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현실에서는 하지 못할 말을, 모니터 뒤에서는 그토록 쉽게 내뱉는가? 점잖은 신사였던 사람이, 운전대만 잡으면 난폭한 야수로 돌변하듯, 평범했던 시민은 어째서 익명의 광장에서 가장 잔인한 재판관이 되는가? 이것은 몇몇 특별히 사악한 개인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것은 기술이라는 새로운 환경과, 그 안에서 길을 잃은 우리 모두의 본성에 대한 이야기다.
이 기이한 변신의 비밀을 푸는 열쇠는 심리학자 존 슐러가 말한 ‘온라인 탈억제 효과(Online Disinhibition Effect)’에 있다. 현실의 우리를 옭아매던 사회적 규범과 체면, 타인의 시선과 즉각적인 반응에 대한 두려움은, 온라인의 여러 조건 하에서 힘을 잃는다. 익명성은 나를 현실의 정체성과 분리시켜 책임감의 무게를 덜어주고, 비가시성은 상대의 고통을 보지 못하게 하여 공감 능력을 마비시킨다.
이 통제 풀린 해방의 공간에서, 우리는 플라톤이 <국가>에서 던졌던 오래된 질문과 정면으로 마주한다. 투명인간이 되는 반지, ‘기게스의 반지(Ring of Gyges)’가 주어졌을 때, 인간은 과연 정의로울 수 있는가? 익명성이라는 현대의 기게스의 반지는, 우리 내면 가장 깊숙한 곳에 잠자고 있던 원시적 본능과 자기혐오의 그림자를 해방시킨다.
바로 이 ‘탈억제’ 상태에서, 우리가 앞서 분석한 심리적 메커니즘들은 거대한 증폭기를 단 것처럼 강력하게 작동한다.
첫째, 키보드는 가장 완벽한 ‘투사’의 도구가 된다. 현실 세계에서의 무력감과 경제적 박탈감, ‘실패한 나’라는 자기혐오에 시달리는 개인에게, 화려한 조명 아래 사는 연예인이나 막대한 부를 이룬 인플루언서는 그 자체로 고통스러운 거울이다. 그들의 완벽해 보이는 삶은 자신의 초라한 현실을 더욱 아프게 비추기 때문이다. 익명의 가면 뒤에 숨어, 그는 거울 속 대상의 아주 작은 흠결을 찾아내 집요하게 공격한다. ‘너는 위선자다’, ‘너는 사실 별 볼 일 없다’고 외치는 것은, 사실 ‘나는 실패했다’, ‘나는 별 볼 일 없다’는 자기혐오의 목소리를 타인의 입을 빌려 내지르는 처절한 비명에 가깝다.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
brunch membership
조하나작가님의 멤버십을
시작해 보세요!
나를 위해 쓴 문장이 당신에게 가 닿기를|출간작가, 피처에디터, 문화탐험가, 그리고 국제 스쿠버다이빙 트레이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