 거대한 돛을 펼치기보다, 작은 노를 저어 방향을 유지하고 해류의 흐름을 읽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1. 마음의 일기예보 관측하기: “오늘은 권태주의보” 가장 먼저 할 일은, 이 상태를 개인적인 실패로 여기지 않고, 마치 날씨처럼 관측하는 것입니다. 아침에 일어나 무기력감이 느껴진다면, 자책하는 대신 마음의 기상캐스터가 되어보는 겁니다. “아, 오늘은 제 마음의 상공에 ‘권태’라는 고기압이 머물고 있군요. 종일 무기력한 안개가 낄 예정이니, 무리한 활동은 삼가고 따뜻한 차를 가까이해야겠습니다.” 이렇게 나의 감정을 ‘나 자신’과 분리해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감정의 폭풍우에 휩쓸리지 않고, 담담하게 우산을 챙기는 현명한 관찰자가 될 수 있습니다.


2. 감각의 해상도 높이기: 아주 작고, 진짜인 것들에 닻 내리기 권태는 ‘삶의 의미’와 같은 거대하고 추상적인 질문의 안갯속에서 길을 잃게 만듭니다. 이 안개를 헤쳐나갈 방법은 더 멀리 보려고 애쓰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내 발밑의 감각에 집중하는 것입니다. 감각의 해상도를 최대한 높여보세요.


온기: 갓 내린 커피잔을 두 손으로 감쌀 때, 손바닥의 오목한 부분부터 손가락 끝까지 전해지는 온도의 미세한 차이를 느껴보세요.


질감: 낡은 책의 표지를 손가락으로 쓸어보세요. 바랜 종이의 거친 느낌, 양장본의 매끄러운 차가움을 느껴보세요.


소리: 이어폰을 빼고, 세상의 배경 소음에 귀 기울여보세요. 멀리서 들려오는 기차 소리, 냉장고의 낮은 윙윙거림, 고양이의 가르랑거리는 소리의 주파수를 느껴보세요.


향기: 비 온 뒤 젖은 흙과 아스팔트에서 올라오는 냄새(페트리코), 갓 구운 빵 냄새, 오래된 나무 서랍의 냄새를 깊이 들이마셔보세요. 이런 작고 ‘진짜’인 감각들은, 우리를 허무한 생각의 망망대해에서 건져내어 ‘지금, 여기’라는 구체적인 섬에 안전하게 닻을 내리게 합니다.


3. ‘소비자’에서 ‘작은 창조자’로: 질서의 씨앗 심기 권태는 우리를 세상의 수동적인 관객으로 만듭니다. 이때 필요한 것은 위대한 작품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아주 작은 ‘나만의 질서’를 세우는 행위입니다.


한 칸의 질서: 어지러운 책상의 서랍 한 칸만이라도 완벽하게 정리해 보세요.


음악의 질서: 지금 내 마음에 맞는 플레이리스트를 새로 만들어보세요. 곡의 순서를 정하는 것은 나의 감정에 질서를 부여하는 일입니다.


생명의 질서: 작은 허브 화분 하나를 사서 창가에 놓아보세요. 매일 아침 물을 주고, 잎이 자라는 것을 보는 행위는 세상의 혼돈 속에 나만의 작은 질서와 생명의 씨앗을 심는 것입니다. 이런 작은 창조는 ‘나는 여전히 이 세상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존재’라는 조용하지만 단단한 자기 확신을 심어줍니다.


4. 목적 없는 움직임: 몸의 흐름 되찾기 무기력할수록 몸은 더 깊은 침묵에 빠져듭니다. 이때는 ‘운동해야 한다’는 목표 의식조차 버거울 수 있습니다. 그저 ‘목적 없는 움직임’을 시도해 보세요.


산책: 어디로 가야 한다는 생각 없이, 그저 발이 닿는 대로 걸어보세요. 발바닥이 땅에 닿는 감촉, 스쳐 지나가는 바람의 감촉에만 집중해 보세요.


스트레칭: 완벽한 자세를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라, 굳어 있던 근육이 부드럽게 늘어나는 ‘느낌’ 그 자체를 즐기기 위해 몸을 움직여보세요. 몸의 흐름을 부드럽게 만들어주는 것은, 멈춰 있던 강물의 얼음을 깨는 것과 같습니다. 작은 물길이 트이면, 어느새 마음의 강물도 다시 흘러가기 시작할 겁니다.


당신이 겪는 권태의 계절은, 당신의 영혼이 메마르고 황폐하다는 증거가 결코 아닙니다. 오히려 한 계절을 뜨겁게 살아낸 뒤, 다음 계절의 새로운 씨앗을 싹 틔우기 위해 땅의 힘을 비축하는 ‘휴경지’의 시간과 같습니다.


부디 스스로를 다그치지 마시고, 이 고요함의 시간을 당신의 영혼이 잠시 숨을 고르며 더 깊고 단단해지는 소중한 기회로 삼아주시길 바랍니다. 당신은 자신의 깊은 바다를 항해하는 현명한 항해사이니, 가장 어두운 밤에도 자신만의 별자리를 찾아낼 힘이 당신 안에 있음을 잊지 마세요. 그 별빛을 따라, 우리는 또다시 나아갈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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