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백으로 조각한 지옥도, 그 잔혹한 동화의 세계

신작 개봉 영화 <바늘을 든 소녀>

by 조하나

<스웨트>를 통해 SNS 시대의 고독을 예리하게 포착했던 매그너스 본 혼 감독이 이번에는 1918년 덴마크 코펜하겐으로 시선을 돌립니다.


제1차 세계대전 직후, 빈곤과 스페인 독감이 휩쓸고 간 폐허 같은 도시. 영화 <바늘을 든 소녀>는 덴마크 역사상 가장 악명 높은 연쇄 살인마 '다그마 오버바이'의 실화를 모티프로, 생존 끝에 괴물을 선택해야 했던 두 여성의 이야기를 그로테스크한 흑백 영상에 담아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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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표현주의를 잇는 압도적인 흑백 미학


이 영화를 보는 순간 가장 먼저 시선을 빼앗기는 것은 강렬한 흑백의 미장센입니다. 4:3의 좁은 화면비와 극단적인 명암 대비는 마치 1920년대 독일 표현주의 무성 영화나 뒤틀린 악몽을 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킵니다.


아름답게 세공된 흑백의 화면 속에서 펼쳐지는 참혹한 빈곤과 살인의 풍경은 관객에게 기묘한 시각적 충격을 줍니다. 가장 끔찍한 이야기를 가장 아름다운 방식으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이 영화의 미학은 그 자체로 잔인한 아이러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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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린 디어홈 X 빅 카르멘 손, 광기와 절박함의 앙상블


덴마크의 국민 배우 트린 디어홈은 입양 중개업자로 위장해 영아 살해를 저지르는 '다그마' 역을 맡아, 단순한 악녀가 아닌 묘한 카리스마를 지닌 '마녀' 같은 존재감을 뽐냅니다. 그녀가 사탕 가게 뒤편에서 붉은 액체를 닦아내며 짓는 미소는 섬뜩함을 넘어 매혹적이기까지 합니다.


여기에 가난과 임신으로 벼랑 끝에 몰린 공장 노동자 '카롤리네' 역의 빅 카르멘 손은 생존을 위해 영혼을 파 먹히는 여성의 내면을 처절하게 연기합니다. 두 여성이 맺는 기이한 연대는 구원과 파멸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오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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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가 낳은 괴물, 그리고 바늘의 이중성


영화 속 '바늘'은 이중적인 상징을 갖습니다. 옷을 기워 생계를 잇는 도구이자, 원치 않는 생명을 지우거나 고통을 끝내는 살인의 도구. 감독은 다그마의 범죄를 자극적으로 전시하는 대신 "왜 여성들은 자신의 아이를 그녀에게 맡겨야 했는가"를 집요하게 묻습니다.


전쟁과 가난, 그리고 남성 중심 사회가 만든 구조적 모순 속에서, 다그마의 '바늘'은 갈 곳 없는 여성들에게 유일한(비록 그것이 악마의 손길일지라도) 해결책으로 기능합니다. 이것은 단순한 범죄 실화가 아니라, 사회 시스템이 붕괴된 곳에서 피어나는 슬픈 잔혹 동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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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늘을 든 소녀>는 보기에 편안한 영화는 아닙니다. 하지만 한 번 보면 뇌리에서 절대 잊히지 않는 강렬한 이미지와 묵직한 질문을 남깁니다. 팀 버튼의 어둠과 미카엘 하네케의 차가움이 만난 듯한 이 영화는, 올겨울 당신이 마주할 가장 아름답고도 불길한 악몽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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