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은 삶의 끝이 아니라, 가장 적나라한 삶의 상태다

차가운 불협화음 속에서 비로소 마주하는 삶의 민낯, 개봉 신작 <다잉>

by 조하나

<디스 이즈 러브> <머시>를 통해 사랑과 용서, 그리고 인간 내면의 심연을 집요하게 파고들었던 매티아스 글래스너 감독. 그가 이번에는 '가족'과 '죽음'이라는 보편적인 소재를 들고 우리를 찾아왔습니다. 하지만 휴지를 준비해야 하는 최루성 드라마를 기대했다면 오산입니다. 12월 10일에 개봉한 영화 <다잉>은 죽음을 앞둔 가족의 풍경을 따뜻한 위로 대신, 서늘한 냉소와 지독할 정도로 솔직한 대화로 해부하며 '산다는 것'의 의미를 역설적으로 질문하는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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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르스 아이딩어 X 코리나 하르포히,

연기 괴물들의 서늘한 앙상블


이 영화의 가장 강력한 동력은 독일을 대표하는 두 배우의 연기 대결입니다. 지휘자 아들 '톰' 역의 라르스 아이딩어와 죽음을 앞둔 엄마 '리지' 역의 코리나 하르포히는 스크린을 압도하는 에너지를 뿜어냅니다. 특히 오랜만에 마주 앉은 모자(母子)가 "나는 너를 한 번도 사랑한 적이 없다"며 서로의 바닥을 확인하는 식탁 씬은 영화사상 가장 잔인하면서도 통쾌한 명장면으로 꼽힙니다. 억지 화해나 눈물 없이, 서로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설령 그것이 증오일지라도) 응시하는 두 배우의 얼굴은 관객에게 서늘한 전율을 선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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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지휘하고 '삶'을 연주하다


<머시>에서 죄책감과 구원의 문제를 다뤘던 글래스너 감독이 이번에 천착한 것은 '예술과 현실의 아이러니'입니다. 지휘자인 톰은 친구가 작곡한 곡 '다잉(Dying)'을 무대에 올리기 위해 애쓰지만, 정작 현실에서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진짜 죽음을 마주해야 합니다. 영화는 무대 위에서 아름답게 조율되는 '예술로서의 죽음'과 냄새나고 비루하며 고통스러운 '현실의 죽음'을 끊임없이 교차시킵니다. 이 아이러니한 대비를 통해 영화는 예술이 삶을 구원할 수 있는지, 아니면 그저 삶을 흉내 낼뿐인지 묵직한 질문을 던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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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라는 이름의 3악장 교향곡


제목 <다잉>은 죽어가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영화는 루니스 가족 구성원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죽음(혹은 삶)과 사투를 벌이는 과정을 3시간의 러닝타임 동안 3악장의 교향곡처럼 웅장하게 펼쳐냅니다. 치매에 걸린 아버지, 자유를 갈망하는 시한부 어머니, 우울증에 걸린 친구를 돌보는 아들, 알코올에 중독된 딸. 서로 불협화음을 내던 이들이 죽음이라는 이벤트를 통해 충돌하고 깨어지는 과정은 역설적으로 그 어떤 가족 영화보다 펄떡이는 생명력을 보여줍니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명제 대신 "우리는 서로에게 타인일 뿐"임을 인정할 때 비로소 시작되는 관계의 진실을 목격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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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잉>은 죽음에 관한 영화지만, 보고 나면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고 싶어지는 기묘한 에너지를 가진 작품입니다. 베를린이 선택한 탄탄한 각본과 배우들의 신들린 연기를 확인하고 싶다면, 이 차갑고도 뜨거운 가족의 마지막 연주회에 참석해 보시길 권합니다. 달콤한 위로보다 뼈아픈 진실을 원하는 당신에게 이 영화는 최고의 선택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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